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체하는 게 힘들 때가 있었다. 평소의 작은 침묵은 언제나 큰 폭발을 야기한다.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상대의 작은 행동에 혼자 상처받고, 싸우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다 보면 그 감정은 꼭 터졌다.
그렇게 터진 감정은 이상하게도 말로 뱉어낼수록 끝도 없이 불어났다.
내게 큰 상처를 준 너에게 아주 커다란 상처를 입히고 싶다. 지금도 종종 하는 내 안의 못난 생각이다.
<나미비아의 사막> 주인공 카나에게서 이런 내 못난 모습이 보였다.
21살의 여성 카나는 뚜렷한 목표도 취미도 없다.
그저 순간을 살아가는 듯한 그는 연애에서도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한다. 동거 중인 남자 친구 혼다가 있지만 다른 남자 하야시와 이중으로 연애 관계를 맺고, 하야시가 혼다와 헤어지길 바라자 혼다와의 연애를 일방적으로 끝내버린다.
하지만 막상 하야시와 일대일 관계를 맺게 된 이후, 카나는 어떤 구렁텅이에 서서히 빠져가는 것만 같다. 혼다와 헤어지고 그가 흘린 코피는, 두 사람에게 일어날 나쁜 징조로도 느껴진다.
카나는 분명 혼다와 동거할 때, 하야시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해방된 듯 거리를 내달리곤 했다. 그러나 하야시와 동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나는 다리를 다친다. 혼자서는 밖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고, 모든 것을 하야시에게 의존하게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보내는 시간도, 서로에게 녹아드는 속도도 순식간에 증폭되지만, 그럴수록 카나가 하야시에게 느끼는 이질감도 커져만 간다.
<나미비아의 사막>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나뉜다. 카나의 행동을 불편해하고 보기 힘들어하는 사람과 카나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사람. 혹은 그 두 가지 양가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필자 같은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카나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비호감의 주인공에 가까운 건 사실이다. 영화 속 카나조차도 자기 스스로에게 괴리감을 느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카나의 애인 혼다와 하야시 역시 카나의 행동과는 별개로, 누구나 화를 낼법한 모습을 보인다. 혼다는 어린 여자 친구와 동거하며 당연하다는 듯 카나에게 피임약을 챙겨 먹이고, 카나가 가지 말라고 했던 유흥업소를 기어코 다녀와 용서를 빈다.
하야시는 다른 여자와 있었던 아이 초음파 사진을 간직하고, 결국 카나는 그 사진을 보게 된다. 카나가 그 사진에 관해 묻자, 잊고 있었다며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말하는 무신경함을 하야시는 숨기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분명 카나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상처 입은 카나를, 그 상처 받은 마음이 흘러넘치고 있는 카나를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 겉과 속을 달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카나는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건 무섭지 않냐고 말한다. 카나는 정말로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날 외롭게 하면 다른 사람을 만나 그 욕구를 채우고,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는 그 상처를 훤히 드러낸 채 공격하면서.
카나는 그게 이상적이라 생각했겠지만, 그 방식은 카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만 한다. 이상과 현실, 그로부터 기인한 카나의 괴리감은 일본에서 나미비아 사막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카나의 모습에서 때로는 통쾌함을 느꼈고, 영화의 끝에 가서는 위로받는 느낌 마저 받았다.
나와 닮은, 하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카나에게 이제는 내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