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종종 물살에 비유된다. 모든 인간이 물에서 온 것처럼, 물이란 인간의 인생에서 땔래야 땔 수 없는 보조관념이다.
소설 급류는 물의 속성을 주인공의 삶에 적극적으로 투사한다. 저수지와 계곡으로 유명한 지방도시 ‘진평’을 배경으로 두 주인공의 인생이 하나로 얽히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물은 우리가 떠나온 곳이지만, 벗어나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에게 물이 고여있는 장소는 그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하는 상처의 원천이기도 하다.
슬픔 역시 원소 중에서는 흔히 물로 비유되곤 한다. ‘급류’는 상처로 젖은 이들이 다시 햇빛에 몸을 말릴 때까지 치유의 과정을 그린다. 이 글에서 표현된 ‘물’과 ‘인생’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소용돌이와 삶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주인공인 해솔과 도담은 출입이 금지된 계곡 앞에서 이러한 대화를 나눈다. 그 계곡은 진평으로 엠티를 온 대학생들 여럿이 급류와 와류로 인한 소용돌이로 목숨을 잃은 금기의 장소였다. 그러나 소방관인 아버지를 따라 물에 친숙했던 도담에게 물 속은 고향과도 같았고, 수면 위의 세상과 동떨어진 위로의 공간이었다.
해솔과 도담의 이 대화는 앞으로 펼쳐질 두 주인공의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이기도 하다. 둘은 모종의 사건으로 계곡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소용돌이는 인생의 불가항력을 의미하며,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수면을 돌파하기보다 그 슬픔의 밑바닥을 통해 ‘통과’해야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엿보인다.
계곡과 삶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급류 속 계곡은 비극의 시작되는 근원이다. 도담과 해솔은 불륜이 의심되는 양가 부모님을 계곡에서 발견하고 쫓아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발각되었다는 사실에 놀라 거센 물살에 그대로 휩쓸려 버리고 만다.
사랑은 거친 물살처럼 모든 것을 휩쓸기 마련이다. 도담은 존경하던 아빠를, 해솔은 엄마를 잃었다.
도담은 해솔을 사랑했지만, 휩쓸린 자신의 인생 역시 재건해야만 했다.
폭포와 삶
폭포는 아래로 향하는 강한 물살이다. 때론 계곡 끝에 거센 폭포를 마주할 지도 모른다.
해솔과 도담은 양가 부모님을 잃은 사건 이후 서로의 ’불길함‘이 된다. 다시 마주해서도 안 되고, 그리워 해서도 안 되는 금기의 인연으로 자리 잡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증오도 사랑이라 말한다. 사랑과 같은 강한 인력이, 비록 반대편이라 해도 둘 사이에 끈끈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애와 증으로 얽힌 도담과 해솔은 운명처럼 다시 맞닥뜨린다.
이미 흘러가버린 사랑을, 이미 떠내려간 그때를 다시 붙잡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렇다’라는 확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 둘이 떨어져 있던 시간동안 달라져버린 그들을 마주하며, 그때를 이루던 도담-해솔이 아닌 7년 후의 서로를 사랑하기로 한다. 둘의 슬픔은 사랑에 찬찬히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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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역시 역시 물살을 타듯 자연스럽고 빠르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을 진득하게 풀어간 것도 인상 깊다. 그러나 열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이 소설은 그 ‘열길 물 속’과도 같다. 전개가 예측 가능했으며, 도담과 해솔이 7년의 애증을 겪고 나서 다시 재회하는 결말에서 둘의 미래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남은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단, 그러한 이야기를 가진 남녀의 연애 소설에 가깝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는 초심자나, 가벼운 마음으로 한 권을 정독하고 싶다면, 물처럼 술술 읽히는 소설 급류를 추천한다. 당신의 마음 속에 오래토록 고여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