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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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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이 드는 현대 미술 작품


 

소변기를 가져와서 서명을 한 뒤 작품이라고 내놓은 남자가 있다. 심지어 그건 직접 만든 것도 아니었다. 어느 공장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뒤집어 놓았을 뿐이었다. 파격적인 행동으로 미술계에 혁명을 일으킨 남자는 바로 '마르셀 뒤샹'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술 작품이란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가령, 미켈란젤로가 작업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천지창조」나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처럼 한눈에 봐도 감탄이 나오는 작품들이 있다. 당시에는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첫째, 숙련된 기술의 결과물이어야 하고, 둘째, 아름다워야 하고, 셋째, 흥미진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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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프랑스 남자가 소변기를 들고 온 것이다.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동료들과 관객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하나둘씩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술이 무엇이고, 작가는 무엇인가? 기술이나 마감 등의 요소만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인가? 작가의 신선한 개념이나 아이디어 자체는 미술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현대로 넘어오며 점점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개개인의 인간이 주목받고 있었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샘」은 전설적인 작품으로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마르셀 뒤샹은 개념미술의 창시자이자 선구주자가 되었다. 미술계에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고 더욱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들이 미술과 멀어지기도 했다. 개념미술에는 명확한 선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도화지에 선을 하나 그어놓고 '이것은 작품'이라 명명하면 관객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것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뿐만 아니라, 미술 업계에서도 간간이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의 저자 역시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나는 개념 미술 중심의 현대 예술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 우스꽝스럽고 제멋대로인 데다, 가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23p)

 

 

사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미국 콜비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와 런던대학교 코톨드인스티튜트 예술대학에서 각각 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은 뒤에 예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확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현직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소외감이 사라지고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됐다.


 

옆집의 얼뜨기가 꽃병을 깨뜨리면 그저 사고다. 그러나 위대한 중국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꽃병을 깨뜨리면 예술이 되고,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45-46p)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을 열어서 책을 정독하고 나니, 미술관을 당당하게 거닐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까지 오기 전에, 이미지 읽는 법부터


 

사실 아는 사람들끼리만 미술 작품을 두고 공감하며 인정하는 행위는 최근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술에는 비밀 언어가 존재했다. 그리고 저자인 노아 차니는 카를로 크리벨리의 「성 에미디우스가 있는 수태고지(1485)」를 가져와서 비밀 암호들을 풀어준다. 그것은 마치 코난이 사건 현장을 풀어나가는 것과도 비슷한 흥미로운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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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수태고지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수태고지하나님이 보낸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마리아를 찾아와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거라고 전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 미술사에서 두 번째로 많이 그려진 장면으로, 신기하게도 수많은 작품들이 몇몇 일관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대천사 가브리엘은 앵무새 날개와 비슷한 여러 색의 날개를 단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성모마리아의 처녀 잉태설을 신학적으로 해석한 표현이다. 앵무새가 '아베마리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성모마리아가 임신한 동정녀라는 사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늘에서 비추어 창문을 뚫고 마리아에게 닿는 한 줄기 빛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자. 따라서 위의 그림에서도 가장 왼쪽에 위치한 남자가 바로 가브리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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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브리엘은 성모 마리아에게 줄 선물인 흰 백합을 왼손에 들고 있다. 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흰 백합은 순결을 상징하며 동시에 전통적으로 장례식에 사용하는 꽃이다. 즉, 순결한 성모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앞으로 죽을 예정이라는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이때 가브리엘 옆에 있는 남자는 이 그림을 의뢰한 도시의 성자인 에미디우스다. 그는 도시인 '아스콜리피체노'의 축소 모형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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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는 두 팔로 가슴을 감싸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발적으로 원해서가 아니라 맡겨진 사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이 그림에서 성모마리아는 아직 임신 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빛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흰 비둘기, 즉 성령이 성모마리아의 몸으로 들어가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공작새나 창살이 있는 창문, 정원 등에 대한 해석이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미술관으로 산책 가기


 

 

상징을 알아보고 해석할 수 없다면 외국에서 내가 모르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외로운 기분이 든다. 다행히 서양 미술에는 규칙적으로 반복해 등장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정해져 있어, 이 새로운 시각 언어를 외우기가 쉽다. (91p) 상징에 대한 시각언어는 유럽 미술과 그 영향을 받은 북미 지역에서 놀랍도록 일관되고 일정하게 등장한다. 정의라기보다는 '한 쌍의 열쇠=성 베드로'처럼 일련의 방정식에 가깝다. 방정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속으로 그리고 외우기가 훨씬 쉽다. (99-100p)

 

 

바로 위에서 설명했듯이,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작품을 읽는 방정식을 알려준다. 또한, 예술사 전반에 대한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어느 시대의 작품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미술과 친해질 수 있는 도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미술관이 어떻게 느껴질지 대충 알고 있다. 어렵거나, 아예 재미가 없거나, 지루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친해진다면 그 무엇보다 간단하고, 저렴하고(입장료는 대부분 이만 원을 넘지 않는다.), 깊게 즐길 수 있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예술에 관심이 가질만한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가한 휴일에 근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그 전에 꼭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를 읽기를 바란다. 수수께끼 같은 공간에 첫걸음을 들이기 전에 갖춰가는 준비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책은 신발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인데, 즐거운 걸음으로 다음 작품에 나아갈 추진력을 제공할 것이다. 노아 차니가 신겨주는 신발이 당신이 작품을 훨씬 수월하게 감상하도록 만들 것이며,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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