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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최종] 0413 더벨과 함께하는 지브리 페스티벌.jpg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간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25년이나 살아오면서 왜 두 번이냐 묻는다면,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클래식에 대한 이미지가 지루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도 급식 메뉴를 외우듯 낭만파 거장들의 이름을 외웠었다. 음악 선생님께서 열변을 토하며 틀어주시는 음악은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 뿐이었고,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그다지 좋지도 않다는 감상이었다.

 

다만, 알고리즘에 우연히 뜬 조성진의 영상을 보다가 마음에 박힌 곡이 있기는 하다. 바로 드뷔시의 '달빛'이다. 달빛이 내려앉는 찬란한 모습을 담아낸 선율은 마음을 깊이 울려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밖에 모르는 무지렁이에게 클로드 드뷔시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클래식에 눈을 뜨게 되는 일은 없었고, 인터파크 티켓 창에서 클래식 공연은 여전히 자체 모자이크됐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드뷔시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이웃집에 사는 토토로와 함께 있었다.

 

 

 

세기를 건너서 만난 음표들


 

거의 분기별로 지브리의 음악을 주제로 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이 진행된다.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오케스트라 악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도 대중적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특히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음악들은 지브리 영화를 보고 자란 2030세대의 추억을 건드릴 뿐만 아니라 5060세대의 메말라 있던 감수성을 피워내기도 한다.

 

그리하여 지브리 콘서트는 수많은 공연장들을 채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더벨'과 함께하는 이번 콘서트는 남달랐다.

 

그들은 지브리 OST를 클래식 작곡가들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선보였다. 2부는 오리지널 지브리 OST를 웅장하게 연주했지만, 1부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브리 음악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얹었다. 「이웃집 토토로의」 '바람이 지나가는 길'은 드뷔시의 스타일로 편곡했고, '바람'은 리스트의 스타일로 꾸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는 비발디의 사계를 빌려와서 파격적으로 엮어냈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여행을 떠나며'는 쇼팽의 스타일로 재구성됐다. 「원령공주」의 OST에서는 드뷔시가 다시 한번 등장하기도 했다.

 

유명한 곡인 '인생의 회전목마'가 포함된 2부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웠지만, 마음을 깊이 울렸던 것은 확실히 1부였다. 클래식에 무지한 관객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리고 1부를 인상 깊게 즐길 수 있던 것은 단순히 음악이 아름다웠기 때문은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직접 들려주는 클래식 버전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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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의 피아노 연주는 '송영민' 피아니스트가 맡았다. 그는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악대 학·석사를 졸업하고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한 정통 클래식 후계자이지만, 틀에 박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며 클래식과 대중 사이의 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최인아책방, 안산문화재단, 성동문화재단, 강북문화재단, 양산 쌍벽루아트홀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클래식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공연에 직접 참여하는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해설은 어렵지 않게 관객들의 집중을 얻었다. 그는 드뷔시의 어떤 곡이 토토로의 OST와 합쳐졌는지 설명하며 특정 구간을 직접 연주해 주기도 했다. 먼저 클래식을 연주하고, 익숙한 지브리 음악을 들려주고, 둘이 합쳐진 음악을 티저처럼 짧게 들려주며 이어질 연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대중적인 공연인 만큼 클래식에는 무지한 관객들도 많았는데, 친절하게 제공되는 설명은 공연의 몰입도를 높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더벨과 60인조 오케스트라, 그리고 지휘자가 가진 신조와 의도였다. 그들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클래식의 편견을 깨고 대중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했다. 아주 오래전, 지금만큼 다양한 콘텐츠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의 즐거움이 되어주었던 음악들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깊이 와닿았다.

 

 

 

가교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공연


 

마지막 곡이 끝나고, 박수갈채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그들의 목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섣부른 여운이 일렁거리는 와중에 지휘자가 관객들을 통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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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여기서 끝나면 안 되겠죠?"

 

대충 비슷한 말을 건넨 뒤에 앵콜 곡으로 토토로의 OST를 연주해주었다. 많은 관객들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환호했다. 토토로의 OST는 대체로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라, 마치 갈대밭에 서 있는 듯한 벅찬 감정을 느끼며 마지막 곡을 감상했다. 옆자리의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행복과 즐거움만이 가득한 현장이었다.

 

새로운 새싹이 움트고 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객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에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클래식 버전의 지브리 음원을 들으며 버스 차창에 기댔던 나처럼.

 

더벨을 포함한, 공연을 위해 애쓴 모든 사람들의 목표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중과 클래식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냈다. 아주 많은 점이 좋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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