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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한국에 1990년 처음 개봉하여 현재까지 1993년, 2013년, 2020년 이렇게 세 번이나 재개봉으로 영화관에 돌아온 이탈리아 영화가 있다. 아직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영화에 삽입된 음악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이 영화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인 <시네마 천국>이다.

 

한-이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시네마천국 이머시브 특별전 - 투.토토’가 작년에 열린 후 관람객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서울 갤러리아포레에서 5월 11일까지 연장 전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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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익숙한 음악이 들려온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시네마 천국> OST이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 선율만으로도 마음이 느슨해지고, 자연스럽게 전시에 감각이 집중된다.

 

전시 티켓은 영화관에서 받는 오리지널 티켓처럼 생겼고, 입구는 영화 속 그 시절 알프레도가 일하던 극장처럼 손으로 그린 고전 영화 포스터들로 꾸며져 있다. 토토와 알프레도가 숨 쉬는 공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공간을 이루는 섬세함과 음악이 전시 전체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잡아준다.


공간 이곳저곳에 다큐멘터리가 틀어져 있는데,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꼬네의 관계가 인상 깊다. 엔니오가 쥬세페를 그의 별명인 ‘페푸치오’로 부르는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다. 뒤를 이어 나온 함께 작업한 배우들 역시 같은 별명으로 부르는 장면들은 이런 친밀한 관계가 단지 둘만의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장 전체에 따뜻하게 퍼져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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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영화, 다수의 다큐멘터리와 광고 음악을 만든 두 사람의 예술적 관계의 시작이 <시네마 천국>이다. 이것만으로 나에게 이 전시를 보고 싶은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두 감독의 작업은 대개 각본 집필 단계에서 시작되었으며, 종종 촬영 전에 사운드트랙으로 쓰일 음악 테마가 먼저 작곡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협력 관계는 매우 긴밀해서 모리꼬네가 감독에게 여러 반주곡을 사전에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미 여러 작품에 참여한 음악감독 엔니오가 신인 감독인 쥬세페와 작업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한국 대중에게 더 유명한 엔니오 모리꼬네와 친구라는 생각은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도 비슷한 나이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되지만, 사실 두 사람은 거의 30년의 세월 격차가 있다.

 

첫 만남 이후 30여 년의 시간에 걸쳐 영화를 만들며,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엔니오와 작업했다. 긴 시간을 작품 활동으로 함께 보내며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음을 알게 되니 전시를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감정은 자연스럽게 영화 <시네마 천국> 속 토토와 알프레도의 관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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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아끼는 영화 속 친구 관계를 만든 건 실제 두 감독이 가진 연대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자 두 감독이 함께한 다른 작품인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도, 나인틴 헌드레드와 맥스 투니의 관계가 기억과 마음에 남아 있다. <시네마 천국>은 그보다도 전에, 어린 시절에 찾아본 영화라 줄거리는 흐릿해졌지만, 토토와 알프레도의 관계는 마음에 여전히 감동으로 남아 있어 결국 전시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전시장에는 영화 장면뿐만 아니라 제작 당시가 생생하게 담긴 사진들이 많았다. 영화 속 토토와 알프레도의 친밀한 관계는 단지 시나리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실제 촬영 현장의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는 걸 그때 촬영된 사진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어린 토토를 연기한 살바토레 카시오는 영화 촬영 당시 10살의 소년으로, 촬영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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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이 ‘영화’라는 매체로 만났기 때문에, 전시장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요 장소들—영사실, 영화관, 광장—이 실제 촬영장처럼 재현되어 있다. 실제 영화 촬영 세트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디테일을 가득 눈에 담을 수 있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영사실에 어지럽게 펼쳐진 필름을 자세히 보면 영화의 장면들이 담겨 있고, 벽면을 채운 쪽지들에는 영화와 관련된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영화관은 많은 인원을 수용하지 못하던 당시 영화관처럼 적은 개수의 의지가 비치되어 있고, 은은한 조명과 함께 영화가 멈추지 않고 상영되고 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부분은 <시네마 천국> 영화관에서 사자 입에 시작된 영상 빛이 스크린에 닿았던 점을 그대로 옮겨 온 사자 장식이다.

 

또, 작은 영화관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알프레도의 광장 야외 상영 장면도 키네틱 프로젝션 기술을 통해 재현했다. 영화 팬이라면 눈을 반짝이게 하는 이런 요소들이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어서 영화를 본 관객은 영상에서 본 장면을 실제로 보고 경험하는 시간이 되고, 이번 전시로 <시네마 천국>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영화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이 공간이 사용되었을지 궁금하게 한다.


 

산다는 건 영화랑은 달라. 인생은… 훨씬 더 힘들지.

 

- 알프레도

 

 

그 외에도, 이머시브 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토토와 엘레나가 함께 시간을 보낸 밀밭과 토토의 고향 기차역을 구현한 공간도 인상 깊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가상 마을 지안칼도 역에 가볼 수 있다. 곧 기차를 타고 떠날 청년 토토에게 알프레도가 하는 대사가 적힌 벽과 그 앞에 벤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진출하는 현대의 모든 토토에게 쉼의 공간이 된다.

 

영화를 구성한 뒷이야기들이 나에게는 더 흥미를 끌었지만, 청년 토토에 관한 영화 하이라이트 클립들이 모여진 이머시브 룸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사방에서 시네마의 명장면이 나오고 있어서 마치 주마등처럼 내가 장년의 토토가 되어 시간을 거스르며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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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끝날 무렵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화의 낯선 결말 장면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네마 천국>은 123분으로 단축된 버전으로 칸 영화제에 출품되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것이지만, 처음 영화가 파리에서 열린 유로파 시네마 페스티벌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되었을 때는 157분의 길이였다.

 

당시 영화 제목은 ‘Nuovo Cinema Paradiso’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새로운 시네마 천국’이라는 뜻이다. 이는 영화 안에서 영화관이 한 차례 사고로 인해 불에 타서 다시 지은 후에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편집된 버전이 더 익숙한 이유는 첫 개봉 이후 시칠리아 지방 메시나 외에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상영이 중단되며 경제적인 큰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렇게 크게 실패했던 작품이 편집 이후 칸 영화제, 골든 글러브,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대성공을 이루고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이탈리아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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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든 이러한 감독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시네마 천국>이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초기 작품이라는 정보를 들었을 때는 그는 나랑 다르게 좋은 상황이 이어지는 대단한 사람, 부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사실 처음 영화를 보게 된 건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고, 이번 전시도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재밌게도 마지막 전시장을 떠날 때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에게 반한 상태로 나왔다.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자라온 그가 그곳 사람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갖고 영화 제작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진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예술에 대한 끈기와 열정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또, 젊은 시절에 이미 작품 경력을 쌓은 음악 감독인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함께 하기를 제안한 용기가 멋졌고,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레나토 구투소와 레오나르도 샤샤에 관한 에피소드로 확인한 그가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했으며, 실패와 거절에도 의지를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 시간에 감명 받았다.

 

* * *

 

올해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이런 답장을 받았다. “너를 빼놓고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어”. 인생의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였기에 이 말에 담긴 진심을 발견하고 마치 나의 생일인 듯 크게 기뻤던 기억이다.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도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 같다.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동료이자 친구였던 엔니오 모리꼬네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제작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직접 미리 써둔 부고에 ‘페푸치오(쥬세페 토르나토레의 별명)’를 소중한 존재로 언급한다.

 

<시네마 천국 이머시브 특별전>을 관람하며 영화라는 매체로 만난 사람들의 소중한 관계를 보고 듣고 느꼈다. 따뜻한 관계는 늘 곁에 두고 싶은 주제인데 전시와 영화를 통해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할 수 있어 고마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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