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 못해도 눈길이 가는 것들이 있다.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들. 나는 그게 재즈라고 생각한다. 재즈 문외한인 나에게 재즈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재즈를 ‘발걸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여러 악기가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화음은 살포시 걷는 산보 같기도, 정열적인 탭댄스 같기도 하다. 눈을 감고 재즈가 만들어내는 음표에 발걸음을 맞춘다면, 그 어떤 세계로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벚꽃이 만개한 4월의 어느 날, 나의 발걸음은 한 공연장으로 향했다. 기대를 한껏 품고 도착한 공연장에서는 처음 만난 세계가 있었다. 바로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첫 내한 공연이었다.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는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마티스 피카드, 베이시스트 파커 맥앨리스터와 드러머 조에 파스칼로 이루어진 아티스트 그룹으로, 피아노-베이스-드럼의 조화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태어나 처음 관람하는 재즈 공연은 엄청난 설렘을 가져왔다. 기껏해야 이태원의 바에서 들어본 자투리 재즈뿐이었던 내게 ‘본격적인 재즈’는 호기심과 기대로 다가왔다. 함성과 박수로 시작한 공연은 ‘Hello’라는 곡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익숙한 듯 통통 튀는 음악은 물론, 마음을 가라앉히는 서정적인 재즈까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다채로운 색감이 귀를 타고 흘러왔다. 재미있었던 점은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공연은 단순히 음악만을 연주하는 지루한 공연이 아닌, 관객과 소통하며 하나가 된다는 것!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피아니스트 마티스 피카드의 지휘하에 화음을 맞추며 관람객 모두가 재즈의 일부가 되었다. 새로운 음악이 시작될 때마다, 마티스 피카드가 나서 곡 설명과 간단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수많은 관객 사이에서 큰 소리로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굳이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아도, 같은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재즈로 이어진 연결고리가 공연으로의 몰입을 도왔다.
앵콜을 통틀어 수많은 곡을 듣고 느꼈지만, 가장 좋았던 곡은 단연 ‘Inner Child’였다. 누구나 내면에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눈을 감고 그 내면의 아이를 상상해 보라는 마티스 피카드의 말을 끝으로 잔잔한 선율이 시작됐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어린 나, 혹은 어린 시절의 나를 상상하며 시작된 잔잔한 선율은 어느새 통통 튀는 발랄한 어린 아이의 발걸음 같은 선율로 변했다. 잔잔함과 활발함,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매혹적인 그루브는 단순히 트렌디한 재즈보다는 나를 재즈와 하나로 만드는 특별한 재즈의 시간에 가까웠다.
공연이 마무리되고, 불이 켜진 공연장에는 공허함 대신 기분 좋은 여운이 남았다. 재즈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한껏 뛰어놀다 온 느낌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소중한 기회로 사진과 사인도 남기며 관람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공연에 이유 모를 활기까지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살아있다는 건 이런 것일까? 징검다리 같은 음표를 따라 걷고, 재즈라는 새로운 것들로 삶을 채워 나가는 것. 무대 위에 올라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열정이 재즈라는 길을 통해 나에게 전해진 것 같았다.
아직도 재즈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저 흘려듣던 재즈가 이제는 내 두 귀로 흘러 들어온다. 재즈에 귀 기울이며 생각한다. 앞으로 또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나는 끝없는 재즈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