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발터 벤야민은 내게 유달리 익숙한 이름이다. 문학 이론을 공부하게 되면 가장 많이 다루고 언급되는 사상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은 한국에서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사상가는 아니지만, 그가 만들어낸 사유는 20세기 유럽의 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영향은 21세기 현재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까지 알게 모르게 도달하고 있다.
“아우라를 느꼈다” 라는 말을 써본 적이 있는가?
아우라(Aura)란 우리에게 극히 익숙한 단어로, 사람에게서 느끼는 남다른 기운의 의미를 지닌 관용구로 자주 쓰이지만, 그 시초는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우라란,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 지금 여기서만 존재하는 유일무이함, 전통성과 그 권위를 뜻한다. 작품을 보았을 때 느끼는 압도적인 웅장함, 감동 등등이 바로 아우라이다.
그리고 발터 벤야민은 복제 기술이 이러한 아우라를 해체하고 소멸시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는 아우라의 소멸을 현실에서도 종종 경험한다. 익숙한 거장의 작품을 실제로 보았는데도, 막상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던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바로 복제 기술로 인해 작품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작품이 본래 지닌 아우라가 소멸, 즉 죽어버린 것이다.
1. 발터 벤야민은 누구인가
발터 벤야민은 베를린 출신의 유대계 사상가로, 철학, 미학, 문학비평과 번역론을 아우르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예술이 만들어지는 조건, 언어가 사고를 가능케 하는 방식, 이야기가 사라지는 사회의 징후 등을 자세히 다뤘다.
가장 중하게 평가받는 그의 대표 사유가 바로 앞서 설명했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아우라 개념, 그리고 언어가 단순 ‘표현 수단’이 아닌 존재와 사유의 방식 자체라는 시선이다.
그는 사진, 영화 등 기술복제의 발전이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파괴한다고 주장했으나, 예술의 대중화와 참여 가능성의 확대 등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도 제시하였다.
여기서 문학이 가진 아우라의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이 아우라 개념에서 문학은 어딘지 살짝 빗겨나간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복제가 불가능한 단 하나의 실체’인 아우라의 개념과 달리, 처음부터 재생산, 복제가 가능한 형태의 예술이다. 바로 텍스트를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에 쓰인 글자를 보고 아우라를 느끼는가? 아니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고 머릿속으로 받아들이며 감응하게 된다.
다시 말해, 문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우라는 물리적인 유일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 독자가 언어와 만나며 정서적, 경험적 고유성을 스스로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2. 『이야기꾼』
발터 벤야민을 논할 때 배제할 수 없는 텍스트 중 하나는 이야기꾼이다.
이 에세이는 1936년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 레스코프를 사례로 전통적인 이야기꾼의 특성을 분석하고, 근대 이후 ‘이야기’라는 내러티브 구조가 소멸하고 경험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벤야민이 말하는 ‘이야기꾼’이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공동체적 경험’의 매개자‘인 것이다.
벤야민이 이 글을 작성한 1936년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근대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대였다.
산업화와 전쟁, 도시화를 겪은 근대가 도래하며 인간이 지닌 ’정보‘는 범람하나 ’이야기할 만한 경험‘은 상실했다는 것이 당대 철학가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이는 오스카 와일드가 “우린 지금 책을 너무 많이 읽어 현명하지 못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아름다워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네.”라 꼬집은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또한 벤야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병사들이 돌아와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극단적인 경험을 겪는 순간, 언어는 멈추고 침묵이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의 소멸로 이어지며 결국 인간이 말하고 나누는 존재로서의 기능을 잃은 철학적 위기의 증후를 진단하는 것이다.
3. 『고독의 이야기들』
앞서 벤야민의 주요 이론에 대한 긴 설명들은, 이 『고독의 이야기들』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집은 벤야민 생전의 발표, 미발표 산문과 노벨레를 모은 유일한 문학 작품집으로서, 벤야민이 논한 언어철학과 문예비평의 실험 종결체로서 문학적 의의를 갖는다.
노벨레란 하나의 사건이나 전환점이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한 아주 짧고 간결한 단편이다. 파울 클레의 유머러스하며 공상적인 그림은 이 고독의 이야기들의 감각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도서적 삶의 단절감과 익명성, 여행과 이방인의 감각, 꿈과 현실의 경계, 어린 시절의 언어, 유희, 침묵, 그리고 고독 속에서 생겨나는 감각과 상상력 등의 테마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벤야민이 「이야기꾼」에서 지적한 말해질 수 없는 경험을 서사적으로 복원하고자 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각 테마에 어울리는 노벨레, 그리고 서평과 교육론, 심지어 어린아이가 쓴 시에서 언어적 차원의 가능성을 분석한 글, 일기까지 함께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그의 철학을 떠나, 어떤 사람인지 결이 엿보이는 부분 같아 웃음이 났다. 그리움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섬세하고 감정적인 부분을 저렇게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에서, 어떤 사람인지 보였달까.
사상가와 철학가들이란 그의 인간적인 면면을 배제하고 그의 사상과 이론만이 ’그‘인 것처럼 평가되고 논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벤야민의 문학적인 저서를 처음으로 접해보며, 나는 이 인물이 하나의 인간이며 문학으로 삶과 자신의 이론을 복원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다시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벤야민을 논할 때 이 저서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