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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둥둥」은 주인공인 ‘은탁’이 좋아하는 아이돌 ‘형규’를 위해 구한 마약 머핀이 든 형규의 캐리어와 함께 호수에 빠져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이다.


은탁은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갈팡질팡한다. 첫 번째 선택은 ‘캐리어를 붙들고 구조를 기다리기’이다. 이러한 선택은 은탁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돌인 형규의 사회적 지위가 무너지게 만든다. 두 번째 선택은 형규의 마약 투여 사실이 까발려지지 않도록 캐리어를 열어 모든 머핀을 물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선택을 할 경우 은탁은 익사할 것이다.


소설 속 은탁은 자신이 죽는, 즉 형규를 위해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이런 은탁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피가 섞인 가족도 아니고, 일개 연예인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선택을 이해한다. 가까운 듯싶으면서도 아주 먼 존재인 아이돌을 한 번이라도 좋아해 본 ‘덕후’들 또한 그녀의 선택을 이해라리라 생각한다.


너무나도 선명하여 눈에 보일 것만 같은 은탁의 사랑이, 호수 위에 떠 있는 캐리어처럼 갈 길을 잃은 채 둥둥 떠다니는 소설 ‘둥둥’을 읽으며 나는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빛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처럼 청춘의 일부를 바쳐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때의 내가, 생기 넘치던 그 순간들이 그리워 나는 조금 울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무릇 ‘아이돌’이란 존재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불쑥 찾아와 삶 속에 천천히 스며든다고. 최애, 아니 이제는 나의 ‘구’최애 또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맘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라이브 방송과 아이돌과 팬이 대화하는 채팅 어플을 굉장히 자주 왔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도 푹 자라는 그의 글이, 행복한 하루 보내라는 인사말이 인생을 실패했다는 생각에 SNS를 끊고 살던 내겐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사적으로 아는 사이도, 실제로 본 적도 없었지만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그는 예술을 사랑했고, 그림을 취미로 삼았으며, 독서 또한 꽤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나는 그와 내가 꽤 비슷한 부류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를 무대 위의 ‘아이돌’로서 보단, 한 명의 사람으로서 좋아했던 것 같다. 무대 위의 빛나는 모습 또한 물론 좋아하긴 했지만, 편한 옷차림을 하고 오늘 느낀 사유에 대해 얘기하는 라이브 방송을 더 좋아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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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입덕 한 이후 나는 매일 블로그에 일기를 남겼다. 사실 ‘일기’는 핑계고, 매일매일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었던 것 같다. 내가 남들에게 듣고 싶은 말, 혹은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었던 문장들…. 내가 아는 예쁜 말들을 다듬고 세밀하게 가공 해 블로그에 써넣었다. 지나가다 혹시 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 비공개로 돌려 둔 그때의 일기들을 보면 어떻게 그런 말들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 같다.


우리가 바다를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유동적인 인간의 생과 다르게 항상 그 자리에 고여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이런 바다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랬다. 변동도 많고 우여곡절 한 일을 많이 겪는 파도 같은 삶을 사는 그가, 어떤 일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을 지킨 채 그 자리에 굳건하게 있어 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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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더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웃돈을 주고 비싼 콘서트 자리를 양도 받고, 그가 읽었다던 책을 따라 읽고, 그가 좋아하는 예술 전시를 따라 봤다.

 

그런 그를 그만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의 사생활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가 엄청나게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너무나도 어리숙해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노출된 사생활이 내가 알고 있던,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기에.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나는 탈덕을 했다.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마음속에 거대한 돌을 얹고 살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그를 보면서 힘을 냈는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었다. 그를 검색하면 뜨는 안 좋은 댓글과 글들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제일 속상했던 점은 그가 일구어낸 성과와 결과까지 함께 폄하 당하는 것이었다.


소설 속 은탁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인 현규를 마치 자신의 분신인 것 마냥 아껴준다. 집과 차를 팔아서까지 그를 서포트해 준다. 지금 생각 해 보면 나 또한 그를 정말 ‘나’와 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풍경을 보면 그에게 보여주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보내주고 싶고. 나뿐만 아니라 지금도 수 많은 덕후들이 자신의 아이돌을 향해 이런 숭고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을 것이다. 덕후들의 사랑은 왜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하여 애처로운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런 감정을 만드는 것일까.


‘가비지타임’이라는 웹툰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안녕? 넌 날 모르겠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박병찬이란 캐릭터가 최종수란 캐릭터에게 던지는 대사이다. 그래. 너무나도 사랑하고 소중해 때론 행복하게, 때론 너무나도 괴롭게 만들었던 나의 최애야. 넌 날 모르겠지만, 그리고 영원히 모르겠지만. 난 널 만나기 위해 언제나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이 더 이상 소중해지지 않은 지금, 이제는 정말 너를 보내줘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때만큼 순수하게 널 좋아할 수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나이니까.


그래도 내 구 최애가 아프지 말고 일상 속의 즐거움을 찾아나가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투명한 그는 자신의 몸에 번진 외로움을 잘 숨기지 못하니까.

 

이 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좋아했다. 이젠 정말, 뜨겁게 뜨겁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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