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지브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유명 클래식 작곡가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부터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은 오리지널 OST까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관람에 앞서 어떤 곡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슬쩍 들여다본다. 1부 클래식 편곡에 사용된 클래식 곡은 지난 <지브리 페스티벌>의 셋리스트를, 작품들과 관련된 각종 일화는 『지브리의 천재들』(포레스트북스, 2021),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샘터, 2016)를 참고했다.
산책
공연의 시작을 알리며 연달아 연주되는 두 곡 '바람이 지나가는 길'과 '산책'은 모두 <이웃집 토토로>의 OST다.
시골 마을에 이사 온 자매가 숲속에서 '토토로'라 불리는 숲의 요정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작품으로, 스토리는 몰라도 토토로라는 캐릭터를 모를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실제로 1988년 일본에서 개봉 당시 작품 자체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이후 토토로 인형이 큰 인기를 끌며 작품도 더 많이 알려졌다. 고양이와 토끼를 합친 듯한 묘한 매력의 토토로는 지브리의 로고에도 그려지며 지브리의 마스코트가 되기에 이른다.
지브리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일상적인 색채가 강해서일까 어딘가 비장하거나 쓸쓸한 느낌이 드는 다른 곡들에 비해 <이웃집 토토로>의 OST, 그중에서도 오프닝 곡인 '산책'은 밝고 씩씩하다. 지난 공연에서 '산책'은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 스타일로 편곡된 바 있다. '헝가리 광시곡' 중에서도 잘 알려진 이 곡은 여러 매체에 활용되어 귀에 익은 곡이다.
특히 경쾌하고 빠르게 몰아치는 후반부를 들어보면 이 곡이 '산책'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너무 유명해서 어떤 수식어를 붙이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고 이제는 우리 시대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작품에는 그에 걸맞는 OST가 존재하는 법.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그런 곡일 것이다. 작품 후반부에서 당부받은 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터널을 빠져나온 치히로가 차를 타고 터널에서 멀어지는데, 이때 엔딩 크래딧과 함께 차분하게 흐르며 짙은 여운을 남기는 곡이 '언제나 몇 번이라도'다.
히사이시 조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OST의 대부분을 담당했기에 이 곡도 그의 작품이라 아는 사람이 많은데, 이 곡은 예외적으로 가수이자 작곡가인 기무라 유미가 작곡하고 직접 노래를 불렀다. 알고 들으면 히사이시 조와는 약간 다른 정서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브리 페스티벌>에서는 이 곡의 편곡에 비발디의 '사계'를 녹여냈다. 각각으로는 익숙하지만 함께하는 건 상상이 잘 되지 않는 두 곡이 어떻게 섞이는지 궁금해진다.
그날의 강
'그날의 강'은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다.
오프닝 곡인 '어느 여름날'의 메인 테마가 반복되는 곡으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가운데 히사이시 조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듣다 보면 작품의 특정 장면 몇몇이 떠오른다. 처음 보는 낯선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하쿠가 건넨 주먹밥을 울면서 먹던 치히로의 모습도 그중 하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특유의 먹먹하고 그리운 분위기는 이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날의 강' 편곡에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사용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동명의 소설도 잘 알려져 있고, 애니메이션이나 소설에 등장하기도 해서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꽤 높은 곡이다. 파반느는 2박자의 춤곡을 의미하는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역시 느리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어떻게 편곡이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전개되고 묘한 슬픔이 묻어나는 '그날의 강'과 잘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벼랑 위의 포뇨
클래식 편곡으로 꾸려진 1부가 마치고 나면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리지널 OST를 들을 수 있는 2부가 시작된다. 2부 첫곡인 '어느 여름날'의 여운이 지나가고 한결 유쾌한 분위기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건 <벼랑 위의 포뇨> OST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두 달간 항구도시 도모노우라에서 지내며 아이디어를 얻은 이 작품은 전작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에 주인공의 나이도 다섯 살로 훌쩍 어려져 가족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강하다. 바다에서 인간 세계로 온 포뇨는 토토로를 뛰어넘는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짐과 함께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작품을 위해 아버지와 아이가 욕조에서 함께 부르는 느낌의 음악을 원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 어린 딸을 키우던 작화감독 콘도 가쓰야에게 작사를 맡겼고, 그 결과 의성어 의태어가 돋보이는 통통 튀는 음악이 완성되었다. 포크송그룹 '후지오카후지마키'의 후지마키 나오야와 당시 9세였던 오하시 노조미가 함께 부른 이 주제곡은 지브리 OST중에서는 드물게 우리나라 버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가수가 새로 부른 게 아니라 원작 가수들이 한국어 가사를 외워 부른 것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인생의 회전목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꼽자면 단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일 것이다. 하울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와 시시각각 나이가 변하는 소피. 이 두 사람의 모험이 움직이는 성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지브리만의 환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이 작품은 수많은 해석을 낳으며 지브리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메인 테마인 '인생의 회전목마'는 이야기 전체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오는, 작품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음악을 만들 때 미야자키 하야오는 히사이시 조에게 하나의 테마만으로 작품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때문에 히사이시 조는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우리가 아는 '인생의 회전목마'는 처음 작업하던 것을 한 번 엎고 새롭게 작업한 세 곡중 하나라고.
너무 유명한 곡이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지만, 똑같은 '인생의 회전목마'는 하나도 없다. 이번 공연에서는 아르츠 심포니 오케스트라만의 '인생의 회전목마'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너를 태우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 OST인 '너를 태우고'다. 다른 작품에 비해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좀 낮을지라도 일본에서는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늘 꼽히는 이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기념비적인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늘을 떠 다니는 전설의 섬 라퓨타, 그런 라퓨타를 차지하려는 세력과 지키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서는 이후 지브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반전사상과 인간의 탐욕에 대한 비판의식이 잘 녹아 있다.
'너를 태우고'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메인 테마다. 시타와 파즈 두 아이가 라퓨타를 지배하려는 무스카로부터 라퓨타를 지키기 위해 '파멸의 주문'을 외우고 하늘로 날아가는 엔딩에서 이 곡이 흘러나온다. 스케일이 큰 작품의 엔딩곡이라서일까, 지브리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무려 800명의 합창으로 공연되어서일까 웅장한 느낌의 드는 곡이다. 그렇기에 <지브리 페스티벌>의 엔딩곡으로도 걸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