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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강렬하다. 영화를 다 보고 처음 떠오른 단어였다. 14분가량의 짧은 단편영화임에도 영화의 끝에 제목이 커다랗게 올라가는 것을 보며 멍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영화는 여자와 남자가 좁은 모텔방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시작된 대화는 여자가 고등학생이 맞는지 ‘처음’인지 물어보며 점차 성격을 바꿔간다. 남자는 여자와의 성관계 전에 여자가 제시한 ‘조건’이 진짜인지 거듭 확인한다. 그 과정에서 노골적이고 불쾌한 단어들이 오가며, ‘조건’이 거짓말임이 밝혀지자 여자의 몸값은 100만 원에서 17만 원으로, 7만 원으로 떨어진다.


남자가 씻기 시작하고 여자가 방을 나가면서 영화는 천천히 반전을 향해 나아간다. 여자가 다시 모텔 내부로 들어갔을 때, 거기에 남자는 없었다. 장기매매를 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이 현찰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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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남자와 여자가 대화하는 장면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인다. 누군가 내 앞에서 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데도 어딘가에서 저런 말들이 오가고 있음을 쉽사리 상상할 수 있었다.

 

동시에, ‘처음’인 고등학생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 백만 원을 가지고 오는 남자가, 여자의 몸에 자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가치를 매기며 사람을 돈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가 반대로 가격이 매겨지는 존재가 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다. 대부분의 현실에서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아무 일도 없던 척 일상으로 되돌아갈 확률이 훨씬 클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뒤바뀌는 순간, 영화 또한 현실에서 비현실로, 현실에서 영화로 뒤바뀐다. <몸 값>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사실 영화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옥상에 있던 수많은 여성들이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 모텔에서 조직적인 장기매매가 이뤄지고 있는지 등등. 어쩌면 이들은 피치 못 할 사정 혹은 강제적인 무언가로 인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주도적으로 장기매매 시스템을 구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술했듯 영화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부분을 그저 상상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 속 장기매매 시스템이나 그것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찜찜함이 일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저 관계의 전복에 힘을 실어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오로지 여성의 몸을 사려 하는 남자와, 자신을 파는 척 남자를 속이고 그를 팔아치우는 여자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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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학생이 아니고 ‘처음’이 아니라며 ‘몸값’을 흥정하던 남자는 흥정당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제 남자에겐 이름이 없다. 그는 안구 180만 원에서 시작하는 “504호 AB형 상품”일뿐이다.


자신의 ‘몸값’이 얼마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돈만 있다면 정말 ‘무엇이든’ 살 수 있을까?


남자에게 값을 매길 수 있는 까닭은 남자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안구, 치아, 콩팥, 위 등으로 분해되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인간이 아닌 물건이기에 값을 매길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면, 남성이 여성을 돈을 주고 사려 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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