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아트잡 박람회에서 손상원 공연 프로듀서의 특강을 들었다. 공연 프로듀서 (이하 공연기획자)가 꿈을 현실로 만드는 다소 낭만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세상을 무대 위에 구현해 내는 사람.
그러나 공연 기획자의 업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술가와 투자자 사이에서 각각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하는 ‘통역가’이자 투자자와 배우 및 스태프들을 설득하는 ‘설득가‘ 도 겸하고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책 <무대 뒤에 사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타이밍인가.
뮤지컬의 커튼콜에서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피트의 어두운 곳에 있는 연주자들에게도 힘찬 박수가 쏟아진다. 시야에 보이지는 않아도 소리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공연 퀄리티의 막중한 부분을 차지한다. 굳이 따지자면 무대 반쯤 뒤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무대 뒤에 있으며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로 공연기획자가 그렇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애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의 노고를 전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관객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 기획자만이 할 수 있는 남다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공연기획자의 목적과 목표는 돈, 흥행, 재공연, 투자 같은 명사보다 계속, 오래도록, 함께, 지속하고 싶다 같은 형용사 또는 부사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그것들과 더 닮았다고 믿는다."] - p.60
흔히 공연기획자를 떠올리면 공연에 필요한 예산을 끌어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상업성이 워낙 짙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공연의 흥행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닐지 추측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공연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바라고, 함께 일한 동료들과의 또 다른 공연을 꿈꾼다. 공연 기획자들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공개되지 않을지라도 현시점에서 왜 이 작품을 공연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다. 자기만의 명확한 목소리를, 공연을 통해 표출해 내는 이들이 참 멋있게 느껴진다.
“관객 반응이 좋을 때는 모든 피로가 사라져요. 공연이 끝난 후 ‘또 보고 싶다’, ‘너무 재밌었다’ 같은 피드백을 들으면 그 순간 모든 고생이 잊히죠.”라고 말한 서울아트랩 대표 김서현 공연기획자처럼 공연 기획자들은 관객을 바라보며 일한다. 따라서 관객들은 단순한 관람에서 벗어나 시야를 입체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공연이 있기까지 검은색 스태프 옷을 입고 공연장을 무수히 뛰어다녔던 사람들, 그리고 그 전에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처음 결정한 공연 기획자. 무대 밖의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씨어터 고어가 되는 길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