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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부처핸섭, 극락도 락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불교 트렌드가 정점을 찍었다. 이제는 월드 스타로 거듭난 제니의 신곡 ‘ZEN’이다.

 

 

 

 

지금까지 여러 대중문화에서 수많은 메타포로 쓰인 개신교와 다르게 불교는 명상이나 수행법 등의 실천적인 덕목으로 인지됐다. 특히 서양에서 불교는 동양적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오리엔탈적인 요소로 해석되며,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같은 개신교적 내러티브에 비해 불교는 여전히 철학적 개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 불교가 어느덧 하나의 ‘트렌디함’으로 자리 잡았다. 아시아 정체성을 다루는 콘텐츠가 많아진 것과 더불어 불교 역시 동양의 종교라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내러티브를 부여할 수 있는 대중성을 띠게 된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는 불교 철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단순한 동양적 미학을 넘어 ‘공(空)’과 ‘무아(無我)’ 같은 개념을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작품 중 하나이다.


 

 

바로 여기에 존재할 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는 표면적으론 중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멀티버스 세계관을 통해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 중 한 층이 바로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인물들의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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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악당인 ‘조부 투바키’는 주인공 에블린의 딸이다. 그녀의 탄생은 비극에서 시작된다. 멀티버스의 지배자로 거듭난 에블린이 딸을 극한으로 훈련 시키는 과정에서 창조된 조부 투바키는 조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총합이다.

 

인생의 모든 방향을 더한 삶은 어떠할까. 과연 신과 같은 전능함을 느끼게 될까. 모든 멀티버스를 지배하며 그녀가 느낀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절망이었다. 크기는 무한하지만, 방향을 잃은 나침반은 0으로 향한다. 무(無)의 세계로 향한다.


"Nothing matters." 니힐리즘에 빠진 그녀는 세상을 멸망시키려 한다. 베이글 안이라는 커다란 구멍 안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길 바란다. 이러한 조부 투바키의 사상은 고정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과 공(空) 사상이 극단적으로 변질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조부 투바키와 대적하는 에블린은 그녀의 멀티 버스 중에서도 최악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에블린이다. 에블린 역시 세탁소 주인이 된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끊임없이 다른 가능성의 삶을 열망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부 투바키와 함께 베이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뻔한 에블린은, 나약한 줄만 알았던 남편이 건넨 말에 ‘세 번째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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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Please, be kind."]

 

불교에서 세 번째 눈을 뜨는 것은 사물의 실재를 꿰뚫는 능력을 얻었다는 뜻이다. 세 번째 눈을 뜬 궁극의 존재가 바로 석가모니다. 불교에서 제3의 눈은 단순히 물리적인 주시가 아닌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영적인 인식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어린이들의 만들기 재료로 흔히 사용되는 ‘구글리 아이’를 제3의 눈으로 표현하여, 조부 투파키의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을 탈피해 지금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에블린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부처나 명상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영화의 내러티브가 불교 철학과 매우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나


 

제니의 신곡 ‘ZEN’은 명백히 불교의 선(善)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에서 불교의 수행법인 선(善, Zen) 사상을 착안하여 탄생한 신곡 ‘ZEN’은 신라시대 최초의 여성 지도자를 탐구하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입지를 개척해 나갈 자신의 커리어와 접목하고자 한 결과다.


뮤직비디오 속 화려한 신라 금관을 입은 제니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전면으로 보여준다. 제니는 한 인터뷰에서 ZEN을 선공개곡으로 고수한 이유에 대해 자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곡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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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ody gon' move my soul, gon' move my aura, my matter"]

 

후렴부에 반복되는 가사처럼 이 노래의 핵심은 누구도 자신의 본질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면의 평화와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가사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불교의 궁극적인 가치와도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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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니 인스타그램 (@jennierubyjane)

 

 

평소 패션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떨치는 제니답게 의상에서도 이러한 불교적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목걸이의 정중앙에 위치한 제3의 눈이다. 에블린이 이마에 단 '구글리 아이'처럼, 내적인 깨달음과 평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자신의 뿌리를 선언하며 불교적 텍스트로 읽힐 수 있는 요소를 택한 것은 제니가 지향하고자 하는 예술적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치들은 창작자로서 가진 제니의 고유한 색을 보여주며,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를 그녀를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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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중문화 속의 불교는 고유의 철학을 서사적으로 풀어내는 세련된 메타포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아시아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며 불교적 내러티브를 활용하는 사례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고유한 내면의 가치를 인정하고 개인적 수행을 중요시하는 불교 사상은 점점 파편화되는 현대인의 정체성과 맞물리며, 대중문화 전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떨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이제는 세 번째 눈을 뜰 차례다. Nobody gon' move your soul, gon' move your aura, your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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