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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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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의 초등학교 때는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법이 '문구'에 달려 있었다.

 

먼저 편선지. 누가 신박하고 예쁜 모양의 편선지를 자랑하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또 하드보드 필통이 유행이어었는데 서랍이나 거울 등이 달려 있으면 점수가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샤프. 인기 캐릭터 샤프 끝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게 포인트다. 그중 나는 미피 샤프를 가장 부러워했다. 미피의 귀를 딸깍딸깍 누르는 것이 중독적이었고 무엇보다 귀여웠다.

 

동그란 눈. 쫑긋 세운 귀. X자 입. 짧은 팔다리. 손재주는 뛰어나지 않지만 귀여운 건 포기할 수 없는 초등학생에게 미피는 최적의 캐릭터였다. 단순함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교과서 한 귀퉁이에 토끼를 그릴 때면 미피를 떠올리며 그렸다. 고양이는 X티. 펭귄은 X로로. 토끼는 미피.

 

미피는 그렇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와 함께 자랐다. 그리고 지난 주말, 인사동에 미피의 생일잔치가 열렸다고 해 인사동을 찾았다.

 

<미피와 마법 우체통> 전시회는 미피의 70주년 생일 기념전이다. 나보다 나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관록이 깊은 캐릭터일 줄이야. 그동안 내가 너무 미피의 외관에만 팔려 미피 이야기에 소홀했다는 걸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이번 전시회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전시회이기도 하다. 크게 9구역으로 구성된 전시는 미피의 집, 이웃 가게, 학교, 도서관, 숲 언덕 등 미피 세계관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미피 옆의 돼지, 곰 캐릭터가 낯설진 않았지만 그들의 이름이 뽀삐, 바바라라는 건 처음 알았다. 미피의 가족 가계도부터 친구, 이웃과의 관계도 자세히 적혀 있었는데, 읽는 내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던 친구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어 새롭고 설렜다.

 

또한 미피가 여전히 어린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캐릭터인 만큼 이번 전시에 체험이 빠지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옷걸이를 대면 미피의 옷이 바뀌고, 게임처럼 그림에 맞는 재로를 맞추면 바바라 가게 음식이 완성되었다. 커다란 TV 화면 속 미피와 친구들을을 빤히 쳐다 보는 아이들의 시선과 꺄르르 웃음 소리에 잘 만든 전시인 게 체감됐다.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나로서는, 미피 캐릭터도 물론 반가웠지만, 딕 브루너 작가와 그의 다양한 작업을 보여주는 구역이 가장 인상 깊었다. Less is more. 그의 미피 창작 과정을 관통하는 메세지다.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에서 시작된 미피. 직관적인 그림과 단순한 구성으로 아이들이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욱 펼칠 수 있도록 덜어냄의 미학을 택했다.

 

단순한 그림체에 미피를 완성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작업 영상을 보면 신중하게 선을 그려 완성한다. 되려 고도의 계산 끝에 나온 결과물인 것이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존경스럽다.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아쉬움에 하나 둘 덧붙이게 되는데 과감하게 군더더기를 포기하는 모습이 강단 있어 보인다.

 

전시를 다 보고 나니, 부족했던 미피에 대한 이해도가 채워진 기분이었다. 중학교 때 친구가 미피 입은 누가 꼬맨 거라는 괴담을 알려줬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비밀을 알게 됐다. 또한 미피의 부모님 입과 미피 입 사이 차이점도 알게 됐다. (비밀이 무엇인지는 직접 방문해서 알아보시길. 하하) 이번 미피와 우체통은 어린 시절 미피를 좋아헀던 어른이와 귀여운 캐릭터가 최고인 아이들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머릿 속 미피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고 싶다면 이번 전시회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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