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아주 오래 여행에 떠나있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여행 얘기를 할 때면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관광이랑 여행은 다른 거야”
뭐가 다를까? 통상적으로 ‘관광’하면 떠올리는 것은 패키지 여행이다. 여행사에서 촘촘히 짜준 스케줄에 다 같이 발맞춰 움직이는 관광 상품. 그리고 여행이라고 하면 배낭 하나만 들춰 메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앞서 말한 지인이 여행과 관광을 철저히 분리한 것에 대해 그 당시엔 곧바로 공감했으나, 내가 감히 누군가의 행위를 ‘진짜가 아닌’, ‘상품에 불과한’, ‘겉핥기 식의’ 따위의 수식어로 재단하고 폄하해도 되는가에 대한 죄책감이 나중에 와서 들었다. 그래서 나의 여행 혹은 관광을 표본 삼아 그 두 가지가 정말로 다른 개념인지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비교를 위해 ‘관광’과 ‘여행’을 먼저 가지고 있던 선입견으로 분류한 뒤 다시 성찰해 볼 것임을 알린다.
아이슬란드 (2024년 2월)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났다. SNS와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오로라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적을 목격한 것처럼 반응했기 때문에, 오로라에 대한 나의 환상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우리는 ‘오로라 투어’를 3박 4일 여행 중 매일 밤 예약해야 했다. 마지막 날 밤에서야 오로라를 보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투어 버스가 수십 대씩 다녀가는 정거장 앞에 서서 우리가 예약한 투어사의 차량을 기다렸다. 가이드는 오늘의 ‘오로라 지수’ 같은 것을 언급하면서 오로라를 볼 가능성에 대해 불확실하게 언급했다. 깜깜한 밤 작은 봉고차에 옹기종기 모여탄 ‘관광객’들은 ‘왠지 오늘은 볼 수 있을 것 같아’하는 희망을 안고 가이드가 좋은 스팟으로 자신들을 데려가 주기를, 투어 비용을 떠올리면서 더더욱, 생각한다. 결국 마지막 날 오로라를 보았지만 육안으로는 생각보다 선명히 보이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다. 아주 짙은 오로라여서 뚜렷이 잘 보였다 할지라도 그만큼 열광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오로라를 찾아간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고 실망했으니, 여행을 망친 걸까?
아니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오로라를 꼭 보지 못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는 한쪽 면은 흰색인 양면 색종이 같은 곳이었다. 흰색인 줄 알고 뽑으면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의 형형색색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고, 뒤집어서 색깔을 보고 뽑으면 반대편의 흰색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 눈으로 뒤덮인 레이캬비크에는 가지각색의 지붕들이 솟아있었고, 나는 그런 점이 참 인간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유명하다는 것들을 중심으로 여행 일정은 채워져 있었다. 방송을 탔던 핫도그 가게, 폭포와 빙하 투어, 블루라군 온천 등이 그러했다. 이러한 우리의 일정은 아무래도 ‘관광’스럽다고 봐야할까?
사 먹은 핫도그보다는 비싼 투어에 소진한 예산 때문에 직접 만들어 먹은 핫도그가 더 맛있었다. 장엄한 자연을 보면서는 아버지가 오셨으면 좋아하셨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 맥주와 함께 수다를 떨면서 그 얘기를 했다. 화산이 터져 블루라군 온천 예약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네 수영장을 찾아갔다. 도롯가에 떡하니 지어진 건물 벽에 둘러싸여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았던 순간, 몸에 동시에 닿아있던 온기와 냉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오로라 보기에 실패한 이틀 밤 동안 ‘무엇을 기다리니?’ 하고 묻는 듯 세상을 내려다보던 촘촘한 별들에 우리는 추운 몸을 떨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쯤 가이드가 나눠준 핫초코 한 잔에는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마지막 날 조금 쉬기로 한 중에 잠시 빠져나와 아이슬란드에서 살고 계신, 우연히 비행기에서 친해지게 된 분을 만났다. 맥주 두어 잔을 하고 살짝 취기가 올라서 걸었던 트외르닌 호숫가도 아른아른 기억에 맺혀있다.
관광 버스를 타는 동안 차창으로 끝없는 설원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그리고 둘째 날 밤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무한한 우연의 연쇄가 존재에 작용한다. 어쩌면 이 우주 자체가 우연이다. 오로라나 별똥별만이 위대한 우연은 아니다. 도시의 불빛들, 햇살에 비친 모래알들, 아스팔트에 내린 밤비… 그래서 더 경이로운 건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런 우연적인 마음”
아이슬란드가 이 글의 질문에 남기는 조언은 ‘우연’에 관한 것 같다. 여행의 즐거움은, 사실 인생 전체의 즐거움은 우연이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관광과 여행을 우연적 요소의 양적 차이로 나눌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모호한 것이, 여행사의 경험과 서비스 없이는 접근이 어려운 공간에서, 그들이 제공하는 신체적·정신적 안정 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우연적인 마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계획이 우연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대한 우연을 만났을 때의 감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모로코 (2024년 5월)
모로코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 어떤 국가보다도 ‘별천지’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싶은 곳이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어서 그런지, 견문이 부족한 나에게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새롭고 놀라운 곳이었다. 영토는 넓지만 교통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하루에 이동 시간이 10시간이 넘는 날이 5박 6일 동안 3일 정도 되었다. 그럼에도 이동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는 굉장한 나라였다. 현대식 도시, 유럽식 부촌스러운 마을, 농촌 마을, 그랜드 캐니언을 방불케 하는 협곡, 숲, 저수지 등 자연과 인공이 다채로움의 경지에 다다라서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로코야말로 관광과 여행을 견주어보기에 아주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여행지로서의 장점에서 알 수 있다. 관광업이 없으면 쉽게 이 광대한 나라를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관광업이 완벽히 자리 잡지 않은 덕에 날 것의 모로코를 느낄 수 있다.
대도시인 마라케시에서 모로코 사람들의 뜨거움을 느낀 후, 메르주가의 사하라 사막에 떠 있는 태양의 뜨거움을 느끼러 갔다. 이곳에는 아주 유명한 사막 투어가 있는데, 사하라의 모래를 밟아보고 싶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열이면 열 이곳으로 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라케시에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깨끗한 호텔과 푸짐한 음식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한국을 좋아하는 가이드 청년의 안내에 따라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넜다.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들은 그곳에 다 준비되어 있었다. 애초에 낙타를 타는 것부터, 시원한 물, 인생샷을 남기는 방법, 액티비티를 위한 사륜차와 샌드보딩, 저녁 식사에는 조금 덜 맵게 끓인 불닭볶음면까지. 마지막엔 아프리카 전통 음악까지 라이브로 연주해 주었는데, 아무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 없어 보여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즐거움을 사기 위해 돈을 낸다는 것이, 서비스업 자체에 대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자러 가기 전 잠시 막사를 나와 사람들과 함께 모래에 누워서 사막을 덮고 있는 별들을 세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지각하였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했다. 그날 밤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온 혁오의 ‘공드리’는 처음으로 나에게 음악이 심장을 후벼판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이러한 순간을 주는 사막에 내 발로 걸어온 것일까, 데려다 놓아진 것일까.
다음 목적지는 쉐프샤우엔이라는 작은 산골 도시였다. 보통 모로코 여행을 계획하면, ‘그 파란색 마을! 예쁘던데, 가고 싶어!’라는 말과 함께 후보에 오를 도시이다. 우리도 딱 그렇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쉐프샤우엔은 나의 오만을 폭로해 준 도시이다. 나는 그곳에 가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다. ‘인스타용 도시’. 다시 말해 ‘관광용’으로 파랗게 칠해져서 예쁜 사진 외에는 딱히 ‘여행’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도시. 그런 마음으로 애초에 거길 왜 가겠다고 했던 지도 의아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건방을 안고 그곳에 갔기에, 일종의 참회를 할 수 있었다. 쉐프샤우엔은 15세기 중반 포르투갈에 대항한 기지로 처음 건설되었다. 이후 15세기 말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온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도시를 채웠고, 세계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학살을 피해 온 유대인들의 영향으로 하얗던 마을은 파랗게 물들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유대인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한 붓 한 붓 칠해 갔던 것이다. 그런 역사를 알고나서 본 쉐프샤우엔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나의 오만을 응시했다. 나는 반성했고 아름다움을 더욱 만끽했다.
마치며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관광과 여행 사이에 놓인 선입견, 우연, 물질만능, 오만을 발견했다. 사실 시작부터 답은 조금 뻔했을지도 모른다. 관광과 여행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아마도 여행이 관광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다만, 관광업의 딜레마가 (가성비를 과도하게 추구하다 경시되는 여유, 오롯이 과시 또는 전시를 위한 경험 설계 등) 여행의 목적을 조금씩 벗어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여행을 인생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 완벽한 인생, 진짜 인생과 가짜 인생이라는 것은 없다. 저마다의 여행이 있을 뿐이다. 나의 여행이 기다리는 우연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여러 삶을 관광하자. 그리고 타인의 여행에 눈부신 우연이 있기를 바라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