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개나 프롤로그를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필자 역시 앞부분은 습관적으로 넘겨버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도서에서는 습관을 잠시 던져두기를 추천한다. 여기에는 각각 이유가 있는데, 먼저, 책날개에서 신인철 작가와 부쩍 가까워질 수 있다.
보통의 경영 도서에서는 작가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기 바쁜데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에서는 신인철 작가의 러브스토리로 포문을 연다. 좋은 학벌이나 경력은 잠시 뒤로하고 아내, 미술관, 탕수육, 럭비, 그리고 레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탈하고 또 진정성 있는 작가 소개를 읽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열린다. 작가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그렇게 프롤로그로 넘어가면, 제목에 대한 대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
개인적으로 보자마자 시선을 빼앗겼던 질문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미술관에 다니는 것도 몰랐는데, 왜 갈까? 하고 질문을 던져버리니 호기심이 저절로 차올랐다. 그래서 도서를 받자마자 비닐 포장을 뜯고 이유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프롤로그에서는 과거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문구를 언급하고 있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예전만 해도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일하고, 재빨리 일하면 조직 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인재로 인정받기는커녕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근면과 성실 대신, 남다른 감성이나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력을 갖춘 문제해결 능력이 진정으로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남다른 감성, 통찰력,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을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괴슬러 이론에서는 '이연연상 능력'을 이야기한다.
이연연상: 서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고 패턴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하나의 새로운 패턴으로 만들어내는 것, 또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요인으로부터 다른 영역에 있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
작가는 여러 사례와 문헌 기록 등 무수히 많은 자료를 통해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이러한 이연 현상을 가장 많이 발휘하거나 훈련받는 공간을 찾아냈다. 바로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은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들을 모아놓거나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최초로 설립을 기획한 사람과 실제로 만들어낸 사람, 그에 유무형의 기여를 한 사람과 사사건건 반대를 하며 다른 논리를 들이댄 이들의 협력과 공조, 다툼과 반목의 역사가 담겨 있다.
따라서 세계의 인재들 역시 휴일에 머리를 식히고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서 미술관을 찾던 것이 아니다. 해당 미술관과 그를 만든 사람들, 소장된 작품들, 연관된 에피소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영감을 얻고 이연연상을 발휘해냈던 것이다. 그렇게 경영환경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것들을 배우거나 머릿속을 메우고 있던 난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도쿄의 택시 운전사를 따라서 모리 미술관으로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부터 서울의 간송 미술관까지. 책을 읽으며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시설이라고 생각했던 공간들이 사실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비하인드는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도출해 냈다.
해당 글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도쿄의 「모리 미술관 Mori Art Museum」이다. 이곳을 알게 되면서 '미술관은 원래 적자를 보며 고상하게 운영하는 곳이다'라던 기존의 생각이 뒤바뀌었다. 어떤 미술관들은 높은 이윤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뭉친 철저한 비즈니스 공간이었다.
사진 제공: 모리 미술관
일행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간 신인철 작가. 그들은 롯폰기에 위치한 미드타운에 잠시 들러 구경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천천히 둘러볼 시간이 부족했기에 택시로 이동하며 동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미드타운이 있는 거리로 좌회전할 무렵,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혹시··· 일본어를 할 줄 아십니까?"
별안간 택시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필리핀식 택시인 툭툭이나, 베트남식 택시인 쎼움을 탔다면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나, 일본인이 운전하는 일본 택시였기에 놀라웠다.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말을 거는 일을 무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인 일본에서, 원래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의를 갖추는 편인 택시 기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대화를 시작한 이유는 이러했다. "미드타운이 최근에 오픈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대부분의 볼거리가 상점이라서 낮에 가는 것이 좋다. 반면, 대각선 맞은편의 모리타워 52층과 53층에는 일본에서 가장 높고 비싼 곳에 자리 잡은 모리 미술관이 있는데, 분위기도 좋고 지금 방문하면 환상적인 도쿄의 야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택시 기사는 돌아오는 이득도 없으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모리 미술관은 직장인 등을 위해 밤 10시까지 개관을 한다"며 마지막까지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결국 일행은 원래의 계획을 뒤로하고 모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반신반의하며 모리 미술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작가는 벅찬 감동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저녁 7시, 미술관을 방문하기에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층 출입구는 환하게 밝혀져 있었으며, 입장하려는 인파가 만들어낸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전형적인 회사원들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 어린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와 밤거리 마실을 나온 듯한 노부부까지. 세계 곳곳의 미술관들에 자주 방문하는 신인철 작가에게도 생소한 광경이었다.
도저히 잘 될 수 없는 미술관
사실 모리 미술관은 위와 같은 악평을 들었었다. 더 나아가 '존재할 수 없는 미술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바로 미술관의 입지 문제 때문이었다. 미술관은 값비싼 작품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시설을 운영하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모리 미술관은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롯폰기, 그중에서도 가장 노른자 땅 위에 들어선 초고층 빌딩의 최상위층에 자리 잡은 것이다.
실제로 모리 미술관 자체로 보면 적자가 나는 구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바로 미술관이 건물 전체에 뿌려주는 '폭포수 효과' 덕분이다. 미술관에 흥미를 갖고 방문한 사람들이 건물 전체를 이용하며 돈을 쓰기 때문에 모리 타워의 소유주로서는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
그렇다면 '폭포수 효과'는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만약 돈을 잡아먹는 미술관이 고객 유치까지 못 했다면 모리타워에게 큰 위협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모리 미술관은 똑똑하게 '빌림의 역사'를 써 내려가며 성공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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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영입하기 쉽고 말도 잘 통하는 일본인 대신, 옥스퍼드 현대미술관과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큐레이터와 디렉터로 활동했던 영국인 미술행정가 데이빗 엘리엇을 초대 관장으로 영입했다. 그 결과, 관장은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모리 미술관에 전수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계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신생 미술관으로서는 쉽게 유치하기 힘든 현대 미술계 거장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중 한 명이 '루이즈 부르주아'였다. 프랑스 여류 조각가로 유명한 그녀의 작품을 들여오며 다시 한번 '빌림의 역사'를 썼는데, 바로 모리타워의 지상층 일부 공간을 빌린 것이다.
사진 제공: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 中 49p
다른 유명 미술관에 비해 모리 미술관은 고층 빌딩의 상층부에 있다 보니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할만한 야외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모리타워의 지상층에 거대한 청동 조형물인 「마망」을 설치한 것이다.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공간에 미술품을 설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모리 미술관은 고민 끝에 과감하게 추진하였고 그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설치와 동시에 9미터가 넘는 조형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본 언론들은 앞다퉈 거대한 거미를 방송에 내보냈다. 원래의 목적대로 1층의 공간이 미술관의 연장선인 야외 전시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빌림의 역사'는 계속됐다. 2대 관장이었던 '난조우 후미오'는 새롭게 개최하는 기획전을 홍보하기 위해 한 택시회사와 협업하였다. 베테랑 기사들 위주로 41명을 선발하여 모리 미술관의 미술품들을 관람하는 기획 행사를 개최했다. 난생처음으로 방문한 미술관에서 VIP 대접을 받은 택시 기사들은 '모리 미술관 구전 마케팅의 전사'가 되었다.
사실 작가 일행이 모리 미술관에 방문한 것도 해당 기획 행사의 나비효과였다. 동료로부터 모리 미술관에 대한 자랑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택시 기사가 너무 궁금해서 자비를 들여 미술관을 방문했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술관을 관람하고 큰 감명을 받은 그는 신인철 작가에게 미술관을 추천하게 된다.
이처럼 모리 미술관은 투쟁적이었다. 최선을 다하여 외부의 역량을 활용하였고, 그러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일본의 최고경영자와 유망한 인재들이 퇴근 후에 피곤함을 이겨내고 모리 미술관으로 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술관의 비하인드를 한눈에
이쯤 되면 많은 인재들이 미술관에 방문하는 이유를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경영 지식과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서 굳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공간을 방문하고, 느끼고, 배우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전부 납득했어도 직접 발을 옮기기는 망설여질 수 있다.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세계 곳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부 둘러보려면 자금 이슈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개받은 공간을 모두 방문하다가는 몇 년 만에 파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가 존재한다. 해당 도서는 미술관들의 비하인드와 소장된 작품들의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요약집이다. 따라서 319 페이지를 읽으며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발품을 팔아 얻어낸 정보들을 단번에 머릿속에 적립할 수 있다. 또한, 장의 말미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주소, 홈페이지, 관람 시간 등)까지 첨부되었으니, 관심이 생기는 장소를 메모해 놓고 훗날에 직접 방문해 보기도 좋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면, 혼란한 노동 시장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해당 도서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당신이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한 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