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드 되’는 발레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추는 쌍무를 말한다. ‘피아노 파 드 되’라는 본 공연의 제목은 피아노 반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춤을 의미한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오은철이 음악을 담당했고, 발레리노 김용걸이 안무, 대본, 연출을 맡았다. 현재 발레계의 떠오르는 신예 스타로 주목받는 전민철이 함께 했다.
공연은 ‘희로애락: 우리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구성된 1부와, ‘무대 위의 피에로’라는 작품을 선보이는 2부로 구성됐다. 7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1부에서는 두 번의 파 드 되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연주로 진행됐다. 채널A드라마 <터치>에 수록된 음악 ‘Love Letter(러브레터)’로 첫 번째 곡이 시작되었고, 이후 ‘Celestial(천상에서)’, ‘Your Words(그대의 말)’, ‘Beyond the Bliss(행복 너머)’, ‘Jocker(조커)’가 연이어 진행되었다. 전반적으로 대개의 음악이 익숙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피아노의 강약 조절과 건반 터치의 미세함이 부족했고, 음형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으며 오케스트라와 순간순간 합이 맞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그렇지만, 적절한 페달링을 통해 잔음을 형성함으로써 서정적이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나갔다.
첫 번째 파 드 되로 구성된 ‘Sea of Love(사랑의 바다)’는 바다를 보며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 모래사장 위에 새겼던 추억들을 파도가 품어 바다 저 깊숙이 보관해 준다는 스토리를 가진 음악이다. 발레리나 최주미와 발레리노 이은수가 참여했다. 두 번째 파 드 되는 ‘Ophelia(오필리아)’로 햄릿의 오필리아를 노래한 곡으로, 상실의 슬픔을 현악기로 표현하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의 음성을 통해 극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발레리노 안우재와 발레리나 박하민이 참여했으며, 안우재는 깔끔한 테크닉을 보여 주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표현력과 무대 장악력을 더 키운다면 훨씬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트앤아티스트
작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2부 ‘무대 위 피에로’에서는 전민철이 피에로 역을 맡아 무대를 선보였다. 누구보다 발레를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한 발레리노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지속적인 심한 두통으로 해외 발레단 입단 기회를 망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좌절하던 그에게 행사장에서 분위기를 돋우는 피에로라도 살아간다면 춤을 계속 출 수 있을 거라는 발레 선생님의 권유에 그는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은 그 선택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피에로의 삶은 너무나도 힘들었고, 그는 점차 자괴감에 침식되어 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버려진 곰 인형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되고, 그 곰 인형을 위로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곰 인형이 만들어 준 선물과도 같은 환영을 통해, 그리고 다시 재회하게 된 옛 동료들의 응원과 격려로, 주인공은 여전히 춤을 출 수 있는 피에로의 삶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자신이 자신의 삶을 주인임을 깨닫게 되며 미소 짓는다.
전민철이 선보인 독무와 여자 친구, 곰 인형, 의자로 이어지는 파 드 되에서 그 특유의 가벼우면서도 정제적인 몸짓이 돋보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서사 속 ‘피에로’의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음으로써 전민철의 춤은 다소 힘을 잃어갔다. 피에로는 ‘슬픈 얼굴을 한 광대’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웃긴 모습을 한 광대와는 구별된다. 왜 발레 선생은 발레리노로 실패한 그에게 하필 ‘피에로’를 권유했을까? 프랑스에서 시작된 발레의 역사 속에서, 피에로가 프랑스 파리에 존재하던 코메디 이탈린(이탈리안 코미디) 극장에서 했던 연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캐릭터여서? 단순히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무대 위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과 이질적이다. 더불어 ‘피에로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을 통해 작품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만큼, 극은 ‘피에로’의 상징적 의미를 관객에게 정확히 보여줘야 했지 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전민철의 춤은 왜 그가 한국인으로서 발레리노 김기민 이후 14년 만에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입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작금의 수많은 찬사가 그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제 막 가공을 세공한 반짝이는 보석, 전민철이 앞으로는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상당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