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도 어김없이 공원을 걷다 문득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다녀와서일까? 오랜만에 만난 학창 시절 친구 때문일까? 새로운 것들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일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소중하다. 정말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게 결국 나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지탱하는 것들을 살피고 돌볼 필요가 있다.
휴대전화의 갤러리를 정리하며 나를 지탱하는 수많은 것들을 다시 마주했다. 그 어떤 콘텐츠보다도 더욱 강렬히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 이렇게나마 글로 작성하면 그 소중함을 더욱 깊이 새길 수 있을까 싶어 오피니언을 쓰게 되었다.
1. 학창 시절 친구들 만나기
혼자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애석하게도 가끔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잊고 살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를 잊는다기보다는,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때라는 표현이 맞겠다.
하지만 갤러리를 정리하다 보면, 그들이 내 삶에 함께하는 것에 대해 저절로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예컨대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함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등의 일을 나와 함께해주는 사람들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특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더욱 소중하다. 그들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분식집을 찾아가 먹기, 만화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만화를 실컷 읽기 등. 늘 어른 흉내를 내면서 살다가 가끔은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을 땐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논다.
최근에는 친구와 만화카페에 다녀왔다. 몇 년 만에 가본 만화카페는 여전히 입구부터 사람을 설레게 했다. 나나 친구나 특별히 만화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유명한 웹툰이나 만화책은 어느 정도 챙겨본 터라 공감대가 많다(이제보니 둘 다 충분히 만화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한편 나는 절주를 시작한 지 1년 반 이상이 지났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질구레한 이유가 여러 가지이다. 아토피와 맞물린 피부 관리와 금전 모으기, 체중 관리가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저절로 술을 멀리하게 됐다. 그러니 술을 마시는 모임에도 특별히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여전히 즐겁다. 이제는 소주가 아닌 제로 콜라를 선호하지만, 여전히 술자리의 분위기에는 잘 녹아든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사이에서 친구들과 피를 토하듯 이야기하고 집에 오면 노곤해지는 감각. 술만 마시지 않을 뿐 그 감각은 같다.
2월 초에 친구들과 술집에서 김치찌개와 치즈계란말이를 먹다가, 문득 이 순간이 아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별 탈 없이 일상을 살아가다가, 할 말이 잔뜩 쌓이면 서로 만나 각자의 일상을 털어놓는 그 순간이.
2. 혼자 사색하기
역시 행복을 위해선 균형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다가도 고요히 혼자 시간을 보내면 또 그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공간은 카페와 산책로가 대표적이다. 특히 분위기가 좋고 손님이 적은 카페를 새롭게 발견하면, 마치 광산에서 금을 캔 것처럼 행복하다.
요즘에는 동네에 무인 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많아졌다. 자주 가는 카페는 아파트 뒤 산책로의 무인카페인데, 무인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사장님께서 카페 청소도 부지런히 하신다. 2400원짜리 오설록 차를 마시며 카페에 앉아있으면, 복잡한 생각을 잠시 접고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카페를 나와 음악을 들으며 산책로를 걸으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 잠깐이라도 온전히 '나'라는 사람만 생각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함박눈이 내린 2월의 어느날에는 산책로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조용히 사색할 수 있었다.
가끔 자유 수영을 하러 수영장에 가는 엄마를 따라가면, 수영장 한 귀퉁이에 있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이런 날에는 특별히 조금 비싼 밀크티도 시켜 먹는다. 달콤한 밀크티와 은은한 카페 BGM을 들으며 책을 읽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
예전에는 카페에 가도 내 할 일에만 집중하고, 카페에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카페에 있는 시간을 좀 더 풍부하게 즐기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맛의 음료에 도전해 보기도 하고, 자주 앉던 테이블이 아닌 다른 테이블에도 앉아본다. 마음만 먹으면 새롭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내 주변에 무척이나 많으니 말이다.
3. 가족들과 함께하기
요즘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일도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각자가 각자의 사정으로 바쁘다가도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무언갈 먹으면 그제야 가족의 존재가 피부로 와닿는다.
며칠 전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쿠폰으로 받았던 케이크를 사 먹었다. 크고 둥그런 홀 케이크는 가족들과 나눠 먹지 않으면 거의 먹을 일이 없다. 혼자 먹을 일이었다면 당연히 조각 케이크를 먹었을 것이다. 홀 케이크는 그런 의미를 갖는구나, 생각했다.
2월 중순에 들어 조금 바빠졌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집 고양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줄어든 것 같다. 내 갤러리에는 솔직히 내 사진보다 고양이 사진이 훨씬 많다. 집사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고양이는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뒹굴어도, 밥을 먹어도 귀여우니 말이다.
자식을 키운다면 이런 마음일까? 늘 더 잘해주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말을 안 들을 때도 많지만(사실 고양이는 훈련이 거의 불가능하니 당연하다), 때로는 사람보다도 더 위로될 때가 있다. 가족은 안 될 걸 알면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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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갤러리를 정리하며 사진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 흠칫했다. 갤러리의 사진들이 네가 찍은 사진들은 전부 너를 지탱하는 소중한 것들이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사진 찍는 일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갤러리에 있는 사진들은 내게 더욱 소중한 사진들이다.
처음으로 '사람' 카테고리에 글을 쓰며 나를 구성하고 있는 기억들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내게 소중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지금 보니 이 글은 'ART insight' 카테고리의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썼던 글의 답문처럼 느껴진다.
내가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헷갈린다면 휴대전화의 사진첩을 들여다봐도 좋겠다. 나처럼 소중한 순간들을 소중함을 모른 채 찍어놓았을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