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두 단편 「정오의 산책」,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는 김사과의 『02 영이』에 수록되어 있다.
1. 「정오의 산책」
「정오의 산책」은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연상시키는 바 있다.
소설은 한의 아무리 열심히 바위를 굴려도 점점 수렁으로 바위가 굴러가기만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설명한다.
그의 인생은 누구보다 열심히 바위를 굴려온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삶은 어쩐지 그를 점점 더 밑바닥으로 끌고 가기만 한다. 그런 과정에서 한은 남들이 보기에 기인처럼 보일 정도로 수동적인 인물로 변한다.
기계처럼 하라는 대로 일만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데 집중한다. 언젠가 이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품지 못한 채로 말이다.
어느 날 한은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갔다가, 세계의 모든 비밀을 깨달아버린다.
사실 그 순간 한이 경험한 것, 한에게 일어난 일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벽하게 주관적인 일이어서 아직 인간은 그것을 표현하기에 적확한 어떠한 언어적표현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니었다. 물론 그는 여전히 그 자신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아니었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이었고 동시에 그 자신이었다. 한은 이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것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그런 건 이제 그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하늘을 볼 때 그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회사와 집으로 돌아갈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그와 모든 사람의 인생이 육체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모두가 얼마나 하찮은 고민에 묶여 있었는지 말하지만 그 고민에서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었다.
- 170p
모든 것을 깨달은 한을 정과 회가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며, 독자들에게 또 다른 절망을 안겨주며 소설은 끝이 난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소설이 굉장히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2.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나는 웃지않는다. 웃기에 나는 너무 피곤하다.
피곤하다.
그게 내가 지금 느낄 수 있는 전부다.
- 190p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역시 「정오의 산책」, 부단히도 노력했던 주인공이 세상을 엇나가는 내용이다.
한평생을 위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그의 말을 따라 ‘열심히’ 살아온 주인공은, 아버지가 말한 모든 것을 얻어냈으나 이따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는 철저히 보호되어 두께를 가지지 못하는, 자신의 얄팍한 삶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고통으로 가득해 두꺼운 국밥집 여자의 삶에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결국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분노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또 다른 남중생에게 자신이 깨달은 세계의 비밀을 토로하다 결국 남중생마저 살해하고 본가로 돌아와 밥을 먹고, 결국 가족마저 붕괴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인 그에게 어떤 해소도 없이, 수렁으로 굴러가기만 하는 하루이다.
그가 세계의 모든 것에 분노하는 이유는 깊은 자기혐오와 부러움 때문이다. 주인공은 위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고통스럽게 노력하며 자랐으나 그만큼 다른 고통을 느낄 새 없이 자라온다.
그가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에 대한 면역 없이 자라온 만큼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다.
부조리로 가득해 결국 붕괴하는 세계에 대한 김사과의 해석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소설인 듯하다.
3. 「여름을 기원함」
2014년 이효석문학상의 후보작으로 올랐던 김사과의 「여름을 기원함」은 이효석 문학상 2014년 수상집에서 읽을 수 있다.
「여름을 기원함」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이나 「정오의 산책」과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세계의 부조리를 피해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주인공은 기호화된다.
세계가 표면적으로 중시하는 것, 미, SNS 팔로워 따위를 생각하며 주인공은 멍청해져만 간다. 그런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더욱 기이하다.
도서관 건너편에 주차된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문득 뒤돌아섰을 때, 그녀는 앞에 버티고 서있는 거대한 회색 생명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다음 순간 그녀를 덮치려는것으로 보였다. 으악. 놀라 뒷걸음질치던 그녀는 보도블록에 신발 굽이 끼어 멈춰섰다. 한참을 신발굽이 낀 채로 허우적대던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눈 앞의 괴물이 다름 아닌 방금 자신이 빠져나온 도서관 건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것은 건물이다. 생명체가 아니다. 그녀를 잡아먹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가능하면 빨리 그 건물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 282p
주인공이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시위하는 시위자들과 그들에게 공격받는 강연자가 결국 똑같은, ‘망함’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그렇게 세계가 망해가고 있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녀마저 붕괴하는 세계에 공포를 느끼며 노래는 흐르고 소설은 끝난다.
세 소설을 통해 붕괴하는 김사과의 세계 속 나는 어떤 인물일지 고뇌하며 읽었다.
그가 그려내는 세계 속 정답은 어디에도 없으나, 비극적이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또한 다르지 않다.
말도 안 되게 폭력적인 세계에서 김사과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