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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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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비롯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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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테르>가 2025년 1월,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다시 돌아왔다.

 

괴테의 고전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베르테르>는 우리나라 뮤지컬 최초로 작품 동호회를 탄생시킬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25년째 사랑받는 공연이라니. 깊이감이 남다를 것 같아, 바로 공연을 관람하고 왔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사랑과 절망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원작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18세기 후반은 계몽주의와 합리성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당시 사회에서는 감정보다 이성이 중요했고, 개인보다는 사회적 질서를 중시했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이러한 시대적 가치에 반하는 인물이었다. 순간의 감정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사랑 앞에서 이성과 논리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성과 질서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베르테르는 자연히 이방인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비극적인 사랑은 단순한 개인적 좌절을 넘어 사회적 갈등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베르테르와 알베르트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다. 베르테르는 감정에 충실하며 순간의 열정에 몸을 맡기지만, 알베르트는 사회적 질서를 중시하고 이성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이 구조는 영화 <노트북> 속 노아와 론 하몬드의 관계와도 닮아 있다. 노아는 가슴 뛰는 사랑을 추구하는 인물로, 사회적 배경이나 현실적인 조건을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론 하몬드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구도만 보면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베르테르에서 롯테는 알베르트를 선택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책임과 현실적인 삶을 따르며 감정보다는 질서를 택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춘 현실적인 남자, 즉 ‘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롯테의 감정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베르테르에게 끌리면서도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관념에 따라 알베르트를 선택했다.

 

반면, <노트북>의 앨리는 감정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결국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노아를 선택한다. 이는 시대적 배경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18세기에는 사회적 질서와 정략적 결혼이 개인의 감정보다 우선시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감정이 더욱 존중받고 사랑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에서도 이러한 대비는 더욱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베르테르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듯 보이지만, 현실과 충돌하며 점점 무너져 간다. 반면, 알베르트는 사회가 요구하는 틀 안에서 안정감을 유지하지만, 베르테르처럼 격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두 인물은 결국 시대적 갈등을 상징하는 존재로, 한쪽은 감정의 해방을, 다른 한쪽은 사회적 질서를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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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마지막 엔딩이었다.

 

무대 위 베르테르와 아래에서 자라는 수많은 해바라기가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해바라기의 존재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라 베르테르 그 자체를 은유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극이 절정에 달하면서 수많은 해바라기는 쓰러졌고, 단 하나만이 굳건히 서 있었다. 그러나 베르테르가 총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자, 그 마지막 해바라기마저 쓰러졌다.


해바라기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인정하는 베르테르의 마지막 선택과 맞물려 더욱 비극적인 울림을 주었다. 총을 쏴 생을 마감하는 것은 단순한 자살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관념과 체제에 순응하며 사랑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행위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 끊임없이 바라보는 꽃이고, 베르테르는 롯테를 향해 일방적인 사랑을 지속하는 인물이다. 해바라기는 태양의 빛을 간절하게 바라지만, 동시에 그 강렬한 빛에 시들어가는 존재다. 이 점에서 베르테르의 헌신적이고도 절망적인 사랑이 해바라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나 그대 이제 이별 고하려는데

내 입술이 얼음처럼 붙어버리면

나 그대를 차마 떠나려는데

내 발길이 붙어서 뗄 수가 없으면

 

뮤지컬 <베르테르> - 발길을 뗄 수 없으면 中

 

 

원작 소설의 제목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젊은’이라는 형용사를 포함해 베르테르의 무절제하고 무모한 면모와 감정의 격렬함, 방황을 강조했다. 젊기에 더욱 감정에 충실하고, 사회적 규범보다는 순간의 열정에 몰입할 수 있었던 베르테르의 심리를 생각하면, 그의 행동이 다소 극단적이더라도 납득할 수 있었다. 뮤지컬에서는 이러한 형용사 없이 <베르테르>로 축약된 만큼, 베르테르의 감정선만을 따라가며 그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공연은 관객이 단번에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서서히 몰입할 수 있도록 촘촘한 서사로 구성되었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차이로 베르테르의 감정선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화려한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연기, 서정적인 넘버를 통해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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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는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면서도, 그 시대의 가치관 속에서 캐릭터들이 각기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베르테르는 감정을 따르는 선택을 했지만, 롯테는 시대적 요구에 순응하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차이가 결국 운명을 가른 것이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감성과 이성, 열정과 현실의 대립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단순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 본성을 깊이 탐구하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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