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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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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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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다 마셨으면 차례대로 자기 번호가 적힌 케이스에 종이팩을 갖다놓고 자리에 앉아요. 다들 마신 것 같군요.

...

저는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학교로 이동?' 아니요. 교사직을 그만두는 겁니다. 사직입니다. 그래서 1학년 B반 여러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제 마지막 학생들입니다. 아쉬운 목소리를 내준 여러분. 고마워요. '그만두는 건 그 일이 원인?' 그래요, 그것에 대한 답변을 겸해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백] p.9-11

 

 

이 말을 서두로 S 중학교 1학년 B반의 담임, 모리구치 유코는 긴 종례를 시작한다.

 

그가 교사를 하게 된 계기와 청소년을 지도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교사와 학생 간의 현주소, 약혼자의 에이즈로 인해서 불발된 결혼과 미혼모인 본인의 처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결론적으로 그가 교직생활을 그만두게 된 '그 일'에 대해 언급한다.

 

'그 일'은 바로 유코의 유일한 딸, 모리구치 마나미의 죽음이었다. 마나미는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으며 사고사로 종결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종업식에서 유코의 고백으로 사실 마나미는 살해되었음이 밝혀진다. 그것도 유코가 담임하고 있는 B반의 학생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

 

유코는 이미 범인을 알고 있다. 범인은 둘. 살의는 있었지만 미수범인 소년 A와 살의는 없었지만 실행범인 소년 B이다. 유코는 경찰에게 진상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소년법 아래 보호받을 A와 B를 법에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안 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저는 두 사람 우유에 오늘 아침에 갓 채취한 혈액을 섞어놓았어요.

...

아무래도 대부분 눈치 챈 모양이군요. 부디 두세 달 후에 혈액검사를 받아보세요. 두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마나미에게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고백] p.54-55

 

 

[고백]은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이렇게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는 한 인물의 독백이나 일방적인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조이기에 에피소드를 거듭하면서 점점 스토리가 선명하게 전개된다. 단편적으로 보면 이 소설은 청소년 범죄와 소년법의 정당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반적인 사회적 문제 역시 다루고 있음을 유코의 복수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백]에서 다루는 사회적 문제점은 비단 일본의 문제점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다수는 학교가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고 사회화를 시키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일컫는 학교가 이렇게 추락된 환경이 되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사회가 추락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교권의 추락, 비이성적인 가정교육, 무감각해진 인권 등 다양한 원인에서 기인된 청소년 범죄의 수위가 계속 높아지면서 꾸준히 사람들은 소년법 폐지에 대해서 논의해왔다. 범죄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그 과정이 과연 미성숙한 사고(思考)로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事故)라 봐도 되는 것일까?

 

[고백]은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이 매우 흥미롭고 흡입력이 있는 책이다. 캐릭터 하나하나에게 부여된 복합적인 서사를 통해서 소설 속 인물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관점을 통해 시사점을 제기하고 함께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픽션을 통해서 악의를 깨닫고, 현실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게 최고가 아닐까요?”

 

[미나토 가나에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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