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방에 들어와 블라인드를 올린다. 감춰져 있던 햇살이 온 방으로 스며들며 내 기분까지 환하게 밝힌다.
창가 옆에서 자라고 있는 고수에게 분무기로 물을 주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다. 안토니오 카를루스 조빔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커피 원두를 찾는다. 원래 있던 원두가 얼마 남지 않아 외출 때 새로 집에서 가져온 원두를 고른다.그라인더에 원두를 넣고, 곱게 갈리는 모습을 지켜본다.기분 좋은 햇살과 그 햇살에 잘 어울리는 노래, 그리고 곧 맛보게 될 커피에 대한 기대감까지. 점차 신이 난다.커피를 내리자, 곧 온 방에 향긋한 커피 향이 퍼진다.보온병에 넉넉히 담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침대로 향한다.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조빔의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신다.
이건 내가 군대에서 삶을 보사노바처럼 사는 한 가지 방법이다.
보사노바는 재즈와 브라질 전통 음악이 만나 탄생한 장르다. 적당히 신나는 리듬과 시원하면서도 편안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브라질에서 시작했지만 196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이 연주하면서 재즈의 하위 장르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보사노바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색깔을 지닌 음악이다.
난 이 음악을 21살 어느 여름날 처음 들었다. 듣자마자 강렬한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평소 재즈를 좋아하면서도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내게, 보사노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재즈와 닮았지만 분명히 다른, 나른하고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청량한 기운을 지닌 음악.
그날 이후, 여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보사노바를 찾았다. 나에게 보사노바는 여름의 계절 음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적당한 햇살과 여유만 있다면, 보사노바는 언제든지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음악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보사노바는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물결' 이라는 뜻이다.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와닿는다.
필경 그 물결은 잔잔하면서도 우리를 휘감아버리는 마력을 지닌 그런 물결일 것이다.
요즘 나는 보사노바를 통해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작은 여유를 발견한다. 이 여유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에게 잠깐의 쉼을 선물하고, 주변을 둘러볼 기회를 준다.
보사노바를 함께 즐기기 위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앨범 몇 개를 소개한다. 이 노래들을 들으며, 보사노바의 물결이 우리를 감싸는 순간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햇살이 비치는 어느 오후, 보사노바가 흐르는 순간처럼.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가길.
내가 보사노바를 처음으로 알게된 앨범. 보컬이 없는 연주곡들만 모여있는 앨범이다.
보사노바의 창시자로 기억되는 조빔의 연주를 경험해볼 수 있는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초록색 배경의 기린 커버가 보사노바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보사노바 앨범은 Getz/Gilberto 아닐까. 스탄 게츠와 주앙 질베르토가 함께한 이 앨범은 보사노바의 대표적인 명반으로 꼽힌다. 모든 트랙이 좋지만 Desafinado, 난 이 노래가 참 좋다.
Astrud Gilberto. 그녀의 목소리를 빼놓고 보사노바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는 보사노바라는 장르를 한 층 더 특별하게 만든다. 그녀의 솔로 앨범을 들으며 이 장르와 더 깊은 사랑에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