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마이라 칼만(Maira Kalman)은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이다. 작가는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명예의 전당에 올렸으며, 다방면으로 능통하여 2017년에는 그 세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가 받을 수 있는 그래픽아트협회AIGA에서 수상하였다. 마이라 칼만은 예술 활동 중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쓰기도 하며 뉴욕이 사랑하는 예술가로 거듭났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2022년 뉴욕타임스 최고의 아트북으로 선정된 책이다. 한국에 정식으로 첫 출간된 책이며 일상적인 삶과 사람을 관찰해 그림책으로 남겼다. 책의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따뜻하고 안락함이 느껴지는 그림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림만 봐도 마음이 편해질 정도로 따뜻한 느낌이 아우러진다.
책은 ‘가진 것’에 집중한다. 책속의 인물들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거나, 안고 있거나, 들고 있다. 이렇게 단순하게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묘사뿐 아니라 다른 차원의 소유함도 묘사한다. 누리고 있거나, 향유하고 있거나, 특수하거나 일상적인 환경에 처해있는 상황도 우리가 가진(hold) 것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거나,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있는 모든 것도 가진(hold) 것이다.
이렇게 hold의 넓은 의미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더욱 풍요롭게 칼만의 그림을 향유할 수 있다. 그저 당연하고 일상적이었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특별하게 바라보게 된다. 녹색 탁자에 손을 올린 여자, 모자를 꼭 붙들고 있는 분홍 치마의 여자, 셰 조르주에서 큼지막한 리본을 두른 채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행동 중 한 순간이 작품화되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일상은 작품화되었고 예술화되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진 것, 누린 것, 느낀 것을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독자의 일상은 특수해지고 의미를 갖게 된다. 작품 속 인물로 거듭난 느낌, 일상이 예술화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연스레 내가 손에 쥔 것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둘러보게 된다. 내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중 결코 무의미한 것은 없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감정은 삶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어진다. 내가 가진 것 중 당연한 것은 없으며, 생생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지루하게 여겼던 하루에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는 경험을 하게 된다.
험프티 덤프티처럼 생긴 목소리가 큰 남자는 성큼성큼 빠르게 걸으며 전화에 대고 소리치듯 의견을 말한다. 우리가 돌체라 부르는 상냥한 남자는 늘 모자와 스카프를 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 작은 개를 산책시킨다.
우리는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는 이방인이다. 많은 길을 천천히 돌아간다.
하찮은 듯 보이는 뜻밖의 발견이 몹시 만족스럽다.
많은 길을 천천히 돌아가며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관찰하는 나. 특별할 것 없어보일지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찬찬히 보면 다들 각자의 빛나는 인생을 보내고 있다. 이를 발견하는 것, 인지하는 것, 깨닫는 것의 일련의 과정이 잘 녹아든 구절이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대조하며 비슷한 부분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각자의 삶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각자가 가진(hold) 삶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을 넘어 타인의 삶을 수용하고 존중하게 되는 확장의 과정을 경험한다.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일상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만든다.
더불어 마이라 칼만의 따뜻한 그림체는 더욱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다. 아름다운 색채의 조합,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붓놀림,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과 행동이 오랫동안 잔상에 남는다. 그림책이라 많은 글과 부연 설명이 있지 않은데, 그림으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어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시간을 꽤 소요하였다. 응축되어 있는 의미를 해석하고 마음껏 그림을 소화하기 위해선 여유를 갖고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가진 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시간,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이 가진 것들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주어진 인생이라는 시간을 겸손하고도 주도적으로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