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키워드 인터뷰]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마음의 초상화 ‘영원의 얼굴’ - 소윤경 작가

그림책 '영원의 얼굴' 소윤경 작가 인터뷰
글 입력 2025.01.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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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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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이야기  #인물화  #인간심리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림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회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윤경입니다.



지금까지 발표하신 작품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림책 작업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거예요?


회화 작가로 활동하다 본격적으로 출판 일러스트레이션을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었어요. 주로 동화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 100여 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어요. 글과 그림을 모두 창작한 그림책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9년도부터니까 15년 되었네요. 그간 9권의 그림책이 출간되었고 독립 출판 모임 <바캉스>를 통해서도 6권의 출판물을 제작하였습니다. 



출판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창작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출판 일러스트레이션은 예전에는 ‘삽화’라고도 했지요. 글 작가와 그림작가의 협업으로 이루어져요. 주로 그림책, 만화, 동화, 청소년 소설에 들어가는 그림을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업해요. 반면, 그림책은 작가가 창작한 더미북을 출판사가 선택해서 출간하는 경우가 많아서 창작에 임하는 작가의 자세에 차이가 생기죠. 그림책은 순수미술처럼 작가의 개성과 세계관에 더욱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요.



일러스트레이터에서 그림책 작가로 전향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지금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좋은 글을 만나 새로운 이미지 세계를 확장하는 작업을 좋아해요. 다만 아동 출판 분야는 아무래도 대상 독자가 어린이기 때문에 올바른 교육을 지향하며 밝은 분위기의 콘텐츠를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엄밀히 따지면 이런 부분이 저의 성향과 꼭 맞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는데, 아동서의 경우 슬픔이나 죽음에 관한 얘기를 짙은 농도로 전달하지는 않으니까 그런 콘텐츠의 한계가 아쉬웠죠. 



그러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작가님의 이전 작업인 <수연>, <우주 지옥>, <레스토랑 Sal>을 볼 때 느꼈듯, 순수하고 따뜻한 세계를 담는 그림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여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소재를 고르는 작가님만의 기준이 궁금했거든요. 지금까지 이렇게 작가님만의 그림책 세계를 만들어 온 주요 동인은 무엇이었나요?


생각해 보면 저는 어른들 말씀에 순응하기보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당돌한 어린이에 더 가까웠어요.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죠. 기성세대의 당연한 사고방식이 거짓말처럼 느껴져서 반항심을 가지기도 했어요. 즐거움이나 행복을 좇기보다 좀 더 세상의 진실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죠. 이런 성향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고, 작업에 영향을 주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2016년에 일러스트를 작업했던 <거짓말 학교>의 경우는 작업적으로 만족스러웠어요. 어린이들의 마냥 순수한 세계가 아니라 어둡고 괴로울 수 있는 어떤 진실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고, 수위가 높은 장면들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표현이 동화에서 가능하다면 그림책에서도 창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아동문학에서도 예전부터 그런 시도들이 있었군요.


흔치 않은 시도였기에 그런지 그 작품은 성과도 좋았고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한편으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또 다른 한계를 마주한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요. 



어떤 면에서요? 


당시에는 삽화 작업을 담당한 작가가 독창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아무래도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는 글 원고나 주제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시각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이미지 리터러시에 관한 이해가 지금보다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작가로서 발돋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작품의 독창성을 작가 스스로 확보할 수 있도록, 순수 창작 그림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거죠.



저도 그림책 작업을 해봤지만, 한 권 내기까지도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아주 많이 소모되는 작업이라는 걸 조금은 경험해 봤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오래, 꾸준히,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 오시는 작가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어떻게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나요?


그림책 작가들이 아주 많고,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참 어려운 분야예요. 다들 하는 얘기지만, 작가들이 순수 창작 그림책 작업만 해서는 오래 견디기 어렵죠. 들이는 에너지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에서 돌아오는 피드백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차라리 처음에 한 권, 두 권 낼 때는 좀 나아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현실적으로 노동의 보상이 거의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거듭되고 그러다 보면, 이 일을 고통스럽게 여기고 좌절할 가능성이 높아져요. 저도 똑같이 겪는 문제예요. 특히나 저처럼 순수 회화, 시각 예술을 목표로 활동하다가 그림책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내가 생각한 예술이 맞는지 생각하는 순간도 올 거예요.


그런데 한 번 작가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만의 고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어디까지 가기로 했으면 거기까지 가 보는 거죠. 그림 한 장, 그다음 한 장, 그렇게 그림책 한 권, 또 한 권. 내 인생의 파노라마를 완성해 가는 거예요. 그림책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그런 시간의 연속인 것 같아요.


 

 

Keyword 1. 전래 이야기


 

그림책 <영원의 얼굴>의 첫 번째 키워드는 ‘전래 이야기’네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인 거죠?


맞아요. 이 그림책에 나오는 내용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접해 온 옛이야기들이에요. ‘흥부 놀부’, ‘심청전’, ‘장화 홍련’, ‘콩쥐 팥쥐’ 등 웬만한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죠. 기본적인 내용은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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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방향이 궁금해요. 전래 이야기 속 인물들의 얼굴이 초상화처럼 그려져 있고 옆에는 글이 덧붙여진 구조가 흥미로웠거든요. 이 책을 기획하실 때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그림책 <영원의 얼굴>은 기존의 방식으로 구전돼 왔던 전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시도한 책이에요. 마치 독백하듯,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형식이죠. 전래 이야기는 삼인칭 시점에서 줄거리의 형태로 전달되고,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된 캐릭터와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당사자 개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는데, 제가 주목한 건 인물 개개인의 목소리였어요.



작가 그룹 ‘바캉스 프로젝트’는 주로 한국의 옛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작업한다고 들었는데요, 전통문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계 명작처럼 한국의 전래 이야기도 계속해서 다시 만들어지고 있기는 해요. 그런데 이야기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은 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캐릭터는 뻔하고, 스타일의 한계도 있고요. 이런 경우 전래 이야기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만든다기보다는 답습에 그친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스타일적인 측면에서도,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아티스틱하고 새롭게 시도하자는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전래 이야기라는 소재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어요.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지고 전래 이야기가 가진 틀이 견고하게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찾아볼수록 무궁무진한 세계이더라고요. 기본적인 틀을 깨보자는 시도로 접근하니까 이야기 속 인물들이 특히 입체적으로 다가왔고 이런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Keyword 2. 인물화



전래 이야기를 재해석할 때 특별히 인물에 집중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의 기본적인 아이덴티티는 화가예요. 그동안 저는 화가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자주 고민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시대의 인물도를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현대 미술 이전에 화가들이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종교화 등을 그렸던 것처럼,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주제들이 있거든요. 예전에 출간한 그림책 <우주 지옥>도 화가의 역할은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종교화를 떠올리며 작업한 작품이었죠. 이번에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전래 이야기 속 인물들을 그리는 일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제가 그린 그림을 책에 담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거든요. 보통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전시장 벽에 걸고 보여주지만, 저는 책을 통해 저의 그림을 전파한다고 생각해요.



작가 입장에서는 그림을 화이트 큐브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책을 통해 그림을 전파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술이 어떤 소유물이 되어 누군가의 부를 축적하는데 기여하는 대신, 제 그림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도록 대중매체에 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어디에서나 저의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평소 미술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선민의식이라든가 문화적 헤게모니 자체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경계하는 편이에요.


한편으론 이런 가치관 때문에 그림책 작가의 삶이 더욱 녹록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순수 회화의 영역에서처럼 출판계와 대중매체에서도 작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요.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작가님의 접근 방식이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에게는 그림책이 ‘그림으로 만드는 책’에 더 가까워요. 그림책 <영원의 얼굴> 부제가 ‘전래 인물도’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그렇지만 도록이나 화집과는 달리 글이 그림과는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역할을 해요. 그림이 글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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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스케치는 어떻게 시작하고 발전시켰는지 구체적인 과정도 궁금해요.


인물을 설정하는 게 제일 어려웠고, 가장 시간을 많이 들였던 부분이에요. 이 그림책의 얼굴들은 언뜻 보면 누군가를 닮은 것 같은데 실존 인물은 아닌 그 경계에 있어요. 얼굴은 어쨌든 어떤 전형성을 갖고 있는데, 변주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였죠. 실제 사람의 얼굴이지만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작업했어요.



색감 얘기를 안 할 수 없어요. 인공적인 색감 때문에 그림 속 인물들이 더욱 범상치 않게 느껴져요. 예전에 작업하신 그림책들도 보면 대비가 강하고 여러 가지 색을 쓴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도 궁금해요. 작가님께 색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떠오르는 경험이 있네요. 유럽에서 오랜 유학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보며 잠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머리 색깔, 옷 색깔, 얼굴 색깔, 다 너무 똑같은 거예요. ‘내가 이렇게 획일화된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실감 났어요. 어쩌면 그것 또한 한국적인 색일 수 있죠. 하지만 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양한 색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이런 색도 많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Keyword 3. 인간 심리


 

형형색색의 그림만큼이나 글도 인상적이에요. 전래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마음을 한 번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은 심청이었어요. 고분고분한 효녀의 이미지가 아니라 기개가 넘치는 얼굴과 분위기에 ‘효녀’는 주변에서 등을 떠밀려 얻은 별명처럼 묘사되어 있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물의 전형을 비트는 해석들이 재미있는데, 글을 쓰실 때 특별히 염두에 두셨던 점이 있나요?


평소에도 인간 심리에 관심이 있었는데, 특히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질 때 상대를 이해해 보기 위해서 심리학 관련 책들을 되게 많이 찾아봤어요. 그러면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들도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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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전래 이야기 속 인물들을 바라볼 때도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심청이는 연극성 인격장애 성향이 있어요. 사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바다에 뛰어드는 건 아주 무서운 일이잖아요. 반드시 자신이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자기 상황을 너무 극단적으로 판단하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다 짊어진 거죠.


다른 인물들도 이렇게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흥부는 착한 척하면서 의존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죠. 한마디로 ‘민폐 캐릭터’예요. 반대로 놀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인물이에요. 흥부의 딸은 ‘K-장녀 콤플렉스’가 있다고 볼 수 있고요.



작가님이 특별히 관심 있게 본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호랑이 형님’이란 캐릭터가 있어요. 이 캐릭터는 어찌 보면 아주 거칠게 살아온 인물인데, 나무꾼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자신이 봉양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이 호랑이 형님이 어떤 면에서는 삶의 목표를 찾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보살필 존재를 찾으면서, 거기에 마음과 시간을 쏟게 되었기 때문이죠.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용왕 캐릭터도 기억에 남아요. 용왕은 이야기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이 인물이 처한 상황과 위치를 고려했을 때 저의 부모 세대가 할 법한 생각을 보여주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해서 책에 넣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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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설명을 들으니 완전한 선도 악도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사람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라고 말할 때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요.


그렇죠.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어요. 우리가 때론 서로를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어떤 인물이 처한 상황과 맥락을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은 ‘인간 관찰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평소에도 화가로서 인물을 그릴 때 마음을 담자는 생각을 줄곧 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세상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기만 했다면 이제는 세계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죠. 이 책을 작업하며 어떤 인간이든 마음의 그늘과 슬픔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인간은 다 가엽게 여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얘기를 나눌수록 전래 이야기 속 인물들이 마치 주변 사람들 같아서, 이런 인간군상은 시대를 넘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일까 상상하게 되는데요, 그림책 <영원의 얼굴>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지으셨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그림책을 구상할 때 제목부터 정하고 작업을 해나가는 편이에요. 제목이 작업의 방향을 제시하지요. '전래 인물도'로 시작해서 내용의 의미를 더 담고 싶어 <영원의 얼굴>을 제목으로, 부제목은 '전래 인물도'로 정했어요. 영원을 살아갈 한국인의 초상과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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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경 작가



그림책 재료로 주로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대부분 수작업 위주의 재료로 그려요. 저는 한 가지 재료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고 매번 그림책의 컨셉에 따라 적합한 재료를 찾는 데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도 해요. 연필, 수채, 색연필, 펜, 아크릴 등 전통적인 미술 재료들을 사용하고 디지털 작업을 혼용해서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어요. 


출판 인쇄는 원화의 퀄리티를 온전히 구현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어 전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해요. 이번 작품은 드럼 스캔, 촬영, 별색 인쇄, 고급용지 등 출판사의 제작비 지출이 제 그림책들 중 가장 많았어요. 특히 한국에서는 유일한 색채분판사(컬러 세퍼레이터)가 참여해 기성 출판물에서는 보기 드문 색채의 퀄리티를 보실 수 있어요.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저의 관심사가 그림책의 주제나 소재가 되곤 해요. 동물권, 여행, 가족, 인간관계 등등 제 삶에서 자연스레 관심이 생겨 고민하거나 공부하면서 이야기가 생겨나요. 

 

때론 타인들의 에너지가 예상치 않은 아이디어를 불러올 때도 있어요. 가령, 바캉스프로젝트의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프로젝트처럼 소재를 발굴하고 거기에 관한 자료를 공부하고 내 생각을 담아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전엔 내가 가진 상상력에 중점을 두어 판타지를 그렸다면 지금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인물 등 다큐멘터리적인 것에 더 관심이 가요. 나이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어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죠.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건 참 멋지고 가슴 뛰는 일이에요. 하루하루 완성을 향해 가는 일은 의미 있어요. 다만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독자들이 내 그림책을 알아봐 주길 기다리는 것이 지치고 힘들지요. 책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으면 그저 종이 뭉치에 불과하니까요. 아직도 국내에선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낮아 작가에 대한 공공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예요. 그림책이 만화나 예술, 문학처럼 하나의 독립 된 장르로 발돋움해 나가길 바라요.

 


작가님의 다음 작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업은 제주 해녀의 음식문화에 대한 그림책이에요. 몇 년 전 우연히 인연이 닿아 해녀님들을 취재하고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저의 그림책들은 대개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에 걸쳐 완성되는 편이에요. 다음 작업도 분량이 만만치 않고 내용도 방대해서 많은 시간 고군분투할 예정입니다.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그림책 한 권이 있으신가요?


숀 탠의 <도착>이라는 그림책이예요. 글 없는 그래픽 노블에 가깝죠. 낯선 땅에 도착한 이민자의 삶을 판타지로 풀어낸 대작이지요. 불안과 공포, 안도, 기대감, 낯섦 등 어두운 과거로부터 탈출해 새로운 세상에 도착한 사람이 바라보는 두렵고도 설레는 풍경들이 담겨 있어요. 숀 탠의 작품은 문학, 미술,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경계가 확장되기도 하고 그림책 안에 다 모여 있기도 해요.



나에게 그림책이란?


나에게 그림책은 손바닥 미술관입니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예술품이지요. 저의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그림과 이야기로 지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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