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래도 대화보다 메시지가 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전화 공포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나또한 전화와 문자 중에 고를 수 있다면 문자를 택하고 싶다.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특성이 너무나 치명적이라고 느끼는 바다.
책의 표지에는 ‘말실수가 두려워 말수를 줄이는 우리의 자화상’라고 적혀있는데, 언제부터인가 타인과의 대화에서 말이 줄어든 내 모습을 자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혹여나 말실수를 하게 될까봐 단순 호응 정도만 붙이며 미소만을 띄고 있던 내가 그려졌다. 말 한마디로 인상이 좌우되고 잘못 여겨지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책에서도 언급하듯 약자들을 일컫는 말이 혐오를 표현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칭찬의 표현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줌마, 아저씨, 노인, 엄마, 아이를 일컫는 말들이 왜곡되기도 하고, 외모에 대한 칭찬은 굳이 필요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단어 자체는 문제가 없다. 적재적소에 쓰이기만 한다면, 올바른 맥락에 집어넣기만 한다면, 존중과 겸손을 담아 말한다면 말이다. 단어와 말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비난과 무시, 경멸의 맥락 속에 쓰이기 때문에 논란이 된다.
예를 들어, 책에서도 말하듯 문제를 일으키거나 교양이 없는 여성을 가리켜 ‘아줌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최근의 한 헬스장에서는 ‘아줌마 출입금지’라는 공지를 붙여 논란이 되었다. 기사에서도 비난의 맥락 속에 ‘아줌마’라는 단어가 쓰인다. 단어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쓰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단어들을 지양해야하는 것이 옳을까? 저자는 비난을 받는 단어의 쓰임을 긍정하고 인정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공감이 가고 와 닿았던 예시는 바로 유튜버 랄랄의 ‘이명화’ 캐릭터였다. 우리가 만나고 느끼는 일상의 아줌마를 캐릭터화 했는데 많은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밝고 즐거운 에너지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그들의 건강한 오지랖이 이웃과 주변인을 돕는다. 이렇게 아줌마라는 단어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느낌으로 변모해 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우리는 날카롭고 딱딱한 말, 남을 해하려는 말을 하곤 한다. SNS 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저렇게 누군가를 아프게 해야만 이기는 기분이 들까? 라는 생각도 든다. 과연 이러한 화법만이 방법일까?
저자는 충청도식 언어를 예로 든다. 만약 짜장면을 시켰는데 단무지가 빠졌다면, 충청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단무지 값이 많이 비싼가봐유~” 특유의 늘어지고 부드러운 어조와 빙빙 돌려 말하는 화법은 웃음을 짓게 만든다. “단무지 안주세요?”보다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드는 어투이다.
저자는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의 마음이 녹아있는 충청도식 화법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빠르고 신속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 여유와 웃음을 짓게 하는 화법이야 말로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대립 구조를 형성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며 쉼표를 선사하는 것이다.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결은 달라진다. 상대를 해하지 않는 온도에서 언어를 사용해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어의 선택과 더불어 화법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말실수가 두려워 말을 줄였던 지난날을 생각해본다. 예민하고 날이 서있는 대화를 하게 될까봐 무서웠던 나는, 긍정의 맥락 속에 단어를 사용해야겠다는 다짐과, 다정하게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마음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매일 쓰는 언어이면서도 언어 그 자체를 깊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은 나의 말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되짚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