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술인은 왜 고독하고 배고파야해? - 청년예술청 네트워킹 행사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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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고, 한 해가 끝나가고, 신춘과 소설 퇴고일이 동시에 다가왔다.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한동안 집, 카페, 헬스장만을 전전하며 무료함을 대가로 소설처럼 보이는 뭉텅이 따위를 빚고 있었다. 평소 카페 두어개를 번갈아 다니며 작업을 하는데, 하도 같은 곳만 가니 인테리어도, 조명도, 커피 맛도 특별할 것 없고 사장님조차 나를 질려하는 것 같아 새로운 작업 공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십여분 동안 검색을 한 뒤 마침내 찾아낸 공간. '청년예술청'. 놀랍게도 이 공간은 아장아장 걷던 시절부터 집니 가까워 자주 찾았던 충정로역 옆에 위치해 있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등잔 밑을 제대로 보면서 걸을 걸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찾은게 어디인가. 나름 예술 웹진의 필진으로 활동하는 동네 주민, 예술계의 일원으로서 공간을 마음껏 향유해주지라는 마음으로 청년예술청을 찾았다.
헛수고였다. 하필 내부 카페의 공사기간에 방문한 탓에 위치만 확인하고 돌아간 셈이 되었다. 다시 단골 카페의 품으로 돌아와 청년예술청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공지사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청년예술인 네트워킹 파티' 라는 제목의 게시글. 청년들의 전시와 나름 알차보이는 구성의 타임테이블을 보고 구경이라도 할까 싶어 냅다 신청서를 제출했다.
시작은 무섭고, 혼자도 무섭다. 그러니 혼자 시작하는 건 얼마나 무서울까.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걸림이 없는 성격이지만 그 장소에 가기까지에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익숙한 곳을 조금 서성이며 긴장을 푼 뒤 행사장에 들어갔다. 아, 저 이름표 왼쪽 위 QR코드는 아트인사이트의 링크이다. 에디터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든 여러 상황 중 하나였다. -근데 찍을 상황이 거의 없어서 머쓱했다.-
시작 시간인 두시에 맞춰 들어간 탓인지, 아직은 한산했고 그 안을 떠도는 낭랑백수는 뻘쭘함을 느꼈다. 그래도 외동인생 2N년, 혼자 놀기 능력자에게 이 정도 솔플은 가뿐했다. -객기가 약간 섞였다-
미디터 아트 전시가 열리는 그레이룸으로 호다닥 입장했다. 첫 번째 전시는 cat Orheus로 미디어 아트 전시였다. 제목에서 엿 볼 수 있듯,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미디어 아트 전시다. -혼자 보고 있으니 친절한 제작자 분이 다가와 알려주셨다-
저 뒤에 핸드폰 들고 서성이는 실루엣이 나다. 관객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면 흐릿하게 처리되어 화면으로 송출되는데, 가운데 보이는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잡기 위해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관객도 있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닿을 순 없었다. 사람의 움직임은 고양이를 통과할 뿐이었다.
전시가 끝난 뒤, 같은 공간에서 세 분의 청년예술인의 성과 보고회가 열렸다. 각기 다른 주제로 발표를 하셨지만, 예술에 대한 고찰이 엿보였기에 본질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예술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에 대한 각자의 수단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들의 발표에 담겨있었다.
창작자로서, 웹진 필진으로서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어 값진 기회였다.
다음 행사까지 준비 시간이 있어 그레이룸을 빠져나와 전시를 구경했다. 청년예술인의 작업 환경과 고충. 그것들이 융합된 결과물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청년과 예술인이라는 특성을 결합한, 청년예술인이라는 사회적 층위. 어떤가. 가장 개성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가. 그러나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획일적이다 못해 생존의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고독해야하고, 배 곪아야 한다는 시각. 놀러가서 사고를 당한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선. XX의 예산 삭감에는 분노하지만 예술계의 예산 삭감은 그러려니 하는 생각. 예술을 단지 유희로 치부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무의식이 사회 전반에 산재 되어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 전시였다.
청년예술인의 인터뷰를 듣고, 작업 과정을 엿보고, 속마음을 담은 포스트잇을 보며 연대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이들과 함께할 자격이 있을까. 나를 예술인이라 지칭해도 될까. 라는 사색에 잠길 때 쯤 나는 새로운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미와 베짱이가 함께하는 협동형 보드게임, '위로 뭉쳐!' 에 참가했다. 첫 번째 사진 왼쪽이 매미고 오른쪽이 베짱이이다. 귀엽지 않나. 실제로 보면 연기를 정말 앙증맞게 하셔서 더 깜찍했다.
게임은 더 귀엽다! 주사위를 굴려 초록, 노랑, 파랑, 빨강의 아기 새를 진입기에서 안정기까지 옮겨 놓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룰. 진입기를 지난 아기 새들은 꼭 인접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만약 떨어지게 되면 처음 부터 리셋. 태초마을로 돌아가게 된다. 예술인에 진입한 청년들끼리 돌돌 뭉쳐 안정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잘 느껴졌다.
중간에 보이는 미션 카드에 아기새가 진입하게 되면, 카드에 적힌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청년예술인이라면 공감 갈만한 내용들이니 사진을 유심히 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한푼 줍쇼를 크게 외칠때 부끄럽지만 공감이 갔다-
게임이 끝나고 매미와 베짱이를 연기한 배우분들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왜 개미가 아니고 매미인가 하면, 노래를 불러야 하는 매미가 노래를 부르지 못해 베짱이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참여자도 배우분들과 함께 박수 치고 노래하며 응원을 보냈다. 여러모로 귀여운 게임.
이후로는 네트워킹 행사가 진행됐다. 저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음료와 분식을 준비해 주셨다. 왼쪽 위에 보이는 젠가 뒤에는 예술 관련 질문이 적혀 있는데 둥굴게 둘러앉은 사람들 중 질문이 적힌 젠가를 받은 사람이 답을 하는 규칙이었다. 받은 사람은 다시 젠가를 뽑고. 반복.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기에 어색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어 이야기가 흥미롭게 흘러갔다. 고통이 닥칠 때 극복하는 각자의 팁을 공유하고, 재밌게 본 영화나 책을 공유하며 서로를 통해 시선을 넓힐 수 있는 경험을 나누게 되었다.
사실, 꾸며낸 표현보다. 그저 신기하다는 간단한 단어가 내 심정을 대변하기에 적절할 것 같다. 이전까지 주변 예술인이라 하면, 배우나 연출가 같은 영화나 연극에 치중되어 있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그 저평이 생각하지도 못한 지점까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국악인도 계셨고, 발레를 하시는 분도 있었고, 예술 지원 사업 담당자도 계셨다. -글 쓴다는 것 정도로는 이 곳에서 발에 채일 수준이라고 생각했지만 나 밖에 없긴 했다- 그럼에도 지향점은 비슷하다는 점. 자신의 뜻을 널리 펼치고자 예술이라는 수단을 택한건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값진 분들과 만난 소중한 시간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정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 팜플렛에 적힌 그들의 취지를 통해, 그리고 나의 글을 통해 수많은 청년예술인이 고독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참가자 1일 뿐이기에,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모였는지 연대를 결심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걷는 길을 응원하는 것 정도는 열렬히 해줄 수 있다. 응원은 돈이 안 드니까.
그리고 방금 청년예술청 공지사항을 확인했는데, 곧 카페 영업이 종료된다고 한다. 너무 억울하다. 여기 생긴지 5년 넘었다는데, 한 번도 못 써보고 끝이라니! -게다가 동네인데!- 그래도 공유 오피스는 운영한다고 하니 종종 찾아가 작업할 계획이다.
무수한 글, 개인 작업과 아트인사이트의 글들이 쓰여질 장소. 청년예술청. 첫 방문이니 아직 탐색전 중이지만 어떤 공간인지, 어떤 사업을 펼치는 지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장소에 애착을 가지는 성격인지라 이 장소도 내 소중한 공간 리스트에 합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트인사이트에서의 첫 글도 아마 에무시네마 소개였을 것이다-
이 행사. 전시는 공감됐고, 발표는 훌륭했고, 게임은 재밌었고, 사람들도 참 좋았다. 그러니, 첫 인상은 합격이다. -이것도 객기. 사실, 기획해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김한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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