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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신데렐라는 없다 - 아노라 [영화]

by 노현정 에디터
2024.11.16 19:44

 

 

신데렐라 이야기는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동화를 넘고 현실로 돌아온 신데렐라는 “꽃뱀”이라는 혐오단어로 통칭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대개 젊은 여성이 돈과 권력을 가진 남성과 교제 및 결혼을 할 때 이를 혐오하기 위한 단어를 명명했다고 느껴지곤 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 유명한 클리셰를 통해 위계관계와 그 너머의 허탈함을 보여준다.

 

영화 아노라는 스트리퍼 아노라가 러시아의 재벌 2세 이반을 만나고 충동적인 결혼을 한 후의 이야기를 줄기로 전개된다. 행복함도 잠시 아들의 결혼 소식을 들은 이반의 부모님은 미국에 있는 부하 3명을 보내 둘의 혼인무효소송을 진행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겁을 먹은 이반은 홀로 도망치고 남은 아노라와 3명은 이반을 찾아다니는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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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노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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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라와 애나


 

아노라는 애나라는 이름으로 스트리퍼 일을 한다. 섹스를 ‘수행’하면서도 심리적인 선은 넘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영화의 첫 씨퀀스와 같이) 공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만난 이반은 그녀에게 달콤한 자본의 세상을 맛보여준다. 이반은 철부지에 현실 감각이 없겠지만 아노라는 누구보다 그 차이를 알고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이 도피성 결혼의 유혹에 넘어간다. 얼렁뚱땅 청혼하는 이반에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진심이냐며 되묻는 순간 스트리퍼 애나는 아노라가 된다.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거는 그 표정. 사랑은 없지만 있는 걸까 재어보는 그 표정 말이다.

 

이 아노라는 영화의 가장 마지막 씬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들은 정말 결혼을 해버린다. 이제 법적인 아내 애나지만 학습적으로 이반에게 섹스를 제공하려 하며 권력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혹은 더 공고한 위계를 보인다. 청소하러 온 직원들을 이반은 전혀 의식하지 않지만 아노라는 계속 의식하는 모습에서 언제 파탄 날지 모른다는 그녀의 불안감은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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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불편하고 편한 동행


 

이반이 도망가 버리고 시작된 동행에서 3명의 부하와 아노라의 사이에서는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아노라의 난동에 서로 욕을 짓이기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서로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이반을 찾아야 하는 4명의 동승이 고되지만,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계속되던 위계관계에서 벗어난, 같은 목표를 가진 일시적인 협업 관계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노라는 그 3명에게 무척이나 사납게 군다. 마치 드라마에서 내가 누군 줄 알고! 라는 대사를 하는 재벌처럼 아노라는 발광한다. 그들을 물어뜯고 욕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그 장면을 보고 있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자고 저리할까 하는 연민과 한심함이 들었다. 그러나 아노라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생각하면 그의 발악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다 못해 안타까워지기까지 한다. 이미 연극은 끝났지만 여전히 무대에 남아있는 것 같은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간다.

 

부하 세 명과 아노라는 일단 이반을 잡아야 하는 목적을 가진 것에 더해 비슷한 계급에 위치한 이들이다. 영화 초반 침착하던 토로스도 이반을 찾지 못하자 견인되는 차에 올라타 억지로 차를 떼어내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는 아노라는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그 위치를 착잡하게 실감한다. 힘든 일을 함께하고 나면 일말의 동료애 같은 것이 생긴다. 이들이 공조하면서 느끼는 것은 힘듦과 더불어 왠지 모를 공감대 같기도 하다.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다. 하는 자조이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의 끝자락 아노라를 집에 보내면서 토로스는 짧게 고맙다는 말을 덧붙인다. 나의 업무를 잘 끝내줘서 고맙다는 뜻일까 혹은 고생했다는 의미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사이에 분명 묘한 기류가 흘렀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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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연민을 받을 바에는 울지 않으리라


 

이 모든 고생을 지켜보는 이들 중 이고르는 특히 말이 없다. 이반을 찾고 이반의 부모님을 만나고 모욕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 변명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나 약하지 않다고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아노라도 그런 태도를 보인다. 이고르가 머플러를 건네주고 짧은 말을 건넬 때 아노라는 욕으로 응수하며 끝까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꼿꼿하게 서 있는다. 그의 연민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의 마지막, 혼인 취소를 하고 도착한 뉴욕에서 이고르는 이반과의 결혼반지를 그녀에게 돌려준다. 그늘진 얼굴의 아노라는 너무나 당연하게 이고르에게 올라탔지만, 그가 키스를 시도하자 거부하고 눈물을 터뜨린다. 그동안 남성과의 관계에서 지속해 온 것이 섹스뿐이었기에, 언제나 모든 것에 값이 있었기에 익숙한 방식을 택하는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처절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이고르를 사랑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러지 않길 바란다. 이고르의 연민을 거부했던 것은 아노라가 강해서가 아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아노라의 삶에 조금의 힘이 될 뿐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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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없다.


 

이 영화를 보고 성 노동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느냐 아니냐, 그들이 사랑이냐 아니냐 등 무수한 이야기와 논쟁이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면서 아노라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지만 결국 그 삶 자체를 바라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직업을 떠나 아노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서 있다. 여성이자 러시아계 미국인이며 가난하다. 이반과의 결혼에서 많은 순간 처절해진다. 스스로 믿고 지켜왔던 자존심이 너덜너덜해져도 밍크코트를 입던 그녀는 베가스로 돌아오고서야 자신이 신데렐라는 아님을 받아들인다. 코트도 머플러도 전부 던져버리는 모습에 조금은 안타까워지고 조금은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노라가 영화 내내 너무 애를 쓰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표정도 소리도 내지 않는 장면은 퇴근 후 집으로 가는 한 씬 뿐이다. 그 건조한 모습이 낯설 만큼 영화 내내 아노라는 짙은 화장이나 공격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표출한다. 스물세 살이지만 스물다섯의 표정을 하고 아노라가 아닌 애나라고 부르라는 이 여자를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연민보다는 그 고됨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동감만 할 뿐이다.

 

까치발하지 않고 살면 안 되냐고 묻고 싶으면서도 그의 삶의 복잡다단함을 마주하면 마음 한편에는 조금 응원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한 명의 삶에서 어떻게 좋은 점만 혹은 나쁜 점만 있을까. 쉽게 판단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강렬한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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