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 드랙퀸은 어떻게 10년을 사랑받았나 [공연]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뮤지컬 '킹키부츠'가 전하는 메세지
글 입력 2024.11.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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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핫한 뮤지컬을 꼽자면 바로 '킹키부츠'가 아닐까.

 

유튜버의 패러디 영상으로 대중에게 'Land of Lola' 넘버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흔히 '뮤덕'이라고 부르는 뮤지컬 광팬이 아니더라도 우렁차게 울리는 "And like Shazam!" 라인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또 한 가지. 2014년 12월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 있고 난 뒤에 올해는 벌써 우리나라에서 킹키부츠를 상영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는 드랙퀸이라는 개념이 생소하지만은 않다지만 지금도, 그리고 10년 전에는 더욱이 한국이 소수자에게 있어 그리 개방적인 국가는 아니다.


이토록 마이너한 소재로 킹키부츠는 어떻게 그리도 오래 사랑받으며 메이저 뮤지컬 공연으로 자리매김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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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마무리쯤에 배우들이 '행복의 6단계'를 외쳐준다. 공연장의 벽에도, 팸플릿에도 쓰여 있는 이 여섯 단계는 조금은 그 등장이 뜬금없다. 그럼에도 배우들이 하나하나 짚어준다는 것은 장치적인 이유일 것이다. 필자는 이 단계들이 행복한 삶에 대한 힌트이자 뮤지컬 킹키부츠를 더 정확하게 감상하는 데에 핵심이 되는 힌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24년 서울 마지막 공연이 막을 내린 지금, 이 글에서는 행복의 6단계를 따라 킹키부츠가 매력적인 이유를 파헤쳐본다. 공연의 여운이 남았다면, 혹은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조금의 스포일러를 감내할 수 있다면 따라오시길.

 

솔직하게, 뭐든 도전해 봐,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줘, 사랑해, 자신을 믿어봐, 맘을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

 

 

 

솔직하게, 뭐든 도전해 봐


 

킹키부츠는 전형적인 쇼 뮤지컬이다. 당신의 시간을 확실하게 신나게 날려버렸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입증했다는 말이다. 마지막 넘버인 'Raise you up' 두 번째로 울려 퍼질 때 관객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주섬주섬 반짝이는 절대반지를 꺼내 함께 춤을 출 준비를 한다. 이 일사불란한 행동들은 흡사 유명 팝가수의 콘서트를 방불케 한다.


아, 그런데 마지막 곡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를 위해 조금 아껴두자. 지금은 배우들이 기쁨을 뿜어내는 또 다른 곡, 1막의 마지막 넘버인 'Everybody say yeah'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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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 "솔직하게, 뭐든 도전해 봐." 솔직하게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 이후에야 의미 있는 도전이 가능하다. 삶의 공사를 시작하려면 견적부터 잘 내야 한다는 뜻이다. 찰리는 이대로라면 공장이 망한다는 차가운 현실과 아직 사장으로서 미숙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주위의 의견을 듣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털어놓은 상태에서는 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직원들의 조언과 지나가는 드랙퀸의 가벼운 푸념까지도 좋은 조언이 된다.

 

그리고 도전. 도전이라는 말에 'Everybody say yeah'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넘버는 없을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며 바를 타고 등장하는 엔젤들과 하이힐을 신고 컨베이어 벨트를 러닝머신처럼 뛰어다니는 아찔한 연출. 벨트는 나뉘고 합쳐지며 계속해서 돌아간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두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는데, 어디에 눈을 돌려도 화려해서 눈동자가 정신이 없다.


올해 킹키부츠의 컨셉처럼 말 그대로 관객과 함께 즐기는 파티이다. 무대 뒤의 꾸준한 시간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고난도 안무들이 있기에 관객들의 시선은 무대에서 떠나지 않는다. 도전이라는 말은 얼핏 무모해 보이기 쉽지만,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무대 위를 에너지로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은 그들의 도전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줘


 

행복의 세 번째 단계,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줘. 이건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개개인이 모두 다른 것은 몹시도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왜 무의식중에도 그 다름에 한계를 정해놓는 것일까.

 

"레이디스. 젠틀맨, 또 이런 저런 그런 모든 분들, 그리고 당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크게 변한 대사이다. 관객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대사로, 초연 때는 "신사 숙녀 여러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대사가 변경된 것은 그 시간 동안 젠더의식이 또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이런, 저런, 그런, 특별히 어디에 속한다거나 속하지 않는다고 정의하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당신.


이러한 메시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인물이 바로 대체 불가한 그 캐릭터, 롤라다. '킹키부츠'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다. 2대째 이어지는 수제화 공장도, 위기를 맞이한 것도, 드랙퀸을 위한 하이힐을 제작해 내며 공장이 부활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한 가지 창작된 것은 바로 "롤라". 현실에서는 드랙퀸을 위한 하이힐과 옷을 판매하는 가게의 주인인 수 셰퍼드가 찰리에게 남성용 하이힐을 제안했지만 극에서는 드랙퀸인 롤라가 직접 찰리에게 영감을 준다. 뮤지컬화 되며 추가된 캐릭터인 만큼 롤라는 반드시 필요한 캐릭터이자 이 극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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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는 14년도 첫 공을 섰던 강홍석 배우가 연기하는 롤라를 볼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커튼콜이 끝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장난기 가득한 손 인사를 흔드는 홍석 롤라.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접적이다. 영화였다면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뮤지컬에서는, 그것마저도 롤라의 매력이다. 너무 직접적이지 않냐고 말하면 금방이라도 새침하게 "어머 자기야, 어떻게 말하든 그건 내 맘이야."라고 말하는 롤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홍석 롤라에게 킹키부츠란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필자에게도 그렇다. 롤라가 나오는 넘버마다 강홍석 배우의 쩌렁쩌렁한 호령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관객들의 가슴과 공명한다. 그 호령의 정점을 볼 수 있는 건 롤라의 등장넘버인 'Land of Lola'이다. 음악이 울려 펴지며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빨간색 조명이 탁 켜질 때부터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Lola~ Lola~"라는 노랫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뜨거운 드랙쇼. 강홍석 배우의 우렁찬 성량, 우아한 몸짓, 새침한 말투, 도드라지는 근육들이 있는 그대로의 롤라를 표현한다.

 

우리는 그를 재단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서 펼쳐지는 그의 세계를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사랑해, 자신을 믿어봐


 

우리는 롤라를 통해 돈처럼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상대를 올곧게 바라보았다면 남은 건 나 자신이다. 행복의 다음 단계. 사랑해, 그리고 자신을 믿어봐. 여기서 사랑이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임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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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키부츠의 주인공은 찰리이지만, 등장 때마다 극의 분위기를 확 바꾸는 것은 롤라이다. "벌그죽죽 버건디 아니고~ 레드~" 특유의 그 느릿하고 늘어지는 말투와 자신감 있는 미소. 롤라가 이토록 매력적인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찰리가 초반에 그토록 찌질한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이 사실은 서로가 같은 결핍을 가지고 있음을 공유하는 넘버, 'Not my father's son'. 이 넘버를 통해 롤라도 찰리와 같은 상실의 과정을 겪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극본을 쓴 하비 파이어스틴은 킹키부츠를 "고민과 투쟁, 자기 수용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가장 여리고 추악한 모습을 아는 것은 스스로이니까. 버려지고 부정당하는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 믿음을 쌓기란 어려워진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에게 부정당한 자신의 모습을 끝내 스스로 긍정한 롤라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에게 사과하고 나아가기로 한 찰사장은, 그렇기에 빛난다. 모두가 당신의 존재가 틀렸다고 말해도 내가 스스로를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맘을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


 

드디어 행복의 마지막 단계까지 온 당신에게 작은 박수를. 이 작은 박수와 응원이 세상을 바꾼다면 믿겠는가. 당신의 존재도, 나의 존재도 틀린 것 하나 없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서로를 지지해 주는 따뜻한 마음뿐이다.

 

이 마음은 극을 넘어 현실에서도 이어진다. 킹키부츠의 연출과 안무를 맡은 제리 미첼은 자체 기획 및 제작하는 코미디쇼와 위성 단체들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마음들이 모여 이제는 세상을 바꾼다!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삶이 지칠 때 힘이 돼줄게

인생 꼬일 때 항상 네 곁에

난 언제나 함께, 함께 할게!

 

- Raise you up, 킹키부츠 넘버

 

 

다시 극 안으로 돌아와 보자. 마지막 넘버 'Raise you up'의 가사다. 가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음이 떠오른다.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언제나 곁에 있어 주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워질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던 관객들을 벌떡 일어나게 하는 것도 충분히 극장 내의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닐까? 일어난 관객들이 찰리의, 돈의, 롤라의, 로렌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극장 밖까지 가져다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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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으로 난입한 엔젤들이 신나게 춤을 추며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등장한 모든 배우가 나와 칼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모든 배우들이라는건, 아역들도 포함이다. 어린 찰리 옆의 어른 찰리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 롤라 옆의 어른 롤라와 아버지. 상처받은 연약한 어린 자아를 다 큰 어른이 된 원숙한 자아가 품어주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글을 읽으며 마음에 울림이 생겼다면, 그리고 엉덩이가 조금 들썩거렸다면 현장에서는 그 느낌이 배가 될 것이다. 글로는 담지 못한 배우들의 엄청난 에너지와 훌륭한 연주가 있으니. 서울 공연은 이제 막을 내렸지만, 다른 지역 공연은 아직 남아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기를. 그리고 킹키부츠는 반드시 또 돌아올 테니까. 묵직하지만 사랑스러운 메시지가 담겨있는, 뮤지컬 입문으로 딱 좋은 뮤지컬. 킹키부츠의 10주년을 축하하며, "Kinky Ever After!"

 

 

[윤희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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