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질랜드 여행 기록 - 마지막. 웰링턴, 여행의 시작과 끝 [여행]

떠나고 싶지 않았던 내 보금자리
글 입력 2024.11.0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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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여행의 시작과 끝, 웰링턴이다.

 

4개월 간의 교환학생은 이미 4개월 전에 끝났는데도, 여전히 웰링턴이 그립다. 나만의 작은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작은 수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항구도시 웰링턴. 오늘은 웰링턴의 매력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앞서 이야기한 대로, 웰링턴은 작다. 웰링턴의 행정구역 규모 자체는 그렇게 작지 않은데, 흔히 시내라고 불리는 구역의 면적이 정말 작다. 살짝 과장해서 30분이면 웰링턴 시내를 걸어서 주파할 수 있다. 회사 건물이 밀집된 거리와 장을 볼 마트, 옷을 살 옷 가게 거리, 식당가, 학교 도서관이 지름 30분 안이라니! 당시의 나에게는 이 30분 생활권이라는 게 퍽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나 행정구역 자체는 작지 않아서 상점가가 웰링턴 중심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로 따지면 구 단위로 상점가가 조성되어 있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얄팍하게 공부한 지금의 내 눈에는 굉장히 이상적인 도시 형태다.

 

웰링턴도 분명히 출퇴근 시간은 존재하지만, 한국보다 훨씬 폭이 넓고 또 이르다. 오후 4시쯤 장을 보러 갔다가 퇴근 후 장을 보려는 사무직들 사이에 잔뜩 끼게 되었으니, 보통 6시에 퇴근하는 한국의 사무직들을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하게 이른 셈이다. 버스 배차 간격이 서울보다 넓은 탓인지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만원 버스는 6시 이후까지 이어진다는 것도 신기한 점이다. 아, 웰링턴의 버스카드 시스템 ‘Snapper Card(스내퍼 카드)’는 티머니를 따왔다고 한다! 처음 스내퍼 카드를 만들 때 홈페이지에서 티머니를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웰링턴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항구도시다. 두 가지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대신 기막힌 경사를 감당해야 하지만, 솔직히 웰링턴 항구의 수면과 빅토리아산에서 보는 노을은 모든 고생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항구 장터와 빛나는 해수면, 날이 좋을 때면 늘 항구 근처를 돌아다니는 ‘Tree Man (잎사귀를 잔뜩 붙인 분장을 하고서 트럼펫을 부는 행위예술가. 웰링턴에 살다 보면 꼭 한 번은 마주치게 되어 있다)’, 때맞추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까지! 신기하게도 바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 항구의 벤치에 늘어져 있다 보면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의 평화가 슬쩍 발을 내민다. 왜 비린내가 나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조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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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젤라토는 뉴질랜드 전역의 특징이지만, 그냥 한 번 적어본다. Kaffee Eis라는 유명한 젤라토 가게에서 사 먹었던 자두 맛의 젤라토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아, 날이 좋을 때 더 자주 먹어둘걸! 학기가 지날수록 쌀쌀해져서 기껏해야 3~4번 정도만 사 먹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대신 플랫에서 마트 아이스크림을 몇 통은 더 퍼먹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지만, 미묘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룸메이트가 벌꿀 집 토피가 들어간 바닐라 맛인 호키포키 아이스크림을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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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요즈음 유난히 그리운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Op-shop, 빈티지 옷 가게들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뉴질랜드 전역이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웰링턴에는 빈티지 옷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있었다. 자선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몇몇 고가의 빈티지 가게들 말고는 대부분 저렴한 가격의 중고 옷과 소품들을 판매한다. 한국에서는 빈티지라고 하면 기본 4~5만 원은 하기 마련인데, 웰링턴에서 내가 산 옷들을 대부분이 2~3만 원 이하다. 만 원 정도에 구매한 멋진 블라우스는 신나게 자랑하고 다닐 정도로 질이 좋고 예쁘다. 요새는 그게 참 그립다.

 

가장 그리운 건 역시 내가 지냈던 플랫이다. 집 한 채를 통 크게 내준 대학교에 무한한 감사를! 나와 두 명의 룸메이트가 함께 지냈던 우리 집은 마당이 딸린 방 3개짜리 일 층 주택이었다. 가장 늦게 입주한 탓에 내 방이 가장 작았지만, 층고가 무척 높아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 끝까지 수리해 주지 않아 반쪽이 없었던 커튼 너머로는 늘 커다란 나무와 그 뒤의 마당이 보였다. 나뭇잎 사이로 환하게 비추던 햇살이 잘 때는 마냥 원망스러워도 깨어있을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난생처음 쓰게 되었던 오븐과 친해지게 도와주었던 넓은 주방과 큰 소파 두 개에 6인용 테이블까지 널널하게 놓을 수 있었던 거실 덕에 자주 친구들을 초대해 놀 수 있었던 것 또한 큰 행운이었다. 마당에 담요를 깔고 누워서 오늘은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하던 시간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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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친구들과 보내던 시간이 그리워 두루뭉술하게 플랫이 그립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먹했던 며칠, 몇 주가 지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일과를 얘기하며 웃었던 첫날, 옆집의 파티 소음에 대항해 노래방 파티를 벌였던 어느 날의 밤, 함께 영화 동아리에서 이상한 영화를 보고서 진지하게 감상을 나누며 집으로 걸어오던 길, 한밤중의 식물원 놀이터에서 신나게 그네를 타며 왁왁하던 기억, 함께 떠났던 다른 지역으로의 자동차 여행이 너무 좋은 추억이 되어서다.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정말 신나는 한 학기를 보냈구나, 싶다.

그래서 웰링턴을 떠나기가 정말 싫었다.

 

‘뉴질랜드 여행 기록’은 4월 초 학기 중 방학에 다녀왔던 여행을 주제로 쓰기 시작한 글인데, 지금까지 지지부진 끌고 있는 것을 보니 기록으로마저도 보내주기 싫었나 보다. 월요일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의 발걸음처럼 질질 끌어가며 도착한 기록의 마지막에서 생각해 보니 결국 뉴질랜드에서 보냈던 4개월이 전부 하나의 완벽한 여행이었다.

 

서울이라는 갑갑한 틀을 벗어나 이방인으로서 환영받았던 나날들이 여전히 그립다. 내 방문으로 보이던 초록빛의 풍경이 그립고, 맑았던 공기가, 강렬한 햇빛이 그립다. 돌아와 보니 더더욱 잘 알겠다. 서울에서의 내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는지,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사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이상하게 괜찮은 상황이 여행 내내 제법 많았다. 길을 잃어 30분을 헤매고, 시간에 쫓겨 기대했던 전시를 보지 못하고, 저녁으로 요리한 파스타가 맛이 없어도 속상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면 신기하게 기분이 싹 나아졌다.

 

예정에서 살짝 어긋나더라도 멋진 여정이 되었던 것은, 아마 희고 긴 구름의 땅 아오테아로아(Aotearoa, 뉴질랜드의 마오리식 이름)의 마법 덕분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웰링턴에 돌아가야지. 테 파파 박물관 마오리 전시실에서 멋진 ‘문’과 약속했다. 꼭 이곳에 돌아오겠다고, 돌아와 날 듯이 움직이는 흰 구름과 인사하겠노라고.

 

속상한 마음을 다잡고 웰링턴을 떠나던 날, 밤이었는데도 구름이 유난히 예뻤다. 돌아오는 날, 이번 여행처럼 나를 환하게 반겨줄 것이라고, 아오테아로아가 나에게 약속한 것만 같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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