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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동안 파리에 살면서 수천 번 미술관을 들락날락 했다는 저자 진병관. 미술관이 폐쇄된 2021년에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기묘한 미술관'을 출간했고, 출간 직후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그 후속작으로 '더 기묘한 미술관'이 나오게 되었다.

 

1관. 운명의 방 / 2관. 어둠의 방 / 3관. 매혹의 방 / 4관. 선택의 방 / 5관. 기억의 방

 

미술관 전시 기획하듯 책의 목차를 구성해놓은 그의 디테일에서, 미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운명, 어둠, 매혹, 선택, 기억.] 단어를 나열하고 나니, 왠지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운명처럼 태어나, 어둠 속을 헤쳐나가다 좋아하는 일에 매혹당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한 뒤 우리는 과거 기억을 가지고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나간다."] 

 

 

 

기억하고 싶은 작품 - [제임스 앙소르]


 

수많은 악평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소신껏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친 앙소르의 정신을 닮고 싶었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소신 있는 예술가'하면 '앙소르'가 떠오를 것 같다.

 

앙소르가 그의 대표작 <예수의 브뤼셀 입성>과 같은 작품을 그리기까지의 여정은 매우 험난했다.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했지만, 신화와 성서, 고전 작품을 기초로 한 전형적인 아카데미 미술 교육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입학한 지 3년 만에 졸업을 포기한다. 부모의 집 다락방에 작업실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고,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상을 주제로 빛을 연구한 작품들을 발표하지만 비꼬는 말들과 날이 선 비판들을 수없이 듣게 된다.

 

앙소르를 포함한 스무 명의 젊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여 만든 '20인회'의 활동을 기존 미술계는 눈엣가시로 여겼고, 그래서 앙소르와 같은 새롭게 예술을 만들어가는 화가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20인회와 활동을 하던 시기부터 그의 작품은 상징주의 화풍으로 변해, 그의 작품에는 '가면'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분노한 마스크들> 등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있거나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림 속에는 가면을 쓰지 않은 인물도 많지만, 그들 또한 가면을 쓴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그려져 모든 이들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앙소르는 사람은 누구나 일종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면은 익명성을 갖게 한다. 가면 뒤에 숨어버린 누군가는 내면에 감춰두었던 잔혹함을 쉽게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면 행진은 인간의 내면에 담긴 속마음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진실한 순간일지 모른다."]

 

가장 공감이 갔던 대목이다.

 

가면을 쓰면 내면을 숨길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개성 있는 가면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고 어떨 땐 가면을 패션 아이템처럼 사용하곤 한다. 사회 생활을 하는 우리도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끔은 가면이 유용하게 사용될 때도 있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 감추면서 다른 누군가를 헐뜯는 용도로 가면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알면서도 중독적으로 하는 사람들,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무작정 익명성에 기대어 말하는 사람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그 사람들을 풍자하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앙소르의 작품 감상을 통해 하게 되었다.

 

앙소르 말고도 다양한 화가들이 등장한다. 죽음으로 끝나도 결국 승리했다는 뜻을 담아낸 펠릭스 누스바움의 <죽음의 승리>도 인상깊게 보았다. 또, 부모의 따듯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 주로 공상하는 시간을 보내며 살아온 오딜롱 르동의 작품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내면'과 '세계'로 가득 찬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깊이 사색하고 탐구한 끝에 그려낸 작품은 섬세하며, 때론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 세밀하고, 기묘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궁금하다면 <더 기묘한 미술관>으로 찾아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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