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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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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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프리슬리가 테크 기업가 벤지와 마주 앉은 장면. 미란다는 오래 지켜온 예술적 가치,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고 믿어온 숭고한 아름다움에 대해 질문한다. 벤지는 대답한다. 결국 AI가 모두 해낼 것이라고. 변화는 용암처럼 세상을 덮칠 것이고, 인간은 그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령 그게 우리를 덮칠지라도.

 

카메라는 그 말을 듣는 미란다의 얼굴을 담는다. 분노도, 반박도, 경멸도 아닌 얼굴. 다음 장면에서 미란다는 홀로 밀라노의 텅 빈 거리 중심에 서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그녀의 표정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어쩌면 그 장면을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이 슬픔이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가장 빠르고 화려한 변화를 겪는 패션업계의 중심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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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가장 복잡한 방식으로 답하는 인물은 에밀리다. 1편에서 에밀리는 미란다의 그늘에 속한 인물이었다. 런웨이>의 문법을 체화하고, 그 세계의 규칙을 가장 충실하게 내면화한 조수. 그러나 2편의 에밀리는 디올로 이직한 뒤 럭셔리 리테일의 현장 중심에 자리한다. 미란다는 에밀리에게 “넌 눈앞의 것만 봐, 멀리를 볼 줄 몰라”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밀리는 이 영화에서 변화에 대한 통찰을 가장 날카롭게 던진다.


럭셔리는 대중과 가까워졌고, 잡지는 멀어졌다. 광고주가 콘텐츠의 방향을 흔들고, 조회수가 가치를 증명하며, 시선을 붙잡지 못한 것은 아무리 정성스럽게 만들어져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진 세계. 에밀리는 그 물살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언어는 직관적이고, 우리의 살갗에 금세 와닿는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에밀리라는 인물의 공허를 드러낸다.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인물이, 변화 앞에서 가장 크게 무너지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 에밀리는 변화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낸 것이 아니라, 변화를 입으며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해왔다. 브랜드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럭셔리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처럼 체득하고, 광고주와 자본의 시선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척도로 작동하게 두었다. 그러다 그 장신구들이 하나씩 벗겨지자, 에밀리는 텅 빈 자리에서 길을 잃는다.


앤디에게 “우리가 친구가 되기엔 너무 늦었어. 난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네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하는 에밀리의 목소리는 단순한 좌절을 넘어선다. 변화를 자신의 외피로 삼았던 사람이 언젠가 맞닥뜨리게 되는 공허의 소리처럼 울린다. 에밀리가 겪는 위기는 커리어의 위기를 넘어, 정체성의 위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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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란다, 나이젤, 앤디는 에밀리와 다른 방식으로 변화의 시간을 견뎌낸다.


영화는 이 차이를 공간과 사물로 세심하게 시각화한다. 미란다의 사무실은 1편에서도, 2편에서도 동일한 질서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 위에는 여전히 잡지가 놓여 있다. 어느덧 낡은 형식처럼 여겨지는 그 잡지는 미란다가 이제껏 지켜온 세계이자 그녀만이 가진 감각의 결정체다.


나이젤은 런웨이가 흔들리고, 기업의 논리가 잡지를 압박하는 순간에도 루페로 가방의 마감을 들여다본다. 디지털 이미지보다 실물을, 빠른 판단 이전에 손으로 느리게 감각하는 것. 그 짧은 장면 하나가 나이젤이 이제껏 시간을 견뎌온 방식을 설명한다. 그는 변화에 둔감한 사람이기보다, 어떤 변화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감각을 아는 사람에 가깝다.


앤디 역시 좋은 글을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매체가 바뀌고, 독자가 줄고, 긴 글을 읽는 사람이 사라지는 시대에도 그는 글의 밀도를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클릭 수가 부족하다는 현실 앞에서도, 앤디는 좋은 문장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 꿋꿋함은 결국 런웨이를 다시 세상과 연결해내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세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런웨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좋은 것을 고르는 눈을 믿는다는 이유로, 좋은 글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확신으로. 그들의 태도에는 고집보다 오래된 애정의 표정이 배어 있다. 그렇게 반복된 시간이 감각을 지키고, 그 감각이 다시 내일의 가능성이 된다.

 

*


변화가 찾아올 때, 예전에는 변화 쪽이 긴 설명을 들고 왔다. 왜 필요한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후의 효과가 어떨지. 기존의 것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개조, 보수의 일처럼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반대가 되었다. 이제 설명 없이 도착하는 것은 새로운 것들이다. 편하고, 효율적이며, 한눈에 보기에도 매력적인 것들.


변화는 필연적이고, 그 틈에서 오래된 것들은 갱신되면서 더 단단하게 지켜지기도 한다. 문제는 새로움이 기존의 것들을 너무 쉽게 ‘불필요한 것’으로 분류하는 속도에 있다. 오래 지켜진 것들이 가진 복잡한 결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더 빠르고 매끄러운 것들이 그 자리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 그 안에서 전통적인 것이 품은 가치는 점점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전통이 내세우는 것은 대개 수치화되기 어렵다. 숭고하지만 추상적인 가치. “그게 왜?”라는 물음 앞에서 즉각적인 효용을 내밀 수 없는 가치. 여러 사람의 손길 아래 오랜 시간 빚어진 불완전하고 투박한 아름다움. 한때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이해 속에서 지켜질 수 있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생성되고, 수정되고, 손짓 몇 번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설명이 필요해진 가치는 쉽게 비효율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이 문제는 잡지라는 매체의 위기와도 이어진다. 독자들은 이제 잡지를 직접 구입해 한 권을 전부 읽지 않는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매거진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스크롤하며 눈에 걸리는 일부만 훑고 지나간다. 더 눈에 띄는 한 줄, 더 자극적인 제목, 더 매력적인 한 페이지가 화제성을 만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밤을 지새우며 문장을 매만졌는지는 이제 더 이상 가치의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조회수가 광고를 부르고, 광고가 잡지를 살리며, 그래야만 일이 지속되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의 삶과 꿈, 그리고 감정에 깊게 뿌리내리는 콘텐츠는 점점 불리한 자리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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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벤지의 말에서 느낀 감정은 위협이나 분노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그의 말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지켜온 것들이 이제 묵묵함만으로는 지켜질 수 없다는 자각.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공유되던 가치를 이제는 설득하고, 증명하고, 거래 가능한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변화를 완전히 막을 힘이 우리에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무력감. 영화는 그 슬픔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그 슬픔을 혼자 느끼고 있는 게 아니라는 방식의 위로를 꺼낸다. 미란다는 런웨이를 가라앉는 타이타닉, 그리고 자신들을 겨우 그 옆에서 부표를 붙잡고 버티고 있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런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던 1편의 앤디는 이제 등을 돌리지 않는다. 그녀의 곁에서 미소를 지으며 아무튼 우리는 여전히 함께 멋진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더 크고, 빠르고, 안전한 배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을 틔우며 자신의 것을 지켜내는 낡은 돛단배가, 때로는 가장 멋진 방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그 위로를 에밀리에게 건네는 사람도 앤디다. 자본도, 브랜드도, 럭셔리의 후광도 사라진 자리에서도 에밀리라는 사람만이 가진 아이코닉함은 남아 있다고. 변화를 입는 것과 변화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에밀리의 위기는 변화에 둔감해서 겪은 것이 아닌, 변화를 너무 잘 알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볼 시간을 놓치면서 시작된 것이었으니까.


이 장면은 영화가 전통과 변화의 대립을 넘어 도달하는 가장 인간적인 지점이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잡지, 런웨이, 명품, 브랜드 같은 외피를 넘어, 한 사람만이 가지는 고유한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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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패션업계의 생존기를 넘어, 아름다움이 효율 앞에서 어떻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지를 묻는 영화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 앞에 선다. 미란다는 지키고, 나이젤은 감각하며, 앤디는 거리를 두고도 다시 연결되고, 에밀리는 적응의 끝에서 자신을 잃을 뻔한다.

 

영화는 오래된 가치를 무조건 지키자고 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곧 순수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미 잡지도, 패션도, 글도, 사람이 만든 모든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변화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변화의 속도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미란다가 자신의 신념과 위치를 지키면서도 스스로 코트를 걸고, 말을 가다듬고, 마지막에 “Thank you”를 붙이듯이, 변화 속에서도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쉽게 놓지 않는 태도라고 그들의 서로 다른 위치가 모여 이야기한다.


카메라 화질이 정교해질수록 필름 카메라를 찾고, 무손실 음원의 시대에 LP의 투박한 잡음을 찾는 마음도 이와 닮아 있다. 사람은 완벽하게 재현된 것보다 불완전하게 존재하는 것 안에서 자신과 닮은 흔적을 발견한다. 손때가 묻고, 마모되고, 어딘가 조금 어긋난 것들 안에서 우리는 다른 인간의 시간을 감지한다. 필름 입자의 떨림과 LP 바늘이 홈을 긁는 마찰 속에는, 단순한 이미지나 소리 너머로 누군가가 거기 있었다는 온기가 남아 있다. 세계가 매끄러워질수록, 그 온기는 더 선연하게 감지된다.


아마 그것은 우리가 완벽한 것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존재여서가 아닐까. 우리는 매끄러운 세상에서 고유의 뭉툭함이 도려내지는 동안에도, 모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던 것들을 쉽게 잊지 못한다. 효율의 이름으로 외면당한 결핍, 속도의 이름으로 밀려난 망설임, 새로움의 이름으로 낡은 것으로 취급되는 오랜 습관들. 그것들은 우리가 변화의 흐름에 빠르게 휩쓸리더라도 우리가 우리를 놓치지 않게 이따금씩 불러 세워줄 것이다.


밀려오는 용암에 맞서는 방법은 내가 불길이 되어 변화하는 세계 속에 자기 자신을 더 크게 드러내고, 더욱 선명한 모양으로 타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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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공식 스틸컷 / ©️ 20th Century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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