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백일몽의 잔재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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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파프리카〉는 꿈의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심리 치료사의 서사를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전개한다. 이는 영화 속 설정상 현실에서 꿈으로의 접속이 가능한 기계가 있다는 설정 덕분이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같은 콘텐츠에서 등장하는 꿈의 세계는 상식적으로 이해가능한 개연성이 없이 진행된다. 이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구축해나간 문화적 통용 덕분인데, 이것에 처음으로 이름을 짓고 문화적 기호를 만들어낸 문학, 예술적 선언을 ‘초현실주의(surréalisme)’라고 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초현실주의라고 불리는 이즘(ism)은 왜 이렇게 ‘꿈’과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배경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창시하고 모든 정신의학의 근간이 되는 정신분석을 만든 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정신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며 정신장애를 연구하던 프로이트는 근대까지 비이성적이며 제의적인 현상이었던 꿈의 공간을 정신적인 세계로서의 꿈으로 분석하며 그것을 치료의 목적으로 전환시켰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라는 고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무의식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영향을 받는 인간을 명명한 것이다.
프로이트가 1900년 발표한 《꿈의 해석》이라는 논문을 바탕으로 아무런 맥락 없이 발랄함과 유치함, 기괴함 사이를 넘나드는 꿈의 세계는 사실 고통의 경험에서 서사가 무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진 채 감정만 남아있기 때문에 뜬금없는 서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꿈의 해석》을 위해서는 꿈 당사자의 배경, 즉 이전 삶의 고통의 경험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이트는 마냥 밝아 보이는 유치한 꿈 속에서의 이야기가 사실은 어두운 배경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현대의 인지과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에게 비판받는 지점이 많지만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탈피하는 초석이 되며 이데올로기적으로 큰 영향력을 주었고, 그 당시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던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클럽을 만들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1920년대 초현실주의 운동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례 없던 피해를 입은 1920년대의 유럽은 인간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이성을 가진 존재인가에 대한 회의를 품었다.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클럽의 아티스트들이 초현실주의 선언으로 무의식에 대한 예술사조를 만든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예술이란 예술적 양식이나 미학적 규칙이 아니었다. 오히려 삶의 방식이라 할 만하다. 카메라의 도전에 대한 과민반응의 하나였고, 초현실주의는 카메라가 가지지 못한 내면의 눈을 주목했다. 그들은 상상력을 극대화한 꿈과 환상과 무의식을 무기로 선택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선언 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에서 초현실적 면모를 찾아내기도 했다. 외젠 아제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언캐니(uncanny),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그로테스크 등 이전에는 작가의 특징으로만 나타났던 부분들을 탐구하여 재조명했다.
이런 기발한 실험정신이 1920년대 초현실주의 예술가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현실주의에서 대표적인 회화기법이 생겨났다. 자동기술법을 실험하는 것과 또 다른 형태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을 활용하는 시각적 기법이다.
이렇게 초현실주의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급진적인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사조의 의도에는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초현실주의가 가진 이성으로부터 탈출하는 현실회피의 경향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오랫동안 분석하면 자신과 사회가 갖고 있던 두려움과 결핍을 깨닫게 된다.
신 초현실주의와 이후 문화적 현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억압에서 해방되어 미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는 도구로써 사용된다. 더 자유롭고 다원화된 작업방식으로 미디어의 활용이 가능한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참조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의 한 예로 음악사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록이 출현한 시기였던 1960년대는 반전운동을 하던 히피문화와 합쳐져 LSD와 같은 마약을 사용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사이키델릭 록과 초현실주의 사조 모두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현실에서의 탈주, 상상적 신비를 꿈꾸는 점에서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통해 초현실주의자들은 당대 소비사회에 대항하여 인간의 열정과 욕망을 수용하고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는 창조적 힘을 통해 연대하고자 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 창의력의 발산, 생각의 전환으로 적합한 사고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초현실주의에서 가져온 기법(데페이즈망, 자동기술법, 데칼코마니, 콜라쥬 등등)을 통해 미술교육현장에서 창의력을 기를 때 많이 쓰이는 미술사조이다.
덕분에 깨닫게 되는 인류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꿈의 세계에서는 모두 다 비현실적이다는 것이다. 이런 범세계적 특징이 초현실주의가 점점 넓어지는 세계화와 더불어 1960년대 이후로 계속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시대에 걸쳐 재사용될 수 있는 사상의 힘은 이런 유연한 성질 때문일 것이다.
AI와 초현실주의
AI를 활용한 많은 그림들이 초현실주의의 화풍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AI는 인간이 입력한 결과값을 내놓는 것뿐이지 초현실주의가 취했던 삶의 방식과 행동을 실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AI 앞에서 동시대의 작가들은 많은 딜레마에 빠진다.
다시금 초현실주의의 기원과 사상적 토대까지 들고 와야 했던 이유는 초현실주의에서의 예술가는 자신과 자신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이루어졌음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알 수 없는 형상들과 기호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찾아 나가는 새로운 모색점으로 삼았던 초현실주의였다. AI에서 사용되는 초현실주의의 방향은 형식적 선택인지, 태도적 선택인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새로운 기술을 최대한 사용하면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노력한 지점을 참조하고, 신기술로 더욱 넓고 빠르게 시대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한다면 현재를 사회와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작품을 고안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민규의 시 <실존주의는 초현실주의이다>에서는 인간 실존의 고통이 생겨날 때마다 상상력의 상징인 초현실주의에서 위안을 받고 계속하여 실존한다. AI와 인간사이에서 인간의 실존이 희미해질 때, 20세기초 초현실주의자들은 어떤 시각으로 신기술을 대했는지 살펴본다면 우리의 실존에 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변의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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