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는 대학교 1학년, 미술사 강의 시간이었다.
그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소위 말하는 '잘 그린 그림에 대한 경외심' 보다는 '이게 뭐지?'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학우들의 표정이나 생각도 비슷하게 보였는지, 미술사 교수님이 자신이 직접 느꼈던 마크 로스코 그림의 매력에 대해 설명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보면 거대한 색면이 자신을 감싸안는 느낌에 매료되어서 한참 동안 관객을 잡아두게 만든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교수님께서 전달해주셨던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대한 경험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책을 읽으며, 얕게나마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었다.
마크 로스코의 구상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나, 보편적인 언어, 색으로만 이루어진 화면에 이르기까지의 고되고도 즐거운 여정이 얕게나마 느껴졌다. 관객의 내면 세계까지 닿아 공명하는 그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구상화를 그리고, 그것이 추상으로 이어졌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림의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캔버스의 정확한 사이즈를 찾아본 적은 없었지만,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통해 그림의 사이즈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규모와 크기, 그리고 그것에 따른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읽고, 작품의 웅장함, 그리고 그것이 가진 관객을 매료시키는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마크 로스코는 관객과 그림 사이의 공명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내가 평소에 가졌던 생각에 대해 묘한 반성을 불러 일으켰다.
주로 내 작업이 말하고 싶은 바에 대해서는 생각해왔지만, 관객에 대한 것까지는 생각한 적이 드물었다. 작업을 보는 관객은 생각도, 경험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작업을 마친 이후의 것은 나의 몫이 아닌, 관객의 몫이라고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개별적인 관객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의지는 이러한 태도를 충분히 부끄럽게 만들었다. 작업을 끝낸다는 것은 캔버스를 채우는 것에서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의 관객과의 대화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태도는 우리의 경험을 틀 안에 가두고, 모순이 만연하고 회색의 영역이 가득한 세상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가져다는 구절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경험을 틀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닌, 경험을 무기로 틀을 깨고 나아갈 수 있는 태도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