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밖을 나서면서 유튜브, 넷플릭스, 네이버 웹툰에서 드라마, 영화, 예능, 만화를 습관처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잠에 들기 전까지도 잠이 오길 기다리며 asmr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의 릴스를 계속 내리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대중예술을 접하며 살아간다. 어려서부터 영화, 드라마 등에 노출되어 대중예술을 거리낌없이 즐기는 모습은 일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예술과 친밀한 생활을 보내는 모습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20년대가 되어서야 문화에 대한 구매력을 가진 대중이 출현해 대중예술이 등장했으니 대중예술의 역사는 10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변화들로 인해 1920년대에 출현한 대중예술과 2024년 현재 대중예술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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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중예술에 대한 평가는 대중예술이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 맥도날드, 그린버그와 같은 초기 대중문화 비평가의 평가에 머물러있다. 물론 현대에도 슬라보이 지젝, 노엘 캐럴과 같은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대중예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정의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을 구분하고 ‘K-POP은 클래식보다 저급하다’와 같이 대중예술은 고급예술에 비해 저급하다는 이미지가 한 켠에 남아있는 것은 아직까지 1920년대 대중예술의 평가가 남아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100년간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대중예술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렇게 변화를 거듭하는 대중예술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아무리 대상이 빠르게 변화한다 해서 어떠한 가치판단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변화를 수긍한다면 그 대상은 어떠한 제재도 받지 못하고 우리 또한 그의 방향을 제어할 수 없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맥도날드, 그린버그와 같은 이전 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대중예술과 현재의 대중예술은 꽤 달라졌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을 현재 대중예술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따라서 맥도날드, 그린버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의 이전 학자들이 연구했던 이론들을 차용해 현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대중의 입장에서 대중예술을 재정의해보려 한다.

 

대중예술에 대한 정의를 하기 위해서는 대중과 예술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 대중예술이란 대중과 예술이란 두 개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대중과 예술을 각각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대중예술이 의미하는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필자가 생각하는 대중과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한 후 최종적으로 대중예술의 정의에 대해 논의해 보려 한다.

 

 

 

대중의 정의


 

먼저 군중심리를 연구한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의 대중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며 대중에 대한 재정의를 진행해보려 한다. 귀스타브는 전반적으로 대중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첫번째로 대중을 이성적이지 못한 존재라고 파악한다. 그는 대중이 충동적이고 잔인한데 이런 이유를 원시 사회로부터의 폭력성에서 찾으며 인간의 본성은 원래 충동적이고 잔인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대중은 편협하고 독재지향적, 보수적이며 이들의 사상이나 추론 능력들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이미지에 의해 선동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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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늘날의 대중의 모습에서 귀스타브 르 봉이 언급했던 부정적인 면 또한 일부 찾을 수 있다. 일례로 오늘날에도 정치인들은 이성적인 수치로 대중을 설득하기 보다 과격한 이미지를 만들어 선동하고, 대중 또한 이런 이성적인 설득보다는 과격한 이미지에 선동되는 편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한 대통령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얼마나 실천가능한지 판단하기 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과격하고 선정적인 루머나 이슈가 그들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본 대중은 1900년대 초의 대중이었고 오늘날의 대중은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그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인 변화로 교육, 기술의 발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교육 면에서는 1852년 미국이 세계에서 최초로 의무교육을 시작하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보편화 되었고, 한국의 경우 1949년 교육법이 공포됨에 따라 초등교육 6년, 중등 교육 3년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대중은 글을 배우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 대중과는 달라졌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의무 교육은 교양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에 적절할 만큼의 최소한의 지식만을 교육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의 교육정책처럼 정해진 생각만을 따르도록 교육한다면 이런 반론도 가능했겠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정해진 생각만을 따르도록 할 수 없게 되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글을 익힌 대중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이슈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정보들 중 어떤 정보를 볼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중은 귀스타브 르 봉의 말대로 일부 과격한 이미지에 선동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지만 어떤 것을 볼지, 어떤 것에 대해 말할지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이 생긴 계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또 다른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인 가브리엘 타르드도 기본적으로 귀스타브 르 봉과 비슷한 입장을 견지했다. 군중과 공중을 구분하면서 군중은 물리적으로 모여있는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집합체이고, 공중은 정신적인 집합체로 여론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공중인데, 가브리엘 타르드에 의하면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인쇄물을 접하게 되면서 저널리스트에게 영향을 받아 공중의 여론을 형성했다. 그는 공중을 각자 위치에서 정보를 얻고 공통의 생각을 하고 여론이 형성되는 정신적인 집합체라고 정의하며 군중과 차이를 뒀지만, 마찬가지로 지도자에 의해 주도되는 공중의 여론 형성 문제도 지적했다.

 

가브리엘 타르드의 연구 대상이었던 당시 공중은 저널리스트라는 한 여론 형성자에 의해 여론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기술적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중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한 여론 형성자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토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 대중은 스스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고 긍정적인 면으로는 집단지성이 활용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된 것이다. 학자들은 이처럼 대중의 특성을 정의했고 오늘날의 대중은 이전 대중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중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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