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우리 음악의 지금을 만나다 - 수림뉴웨이브 '독파' 윤정혜, 김수연 기획자
-
전통이라는 단어에서 많은 사람이 고루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실제 전통을 행하는 예술인들에게 전통이란 무한한 창작의 재료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음악이란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연주되고 불려 왔던 음악이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며 시대와 함께 흘러가는 '지금의 음악'이기도 하다.
'수림뉴웨이브'는 수림문화재단에서 주최, 우리 음악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통 기반의 페스티벌이다. 매번 다른 주제로 진행되는 수림뉴웨이브의 올해 주제어는 '독파(獨波)'. 일정 기간 동안 페스티벌 형태로 진행되던 여느 때와 달리, 올해는 1년간 스무 명의 아티스트, 스무 번의 무대를 만나는 구성이다. 각 공연마다 관객은 한 명의 아티스트, 하나의 악기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수림뉴웨이브의 무대 뒤에서 함께하는 수많은 조력자 중 기획자인 윤정혜 팀장과 김수연 PD를 만났다. 윤정혜 팀장은 수림뉴웨이브의 전신인 북촌뮤직페스티벌부터 시작해 올해에 이르기까지 기획자로 참여해 왔고, 김수연 PD는 작년부터 합류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중이다. 지난 4일 진행된 인터뷰는 두 사람에게서 독파를 만들어가는 자부심과 설렘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무 명의 아티스트가 들려주는 국악의 오늘
왼쪽부터 김수연 PD, 윤정혜 팀장 @박주영, 수림문화재단
상반기부터 진행 중인 올해 수림뉴웨이브의 주제어는 '독파'로, 홀로(獨) 자신만의 흐름을(波) 만들어간다는 의미인데요, 주제어와 올해 공연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윤정혜(이하 ‘윤’): 2012년 북촌뮤직페스티벌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전통음악 씬을 지켜봐 왔는데, 올해는 그 시류에 같이 흘러가기보다 멈춰 서서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보고자 했어요. 더 본질에 가까운 음악, 본질에 가까운 국악을 보여주며 아티스트와 우리 악기에 오롯이 집중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김수연(이하 ‘김’): 우리나라 전통악기는 서양 악기에 비해 그 원형과 재료의 본질이 살아있어요. 그걸 관객에게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자연 음향으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이 한 아티스트를 깊게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중간에 토크쇼처럼 대화하는 시간도 넣었죠.
어떤 아티스트가 무대에 오르는지도 궁금합니다.
김: 전통음악 씬에서 신진 예술가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중간 연령대가 연주할 만한 자리가 많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수림뉴에이브는 원래 중견 예술가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특히 더 국악의 ‘허리’를 맡고 있는 아티스트 중 관객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원석 같은 분들을 선정했습니다.
윤: 스무 명 모두 다른 배경을 갖고 있어 공통점을 꼽기는 어렵지만, 수연 PD님 말대로 모두 신진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색깔을 어느 정도 구축한 분들이에요. 그저 독특한 음악을 하는 분보다는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아티스트에 주목했어요. 당신에게 국악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스스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분들이죠.
이번 독파는 아티스트들에게도 색다른 무대였을 듯해요.
김: 맞아요. 기존에 팀으로 활동하시거나 세션과 함께하는 분들께도 이번에는 악기 하나만 들고 와 달라고 요청드렸거든요. 부담스러워 하시면서도 재미있는 시도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어요. 예술가로서 나만의 작은 미션을 받은 느낌이랄까요. 예를 들어 상반기 해금 연주자로 무대에 오른 김주리 선생님은 전자음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데, 이번에는 색다르게 해금만 가지고 무대에 오르셨죠.
기존에 독주를 자주 하던 분에게도 새로운 시도였어요. 가야금을 연주하시는 박순아 선생님은 25현 가야금을 너무 잘 연주하셔서 어떤 공연이든 25현 가야금 연주를 요청받으세요. 하지만 정작 그분은 늘 가야금 본래의 12현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크셨다고 해요. 그러던 차에 이번 독파에서는 12현 가야금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남겨주셨죠.
기획자로서 실제로 무대를 보신 소감은 어떠셨나요?
김: 아티스트에게 자신의 뿌리가 되는 전통 음악과 현재의 자기 자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색깔이 들어가는 창작 음악을 같이 보여달라고 요청드렸거든요. 그렇게 구성하니 전통음악가로서 아티스트의 '흐름'이 공연마다 잘 묻어났던 것 같아요. 덕분에 관객도 그 아티스트를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었고요. 저도 기획자 이전에 전통음악의 오랜 관객으로서 그런 공연을 볼 수 있어 즐거웠어요.
윤: 오랫동안 자기 길을 걸어온 아티스트들이 올리는 공연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인생 발자취인 것 같아요. 음악 안에 생각과 감정,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다 녹아 있더라고요. 저희가 기획한 바를 파악하고 무대 위에서 잘 보여주시는 아티스트들을 만났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가는 대화 속에서 완성되는 공연
상반기, 김준영 연주자의 공연에서 '말 거는 사람'으로 참여한 김수연 PD @박주영, 수림문화재단
공연이 스무 번인 만큼 기획자 입장에서는 다른 때보다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 독파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는 점은 같지만 매번 새로운 공연을 만드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다 만들어 놓은 판에 아티스트를 데려오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가 뭘 원하는지 잘 들어보고 다른 사람들과 상의해서 공연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라 생각해서 지금 방식대로 하는 게 뿌듯하기도 해요.
윤: 공간만 같을 뿐 아티스트 성향도, 악기도 다 다르고 그때마다 필요한 것도 달라지니 품이 많이 듭니다. 물론 그만큼 재미있고,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어떤 점을 배우셨는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윤: 예전에는 무대에서 아티스트와 제가 별개의 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원래 기획자와 아티스트 사이에는 은근한 긴장감이 있거든요. 이번에 독파를 통해 예술가와 기획자가 위치와 입장은 달라도 이루려는 목표, 하려는 말은 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기획이라는 행위로 표현을 하는 거고, 저분은 악기를 통해서 표현하는 거죠.
또, 아티스트가 스무 명이나 되다 보니 그중에는 기존에 제가 아예 몰랐던 분도 계셨어요. 꽤 오래 공연을 만들어 왔는데도 또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아까 수연 PD님이 언급하셨듯 ‘말 거는 사람’이 있어서 토크쇼 형태로 진행되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김: 한 악기만 1시간 동안 연주하는 무대가 관객에게도 아티스트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곡과 곡 사이에 아티스트와 '말 거는 사람'의 대화를 넣었죠. 예술가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무언가를 질문하는 사람이니 ‘질문하는 사람’으로 할까 하다가 그건 또 너무 철학적인 것 같아서 말 거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말 거는 사람은 대부분 저희 재단 직원과 추천위원들이 돌아가며 맡았어요. 그중에는 국악을 많이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관객들에게는 더 와닿을 수도 있고요. 또 무대에 보이는 건 아티스트뿐이지만 그 바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기획자로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전통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독파 공연을 어떻게 감상하는 게 좋을까요? 기획자로서 팁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김: 가볍게, 악기를 구경한다는 느낌으로 오셔도 돼요. 이름만 들어 봤지 실제 눈앞에서 그 악기를 본 적 없는 사람도 많아요. 거문고 공연이지만 거문고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분도 있을 거예요. 오셔서 어떤 줄에서 어떤 소리가 나고, 연주하는 방식은 어떠한지 호기심을 가지고 약간 관찰하듯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윤: 수연 PD님 말에 저도 공감하고요, 국악이라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저 악기에서는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저 아티스트는 저런 음악을 하는구나 알아가시면 좋겠어요. 상반기에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가 있는 4인 가족이 매주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거기 부모님도 아이한테 듣고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안 듣고 앉아만 있어도 된다, 그냥 즐기라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의무감 없이 열린 마음으로 오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음악의 흐름과 함께하는 수림뉴웨이브
@박주영, 수림문화재단
두 분 모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전통공연 분야에 계셨는데, 두 분이 생각하는 전통음악은 무엇인인지 들어보고 싶어요.
윤: 엄밀하게 말해 전통음악이라는 말 자체가 애매한 지점이 있어요. 전통악기를 사용하고 도제식으로 배운다 뿐이지 결국에는 다들 동시대에 음악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음악을 하는데, 들여다보니 다루는 악기가 전통악기인 것이고, 추구하는 노래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가 전통적인 것이라는 의미죠.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전통음악’으로 규정짓는 걸 싫어하는 아티스트도 많아요. 하지만 전통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갔을 때 여러 지원을 받기가 쉽기에, 전통이라는 건 양날의 검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김: 저토 팀장님 말씀에 공감해요. 전통음악이라는 게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전통 기반의 음악을 계속 배워 온 사람이 어떤 음악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 몸에 쌓아 왔던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전통음악이 아닌 걸 만들어내려고 해도 전통음악의 색깔이 묻어나요.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림뉴웨이브는 2012년 제1회 북촌뮤직페스티벌에서부터 시작되었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것도 많을 듯해요. 그 흐름에 따라 수림뉴웨이브도 변해 왔을 거고요.
윤: 2012년에 북촌뮤직페스티벌을 만들 때 장재효 음악감독님과 이야기 나눴어요. 전통음악이 특별 취급받는 게 아니라 클래식이나 팝처럼 그냥 하나의 음악 카테고리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페스티벌 제목에도 전통이나 국악이라는 단어가 안 들어갔죠.
당시 국악은 한옥 같은 장소에서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해 축제도 야외에서 했는데, 국악 팀도 밴드 형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오히려 실내 공연장이 더 잘 맞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2017년부터는 실내 공연장으로 장소를 옮겼고, 그때부터 ‘수림뉴웨이브’가 되었죠. 그 이후로는 공연 못지않게 아티스트 브랜딩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음원도 내고 메이킹 필름도 만들며 아티스트가 주목받을 수 있는 무대를 꾸려 가고 있습니다.
김: 2010년대 초반 이지리스닝이 유행하면서 서양음계를 따라하거나 서양악기가 들어간 국악에 이목이 쏠리던 시기가 있었어요. 몇 년 후에는 얼터너티브 락 쪽으로 나아가기도 했고요. 지금은 국악계 전체에 다시 전통음악의 본질을 고민해보는 시기가 됐다고 저는 생각해요. 올해 수림뉴웨이브 주제인 ‘독파’와도 통하는 부분이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계속 지켜 가려는 수림뉴웨이브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윤: 전통음악계에서 원석 같은 사람을 발굴해 지원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틀은 꽤 확고해요. 또 재단의 설립자인 김희수 선생님이 늘 사람을 중시하셨던 만큼 저희도 시대에 맞게 변해 가면서도, 사람과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일에 계속 집중하고 싶어요.
김: 전통예술을 재료로 자기만의 색깔을 어느 정도 구축한 중견 예술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전통음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 이 콘셉트는 앞으로도 가져가려 해요. 저는 그 안에서 예술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기획자로서 역할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 전통음악계가 다른 장르와 콜라보레이션을 했을 때 MSG 정도에 머물지 않고 다른 장르와 동등하게 다뤄지는 걸 더 많이 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수연 PD님처럼 전통공연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획자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또, 시각예술이나 문학을 보면 작가 외에도 평론가, 큐레이터 등 그 산업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력이 존재해요. 전통음악은 아티스트도 아티스트지만,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일하는 기획자, 평론가가 부족해요. 여러 사람이 상생할 수 있는 전통음악 생태계가 커지기를 바라며, 저희는 재단 설립 취지에 맞는 공연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겠습니다.
김: 독파와 함께 수림문화재단도 주목해 주시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예술인을 지원하는 기관에 가까웠다면 올해부터는 예술가랑 관객을 잇는 역할을 더 활발하게 하려 하거든요. 수림뉴웨이브를 계기로 전통음악이 듣고 싶다면 언제든 와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독파 공연도 많이 찾아주시고 관심 가져 주세요!
[김소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