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해상도 프로젝트 - 캐드펠 수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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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추리소설이라 하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먼저 생각난다. 더불어 ‘밀실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존 딕슨 카, 제임스 엘로이를 비롯해 우리에게는 <화차>의 원작자로 더 많이 알려진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 등이 역사 추리소설의 대가로 꼽힌다. 움베르트 에코와 미야베 미유키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소설가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그 모든 자극과 놀라움을 발밑에 두고 안개를 걷는 수도사가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작가 엘리스 피터스가 육십 대 중반이었던 1977년에 시작한 시리즈로, 18년을 공들여 21권까지 출간 및 완결되었으며 BBC의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사 ‘북하우스’는 완결 30주년을 기념하여 이 대장정의 개정판을 출간했고 좋은 기회로 이를 읽게 되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캐드펠’은 12세기 영국의 수도사다. 약제학 전문가이지만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전직 군인이며, 그만큼 세속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은 이이기도 하다.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장미의 이름>이 다시금 생각나지만,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그의 엘리티즘과는 결이 다른 따스함이 돋보인다. 추리소설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그리고 독자들이 기대하는 지적 게임과 공포가 물안개처럼 깔려 있지만 그 속에는 인간적 삶에 대한 통찰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것이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저잣거리로, 안개 낀 다리 밑에서 허브밭과 약제실로 돌아다니는 캐드펠을 따라다니다 보면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는데, 책의 맨 앞면에는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 헤매는 독자들을 친절히 안내해준다는 점이 인상깊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이란 도발적인 문장으로 뭇 지인들의 수상한 눈초리를 받기 쉬웠던 1권은 곧 제목 따위는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하며 성녀의 유골과 영주의 죽음에 대해 몰입하게 되었다.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라는 제목의 2권에서는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도시에서 벌어지는 정치 싸움, 그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인간군상에 대해 오래간 생각하며 인간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 대해 감탄했다. 특히 아흔네 명의 포로가 있어야 하지만 아흔다섯 명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아채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의 전율은 아직 몸에 남아 있을 정도다.
<수도사의 두건>과 <성 베드로 축일>,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등 현재 출간된 시리즈는 전부 살인 사건을 다루며, 각 작품마다 한 쌍 이상의 연인이 등장하여 작가의 ‘사랑’에 대한 관심과 애정, 사유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세련되면서 담백한 문체, 빠르게 진행되는 ‘탐정’으로서의 면모 등 중세의 역사에 익숙치 않은 독자마저도 빨아들이는 추리소설의 면모를 유감없이 볼 수 있다.
더불어 국내 역사추리소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SF를 필두로 국내의 장르문학이 약진하고 있는 상황이며, 웹소설 등 순문학을 대체할 새로운 문학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역사추리소설이라 한다면 단번에 떠오르는 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쓰는 사람이 드물어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읽는 사람이 없어서다. 최근 조선 시대 배경의 역사추리소설을 발표한 캐나다계 한국인 허주은 작가, 그 자신이 캐드펠 시리즈의 팬이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연재하는 정세랑 작가 등 적지 않은 수의 작가가 역사 추리소설을 썼거나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독자의 수가 타 장르문학 혹은 추리문학의 애호가들보다 적다.
한반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민족적 구성이 섞이지 않은 상태로 오래간 지속된 그 특유함은 역사추리소설의 근간이 될 만 하다. 더불어 외세의 간섭, 다양한 이데올로기 등 한국의 복잡한 역사적 특징은 추리소설을 전개하기에 풍부한 소재가 되어 준다. 흥미로운 소재, 하고픈 이야기가 있을 때 작가는 글을 쓰지만 그것을 선택해주는 이가 없다면 한국 역사추리소설의 입지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통해 역사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다면, 부디 국내의 역사 추리소설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라 본다.
[김지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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