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땀방울이 빛을 낼 지금 이 순간을 빛내줄 음악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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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포츠 경기를 볼 때 빠질 수 없는 게 응원가라고 생각한다. 응원가는 듣는 이도, 보는 이도 그 순간에 진심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또 음악만큼 순간의 희열을 끌어올려주는 장치는 없다. 많은 스포츠 경기가 득점이나 등장 시 음악에 신경 쓰는 이유기도 하다.
벌써 9일 차에 접어든 파리 올림픽에서도 짙은 희열과 영광의 순간이 넘쳐흐르고 있는데, 그 순간을 증폭시켜 줄 노래가 있다면 어떨까. 그런 의미로 이번에 한국이 금메달을 석권한 총, 칼, 활, 세 종목과 잘 어울리는 노래를 꼽아보았다.
대한민국 선수들도, 국민들도 파이팅 해야지
세 종목을 앞두고 제일 먼저 소개할 곡은 Team Korea의 공식 응원가로 채택된 세븐틴 유닛,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 2023년 연초에 발매되어 아직까지도 많은 현대인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곡이다. 곡이 주는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현대인을 둘러싼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담백하게 던지는 ‘파이팅 해야지’라는 한 마디는 다른 거창한 응원의 말보다도 더 진심같이 들려온다. 가끔은 ‘넌 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라는 염세적인 한 마디가 더 위로가 되는 법이다.
특히 가수인 부석순의 특유의 재치와 넘치는 에너지는 노래와 환상적인 시너지를 자랑하며 매 무대를 화제로 만드는데, 위의 골든디스크 무대도 마찬가지였다. 스포츠라면 빠질 수 없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연상시키는 웅장한 편곡과 기합 빡 들어간 치어리딩이 정말 원 없이 ‘응원’하겠다는 일종의 광기를 보여주는 듯한데, 이 정도의 응원이라면 5km 마라톤도 10초 주파해 버릴 것만 같다.
‘우리의 하루는 숙제가 아니라 축제니까’. 원곡 피처링의 주인공인 이영지 대신 무대에 오른 같은 그룹 멤버 디노의 피처링도 독특하게 귀를 사로잡는다. 사실 이때 무대에 올라온 인격은 디노가 아니라 ‘피철인’이라는 그의 다른 페르소나긴 하지만, 설명하자면 길어지니 일단은 넘어가자. 마치 마을에 모르는 사람 하나 없는 유명 인사 아저씨일것만 같은 디노, 아니 피철인의 에티튜드는 인생 뭐 그리 긴장하며 살 것 있냐는 여유로움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의 ‘사랑의 눈빛’은 지치고 짜증만 가득했던 얼굴에 픽, 하고 입가에 작은 공기구멍을 뚫어준다.
과녁을 겨누셔야지, 제 마음을 겨누시면 어떡해요
총, 칼, 활 중에서도 ‘총’이 빛났던 경기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엑소의 ‘Love Shot’을 선정해 보았다. 올림픽인데 뜬금없이 무슨 사랑 노래, 싶을 수도 있지만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고요한 장내에서 울리는 총성과 단 0.1점으로 승부가 판가름 나는 긴장감 때문이다.
금메달을 석권한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냉정함과 평온함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점수는 보는 이들마저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특히 슛오프까지 가서 단 0.1점 차이로 금메달을 거머쥔 반효진 선수의 경기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Love Shot’의 브릿지에서 마지막 벌스로 넘어가기 직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찰나의 정적과도 같았다.
또 한국이 쏜 게 어디 과녁뿐인가. 일론 머스크까지 사로잡은 한국의 사격 선수 김예지를 생각하면 이 노래를 고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올림픽 무대는 아니었지만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국제사격연맹 월드컵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완벽한 사격폼을 보여준 김예지는 이미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꿰뚫어버렸다. 무심해서 더 우러나오는 멋, 더할 나위 없는 ‘Love Shot’이었다.
현실판 스물다섯 스물하나, 종주국을 무너트린 금빛 찌르기
두 번째, ‘칼’을 맡은 펜싱 종목에 선정한 곡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OST, 도겸의 ‘Go!’다. 드라마부터 이미 펜싱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곡의 경쾌하고 진취적인 빠른 멜로디가 더욱 마음을 벅차오르게 만든다. 펜싱 경기의 한 장면을 그려낸 가사도 빼놓을 수 없는 매칭 포인트다.
특히 도겸의 시원한 발성과 음색은 곡과 어울려 푸른 청춘의 한순간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드라마틱한 곡의 전개와 상황에도 찰떡이다. 이번 펜싱 단체 경기에서 도경동 선수가 만들어낸 모멘트가 이러했는데, 단 하나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고 연속 5득점을 만들어 낸 명장면은 모두를 소리 지르게 만들었다. ‘뜨거운 함성에 몸을 날려 더 빠르게 더 가볍게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도경동의 순간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펜싱 경기를 볼 때면 청춘이 아스라이 피어나는 느낌이다. 흘린 땀방울이 바닥에 닿는 순간과 칼끝이 상대에게 가닿는 그 찰나의 순간이 영원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터질듯한 밴드 사운드가 매력적인 ‘Go!’는 마지막 순간 승리를 거머쥐고 포효하는 선수들의 귀에 들려주고픈 노래다.
마지막까지 Perfect 10, 전설은 영원하다
마지막 ‘활’, 양궁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2017 주제곡인 ‘Legends Never Die’를 가져왔다.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왕좌를 넘겨준 적 없는 여자 양궁 단체전만 봐도 한국 양궁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또 그 와중에도 언제나 평온한 그들의 심박수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사실 그렇기에 매 순간이 부담이고 한 발 한 발이 가지는 무게가 다른 국가와는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쐐기처럼 날아가 박힌 화살은 언제나 한국 선수들의 목에 금메달을 가져다줬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이 순간이 언제 깨질지는 모르고, 또 상상하기도 싫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이 두렵지 않은 것은 한국 선수들이 그동안 보여준 믿음과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올림픽보다 까다롭다는 국가대표 선발전과 그 실낱같은 경쟁률을 뚫고 국제무대에 서서 활시위를 당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이제는 그저 부담 없이 선수들이 경기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값진 1점, 희망을 주는 차드 양궁선수의 시작
사실 올림픽에서는 단순히 성적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올림픽이 특별한 이유는 올림픽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 좋은 장비, 좋은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용기와 끝까지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 무엇보다 특별한 1점을 쏘아 올린 차드의 이스라엘 마다예 선수가 그 정신을 보여줬다.
차드는 아프리카의 최빈국이자 스폰서 없이 이번 올림픽에 3명의 선수를 보낸 작은 국가다. 이번 양궁에서는 차드의 마다예 선수가 한국의 김우진 선수와 맞붙은 경기에서 가슴 보호대도 없이 출전해 화제를 모았는데, 그의 서사를 알게 되자 한국 국민들은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독학으로 배운 양궁, 16년이라는 긴 시간에 거쳐 드디어 밟은 꿈의 무대는 얼마나 커 보였을까. 아무런 지원도 없이 그저 열정만으로 당긴 시위와 화살은 하나하나 쌓여 그를 올림픽이라는 무대로 이끌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차드 국민들에게 희망이다. 그의 경기를 보고 누군가는 또 다른 시작을 꿈꿀 수 있을 테고, 이는 또 다른 기적을 불러올 도화선이 될 테다. 그런 의미에서 차드의 마다예 선수에게 들려주고픈 노래는, 가호의 ‘시작’이다.
[김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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