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마 시즌이 있기에 더 청춘의 계절인 여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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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여름을 청춘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여름이 가장 청춘과 닮아 있는 계절이라고 하는 말에 동의한다. 여름은 일 년 중 가장 푸르르며 밝다. 여름은 찬란하다. 태양이 나와 있는 시간이 긴 만큼 거리의 사람들은 하루의 끝까지 꽉꽉 채워 각자의 행복을 포장한다. 태양이 강렬하게 본인의 존재감을 뽐낼수록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진다. 옷차림 덕분일까, 우리의 마음은 겨울보다 여름에 조금 더 가볍고 투명하다.
밝은 초록빛의 여름만을 보고, 여름이 청춘과 닮아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여름의 장마까지 껴있어야 "여름=청춘의 계절"이라는 수식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종이가 눅눅해지고, 공기가 눅눅해지는, 그래서 덩달아 마음마저 눅눅해지는 그런 짙은 시기를 여름은 품고 있다. 바로 장마 기간을 말이다. 비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여럿 보았지만, 장마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장마 기간엔 거짓말처럼 비가 내린다. 에어컨 없는 공간에서 장마를 맞이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데, 보송한 곳에 있으면 장맛비가 시원하다 못해 후련하기까지 하다.
청춘들이 지닌 불안감과 막막함 또한 거짓말처럼 다가왔다가, 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나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라앉는 시기 땐 생각이 정말 많아져 눅눅함이 의인화된 것처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시기를 잘 이겨내면 스스로가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해진다.
짙은 초록빛의 여름도 존재하기에 그리고 덧없이 투명하기에 여름을 청춘이라 일컫는 게 아닐까.
자신만의 아픔과 치열함을 드러내도 쑥스럽지 않은 시기라고들 하니깐.
나는 청춘의 투명함을 믿는다. 투명함은 곧 단단한 구슬이 될 거라는 걸 믿는다.
불안한 청춘들을 응원하며, 마음속 응어리들을 비가 시원하게 씻겨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가 오는 날에 꼭 듣는 노래 5곡을 추천한다.
01. Emotional Rain - 박준하
우리 모두는 평범한 일상 속 자기만의 고요한 절망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비를 맞으면 온몸이 젖듯이 'Emotional Rain'은 어떤 감정에 젖어 온전히 공감한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그 감정이 각자의 절망에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힘든 시간 속에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온전히 평온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 'Emotional Rain' 앨범 소개 중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연희동에 위치한 '동경 책방'에서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평소에도 잔잔한 노래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더 통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곡을 이어 나가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노래 가사처럼 '노래는 나를 완전히 위로'한다.
앨범 소개 속 바람대로 이 노래를 들으면 온전히 평온하고 행복해진다.
02. 여름비 - 샘김
'여름비' 곡 제목처럼 정말 여름에 비 올 때 듣기 좋은 노래다.
샘김 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비가 갑자기 아주 천천히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감싼 공기들이 보송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여름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는 사람들도 이 노래를 들으면, 내년 여름을 기다리게 될 수도 있다. 내년 여름엔 꼭 예쁜 추억을 만들겠노라 다짐하면서.
03. Sokkenai - Radwimps
비와 눈의 운명이 날씨 온도에 달린 게 참 신기하다.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내겐 참 신비한 일처럼 느껴진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어느 날, 한강진역 '블루 도어 북스' 책방 카페에서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생각을 정리할 때마다 이 노래를 재생한다. 비가 오는 날엔 무조건. 비가 오는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일 때마다 Sokkenai를 들으면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04. 춤을 춰요 - 라쿠나
춤을 춰요의 부제는 Dancing in the rain이다. 몰아치는 사운드 때문에 정말인지 엄청난 폭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나는 비를 맞는 것을 싫어했다. 비를 맞으면 시원함보다 찝찝해질 것을 먼저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럽에서 1년 간 생활 한 후엔 생각이 바뀌었다.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라는 호우주의보 문자를 받았음에도, 마치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나와 친구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하늘이 번쩍번쩍하는 것에 몇 번 놀라고 나니,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하늘은 깜깜해졌고, 그렇게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기숙사로 향했다. 모두 흔쾌히 비를 맞았다. 나는 잔디 위를 신나게 뛰어갔다. 그리고 뒤따라 달려오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다. 모두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 물론 유럽의 여름은 우리나라의 습함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송하다. 그렇기에 찝찝함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기후적 특성을 배제하고 생각해 봐도, 종종 정신없이 비를 맞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를 맞으면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왜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해가 됐다. 내 마음속 무언가가 씻겨나가는 것처럼 정말 후련하고 행복했다.
05. 데려가 줘 - 하현상
하현상 님을 좋아하는 내게 비 오는 날의 근본인 노래, 데려가 줘.
다시 오는 이 빗소리에
창문을 열어 생각에 잠겨
그리워지는 옛 모습이
서러워서 난 노래를 부르네
이대로 밤이 가는 건
아쉬워서 또 붙잡고 있네
다신 오지 않는단 걸
아는 것조차 내겐 슬픔이야
다시 날 데려가 줘
헤매는 맘이 제 자릴 잡게
다시 날 데려가 줘
이 빗소리에 숨어버리게
호우로 인한 피해가 들릴 때면, 매번 마음이 아프다.
아무쪼록 모두들 안전하고 건강하고 무탈하게 장마 시즌을 보내시길 바라며 추천 글을 마칩니다.
[최서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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