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구 반대편에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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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익숙함 속에서 살아간다. 어쩌면 가장 쉽고 편안한 것들을 뒤로하고 낯선 도전에 몸을 던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번 7월, 반복되는 익숙한 일상을 뒤로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쉽고 즐거운 여행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여행의 설렘과 기대보다는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앞섰다. 갑자기 결정된 여행에 삐걱거리는 계획과 타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밀린 일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 여러 감정 앞에서 순탄치 못한 여행이 그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12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이탈리아는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친절한 사람들, 수많은 관광객, 그리고 아름다운 도시 전경에 걱정이 무색할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조금 다른 문화 속에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휴대전화기가 꺼지면 지나가는 이들에게 길을 물었고, 메뉴 실수를 하면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정말 별다른 것은 없었다. 어쩌면 조금 웃긴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구 반대편에도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가족 여행에 따라온 사춘기 소녀도, 함께 쇼핑을 나온 짝도, 인종과 배경만 바뀌었을 뿐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유명한 관광지가 한국과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시간은 흐르고 여행은 계속됐다. 계획을 세우지 못한 날에는 즉흥적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고, 새벽에는 잠을 줄여 과제를 제출했다.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말처럼, 여행은 계속됐고, 그 과정에서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공모전, 아르바이트, 인턴… 나를 바꿀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이곳에 오는 것이 맞는지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
새로운 경험에는 항상 배움이 따라온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나를 배웠다.
나는 낯선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마주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타지에서 예상치 못한 것들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해결 방안은 어떻게든 찾아졌다. 스스로 만들어 내는 돌파구와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황. 여행에서의 도전들은 나에게 이상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낯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피해왔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레 겁을 먹고 하지 못한 경험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이 끝나가는 지금, 나 역시도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이질적이기만 했던 도시가 어느덧 편안하고 익숙한 풍경이 됐다. 동시에 이곳에서의 도전이자 시도가 좋아졌다. 이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가보지 않았던 길을 택하며 나와, 그리고 낯선 것들과 친해지고 있다.
낯섦에 부딪히면 그것은 곧 익숙함이 된다.
다를 것 같기만 하던 이곳의 사람들도 사실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박아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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