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그래서 나이를 어떻게 먹기로 했는가 하면은,

말하는 대로 될지어다!
글 입력 2024.06.1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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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간다. 이 문장을 쓰는 3초의 시간 동안 나는 3초만큼 나이가 들었다. 올해 1월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기만 한다니. 그 전의 모든 기억은 다 과거가 될 뿐이고, 다시 더 어렸던 시절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으며, 계속 나이를 먹기만 한다니.’

 

소름이 돋았다. 초등학생 시절, 영어 학원에 붙어있던 하버드 명언 모음 중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라는 문장이 인제야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 거다. (하버드와 저 명언이 어떻게 상관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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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을까? 처음엔 중년 혹은 할머니가 된 나를 떠올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내가 어떻게 나이가 들어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나이가 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스타일이 좋고, 꽤 멋있고, 집에 그동안의 삶 속 흔적들을 가득 모아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것밖엔 떠오르지 않는데, 그건 내가 바라는 1~2년 후 나의 모습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별 소용 없는 생각이다.

 

5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나은 무언가가 된다고 생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의 장점을 흡수하고, 할 줄 아는 것이 늘고, 아는 것도 늘면, 자연스럽게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누군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알게 된 것은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항상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고, 생각과 몸을 유연하게 유지하려 노력하고, 하루하루 정신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더 나은 나'는커녕 현상 유지조차도 힘들다는 점이다.

 

중년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므로, 가까운 미래, 예컨대 내일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일 나는 오늘보다 어떻게 나이를 먹고 싶은가?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쉬워진다.

 

첫 번째로,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요즘 모든 일에 과하게 심각해지는 나와 마주한다. 이건 나의 아주 오랜 버릇이다. 작년쯤에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더니, 몹쓸 버릇은 왜 회복이 빠른지 모르겠다. 좋은 습관은 쉽게도 증발하면서.

 

나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 당장의 몇 주, 내게 주어지는 과제들을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재고 따지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가 없다. 그러면 남에게도 관대할 수 없는 각박한 스크루지 영감이 되고 만다. 까먹을 것은 잘 까먹고, 즐거운 일엔 크게 즐거워하고, 사과할 일엔 쉽게 사과하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땐 수시로 마음을 표현하고, 또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잠드는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을 잘 되찾아 간직하고 싶다.

 

두 번째로는, 나에게 더 솔직하고 믿음직스러워지고 싶다.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종종 내 몸집을 부풀려 보이려고 하는 내 자신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나를 마주할 땐 얼굴에 열이 오를 정도로 부끄럽다. 예를 들자면, 나는 곧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나는데 이 사실을 안 대부분은 당연히 내가 파리로 떠나는 줄 안다. 그런데, 내가 가는 지역은 사실 파리와 기차로 약 4시간은 걸리는 프랑스의 시골 동네다. 이것 역시 내 앞에 펼쳐진 아주 멋있는 일임에도,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지역과 파리가 (꽤) 가깝다고 어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주변엔 내가 뭐라도 되지 않아도 내 길 자체를 축복하고 응원해 줄 사람들이 참 많은데도, 난 자꾸 내가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원하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부끄럽다. 병아리 몸집을 한 것이 닭 흉내를 내며 꼬꼬댁 운다고 닭처럼 멋있어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싶어서다.

 

세 번째로는, 꾸준함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도 급하게 준비할 수 있는 오카리나로 수행평가를 봤다.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들을 시도 해보지 않은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다양한 악기를 접할 일이 많았던 축에 속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무언가를 못하는 그 단계를 견디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쉽게 잘하지 못하면 흥미를 잃어버렸고 결국 잘 다루게 된 악기가 하나도 없다.

 

당장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이 나에겐 가장 어렵다. 삶에 있어서 운동이든, 공부든, 악기를 다루는 것이든 처음엔 모두 같은 단계를 밟는다. 이렇게 해서 언제 느려나 싶은 지루한 그 단계 말이다. 그 단계가 없이는 어느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일련의 과정을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과정 자체를 목표로 삼아 그 과정 중에 즐거움을 느끼는 경험주의자가 되면 꾸준함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완성된 걸작품인 동시에 진행 중인 과정이라고 했다. 요즘은 나이가 이만큼 들어있는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든다. 고등학생 때 상상했던 20대의 모습이 나의 지금과 닮아있어서다. 말하고 쓰고 읽고 보며 마음에 새긴 모든 것들이 뭉쳐서 지금의 내가 되었고, 미래의 나 역시 지금의 내가 내뱉는 것들이 뭉친 것이 되어있을 것이다. 오늘 쓴 이 모든 것들도 언젠가 내 뼈에 새겨져서 꽃을 피워내 있었으면!

 

 

[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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