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국 영화를 향한 애정, '거미집' [영화]

샅샅이 해부
글 입력 2024.06.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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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흥행은 처참했지만, 분명 김지운 감독이 ‘밀정’ 이후로 또다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냈다. 이번 테마는 영화 제작이다. 이러한 주제를 가진 여타 영화들은 영화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반면, ‘거미집’은 조금 다르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작년 개봉작, ‘바빌론’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영화를 보며 웃지만, 거미집에서는 송강호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마무리한다. 열정 넘치는 송강호의 영화 제작기는 어쩌다 이러한 엔딩을 맞이하게 됐을까.

 

 

 

1. 색깔로 말하는 진심


 

영화 내내 빨강과 파랑이라는 두 가지 색이 비춰진다. 장소, 옷, 조명 등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이 색깔을 계속해서 비추겠다는 의지가 보일 정도다. 송강호가 주로 머무는 장소, 오정세가 정수정을 설득하는 곳, 전여빈이 크리스탈 머리채를 잡은 곳, 송강호의 안경(조감독 시절엔 없고 현재는 있음) 등등이 그러하다.

 

영화에서 빨간색은 정우성의 ‘불덩어리 같은 진심’이라는 말처럼 불덩어리 같은 진심 어린 마음을 말한다. 오정세는 정수정의 임신에 진심이고 전여빈은 명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진심이며, 송강호의 눈은 영화를 바라보는 진심을 투영하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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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파랑색은 진심이 아닌 것들을 말한다. 오정세가 사복 차림으로 처음 등장할 때, 파랑색인 그의 양말을 너무나 명백히 보여준다. 이외에도 영화 제작을 반대하는 사무실 외벽, 영화를 찍기 싫어하는 정수정의 영화 초기 복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송강호의 옷은 두 색깔이 전부 섞였다. 파랑색 셔츠에 빨간색 블레이저를 걸쳤다. 영화를 찍고자 하는 마음(눈)은 그의 안경처럼 빨갛다. 심지어 그의 이름도 김‘열’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감독으로서의 고뇌가 오간다. 이는 역시 그가 대본을 훔치면서까지 영화를 만드려는 자신에 대해 자기연민과 자기혐오를 동시에 갖고 있어서이다.

 

이처럼 영화 속의 영화인 ‘거미집’은 서로 다른 진심들이 섞여서 만들어지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도 점점 우스꽝스러워진다. 이것이 송강호는 자기가 찍은 영화임에도 마지막에 넋 나간 표정을 내비치는 이유다. 선민의식을 가진 그에게 영화 초반, 국밥집에서 엑스트라의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발언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순간이다.

 

 

 

2. 거미집은 왜 거미집?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 거미는 자신의 집을 만들어 곤충들이 그것에 붙으면 피를 빨아먹는 생물이다. 영화의 영화인 거미집에서도 임수정과 정수정은 오정세의 집안에 이용당하고 버림 받는다. 그래서 정수정은 오정세의 집안 같은 거미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송강호는 자신의 영화에 왜 이런 설정을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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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에서 임수정이 오정세 집안의 사람인지 아닌지로 생뚱맞게 싸우는 장면이 있다. 이는 조감독 시절의 송강호가 훔쳤던 대본, 즉, 자신의 데뷔작을 비유한 셈이다. 송강호는 자신이 전부 쓴 시나리오를 정우성이 영화로 만들었고 그 결과, 정우성만 명예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송강호의 시선에서는 이러한 정우성의 행동이 오정세의 집안과 마찬가지로 거미 같은 습성으로 보였던 것이다. 즉, 오정세 집안=거미=정우성이고 임수정과 정수정은 송강호 자신을 뜻한다.

 

또한, 임수정과 정수정은 거미에게 모조리 죽임당하는 결말을 맞이한다. 추측컨대, 아마 송강호는 정우성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었을 테다. 게다가 불에 타는 장면을 똑같이 찍어낸 것으로 봐서, 자신은 스승의 능력을 아직 뛰어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송강호는 영화를 찍는 동안 이러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한다. 애초에 이 시나리오는 그저 꿈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니까. 그래서 송강호도 영화를 다 찍고 나서야 이 사실을 완전히 깨닫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표정은 그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3. 영화는, 인생은 얼마나 어려운가


 

‘바빌론’이나 ‘파벨만스’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겉면에 드러나있는 작품은 아니다. 찬사의 대상이라면 영화라기보다는 그 시절 정부의 눈을 피하면서 영화를 찍어낸 당시 사람들에 더 가깝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영화 제작이란 실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담고자 한다. 송강호만 해도 반복되는 선민의식과 자기혐오로 인하여 스스로 무너졌고 바깥에서도 배우들과 관계자들의 비협조적 태도와 정부의 검열까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히나 독특한 점은 앞서 말한 엔딩 장면이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러이러한 고생을 했지만, 결국 만들어냈다’라는 결말을 내놓겠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웃음이라고는 중간중간, 유머 포인트만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감독은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점을 웃음과 함께 알리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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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편에 서기도 한다. 이 영화가 평단에 대한 풍자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엔딩크레딧처럼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의 끝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송강호가 만든 엉터리 영화 ‘거미집’이다. 그러니까 평단과 대중들은 잘 만든 영화라고 ‘거미집’을 치켜세우겠지만, 결국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이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그들은 엉터리 영화인 거미집을 보고 칭찬하는 게 돼버리는 셈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처럼 이 글도 영화 속 여러 상징들을 이야기하더라도, 결국 나 또한 엉터리 영화인 거미집을 보고 칭찬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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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숨긴다. 오정세는 바람을, 정수정은 아기의 아빠를, 송강호는 과거를, 전여빈은 촬영을, 임수정은 불편함을.


그러나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진실있게 행했고, 결국 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숨기려는 세상에 ‘김열’이라는 이름 하에 영화를 내놓는다. 그 영화가 졸작일 지 명작일 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은 결국 관객들을 웃음 짓게 한다.


한 치 앞의 일조차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삶에서 한 편의 영화만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이야기. 영화 거미집이다.

 

 

[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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