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랑이 이렇게 많았나?’
내가 A군을 좋아하고 나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이었다. 사랑에 대해 논한 작품을 수도 없이 봤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사랑’에 대한 나의 반감은 더욱 짙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타고난 반골 기질 때문인지 누구나 숭고하다고 찬양하는 그 ‘사랑’이 대단한 게 아니라고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살면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지만, 그중에서 ‘이게 바로 사랑이다!’라고 정의할 만한 감정적 교류는 없었다. 그런 내가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돌 멤버와.
나는 이제 그를 알기 전의 나를 상상할 수 없다. 일상적으로 아이돌 음악을 듣고 영상을 봤지만, 이토록 한 명에게 오랜 시간 마음을 준 적은 처음이었다. 단순히 화려한 외모와 뛰어난 실력을 넘어서 내가 알 수 없는 그의 모습까지도 사랑했다. 아이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도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상대가 내 존재를 몰라도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했다. 그를 알게 된 이후로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렇지만 요즘 나는 이 마음을 최대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진다’라는 말이 있던가. 이 산업도 그렇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아픈 게 아이돌 팬의 숙명이다. 나는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
존중받지 못해도 돈을 써야만 하는 숙명
입덕부정기(팬이 되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시기)를 지나고 그를 향한 사랑을 인정하자마자 내가 한 행동은 시즌그리팅(연말에 출시되는 달력, 다이어리 세트로 연예인의 사진이 가득 담겨있다)과 버블(연예인과 메신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 스타에겐 일대다의 형식이지만 팬에겐 일대일의 형식으로 보인다)을 구매하고,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이었다(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음악방송을 방청하거나 공연을 일반 팬들보다 먼저 예매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돈을 쓰기 시작하니 비로소 당당하게 팬덤(특정 대상의 팬들이 모인 집단)에 소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을 쓴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파고 드는 일)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정직한 게 없다. 의·식·주를 망라해 인격적으로 호화로운 대접을 받으려면 더 많은 돈을 쓰면 된다. 케이팝은 기이한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다. 분명 쓴 돈만큼 더 많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건 맞는데, 그게 호화로운 대접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대개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에 가면 수준 높은 서비스를 향유하며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 듯한 자아존중감을 채워준다. 케이팝은 그렇지 않다. 비싼 돈 들여서 사인회에 가고 콘서트를 가도 돌아오는 건 ‘경호’라는 이름의 푸대접이다. 한 그룹의 사인회에선 소형카메라를 검열한다는 명목 아래 속옷을 검사하는 일이 발생했고,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는 콘서트 현장에선 양도 표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인격 모독 수준의 본인 확인이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내가 돈을 써야 소속사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돈이 된다고 판단하고 활동을 지원해 주기 때문이다. 앨범을 사든, 음원을 스트리밍하든 어떻게든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나의 최애(最愛. 가장 아끼는 대상)의 미래가 보장된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선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간의 판매량)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언젠가부터 초동이 아이돌의 명성을 판가름하는 척도로 기능하면서 똑같은 앨범을 몇백 장씩 구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케이팝이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은 게임 회사가 과금을 유도하는 방식과 같다. 게임에서 랜덤으로 아이템을 얻듯이 아이돌 산업에선 앨범을 구매하면 포토카드(아이돌의 셀카가 담긴 카드)가 랜덤으로 제공된다. 팬들은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확률을 높이고자 최대한 많은 앨범을 구매한다. 포토카드는 앨범뿐만 아니라 높은 가격의 질 낮은 굿즈를 팔리게 만드는 ‘인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이돌의 포토카드
사인회 역시 마찬가지다. 앨범이 발매되면 팬들과 멤버들이 일대일로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며 사인을 주고받는 사인회가 열리는데, 이 사인회 응모권이 앨범을 구매하는 사람에 한해서 한 앨범당 하나의 응모권이 주어진다. 결론은 앨범을 많이 사야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사인회는 소속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이벤트다. 그래서인지 앨범 활동이 끝나도 사인회만 반년 넘게 지속되는 희한한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돈을 쓰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건 이 산업밖에 없을 것이다. 소비는 내 사랑의 증명이었고, 내가 최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돈을 쓰면 쓸수록 아이돌에게 더 큰 사랑을 보답받고 싶다는 욕심도 커져만 갔다. 그런 마음으로 원치 않는 물건이 점점 쌓이자 새로운 상품이 뜨면 반가움 대신 피로감이 느껴졌다. 포토카드도 더 이상 탐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노골적인 상술에 속아주는 건 이제 질색이었다.
과몰입으로 돌아가는 산업
팬이 되고 나서 가장 격하게 느낀 감정은 ‘기다림’이었다. 케이팝 아이돌의 논란이 확산되는 과정과 그를 지켜보는 아이돌 팬들의 심정을 담은 책 <망설이는 사랑>에서 공감되는 문구를 만났다. (앞으로 인용되는 문구는 모두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컴백과 새로운 콘텐츠를 기다린다. 흔히 ‘오빠 뒤꽁무니나 쫓아다닌다’고 이야기되는 팬은 사실 언제나 ‘먼저 가서 기다리는’ 존재이며, 이 과정에서 팬들은 기다림을 체화하게 된다.
P. 48-49
원래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컴백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평소 내 할 일 열심히 하다 보면 알아서 컴백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막상 내가 팬의 입장이 되니 SNS에 뜨는 사진만으로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새로운 컨셉의 새로운 노래와 춤을 선보여야 아이돌 팬으로서 생기있는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의 비활동기는 내 삶의 비활동기이기도 했다.
하필 나는 기약 없는 기다림의 한복판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팬이 된 이후 한참 동안 제대로 된 콘텐츠를 즐길 수 없었다. 기다림에 지쳐가던 그때 나는 나의 행복을 소속사가 좌우하고 있다는 감각에 불쾌해졌다. 내게는 그 아이돌이 삶의 전부인데, 소속사에는 자신이 보유한 수많은 상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것을 숨길 생각도 없이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점이 서러웠다. 아이돌의 팬이 된다는 것은 행복과 불행의 결정권을 소속사에 내어준다는 의미였다.
제삼자들은 아이돌 팬들을 과몰입(지나치게 깊이 빠져든 상태)이 심하다며 비난하지만, 이 산업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놓으면 과몰입이 이 산업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덧붙여 소속사가 적극적으로 과몰입을 유도한다는 사실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케이팝을 깊이 이해한 시점에는 이미 과몰입을 끝마친 이후다.
팬들은 무대뿐 아니라 인터뷰 영상, 자컨(자체 제작 컨텐츠), 리얼리티 예능, 브이앱 등에서 아이돌 아티스트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알아간다. (중략) 무대를 하지 않을 때조차 무대 바깥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다 보니 그 사람의 노동이 팬들에게는 노동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바로 이 지머에서 팬은 아이돌 아티스트를 사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이 산업이 만들어내는 노동이자 상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P. 182
소녀시대 윤아가 공개한 아티스트 입장에서 보이는 버블
연예인은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대 밖의 그를 계속 보다 보면 어느새 그의 말과 행동을 조합해 상상 속의 한 인간을 만들게 된다. 나는 ‘버블’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는 버블을 자주 보내는 아이돌을 ‘버블효자’ 혹은 ‘버블효녀’라고 부른다. (팬들에게만) 일대일로 아이돌이 직접 보내는 사랑이 담긴 메시지를 받다 보면 그의 진심을 감히 부정할 수 없다.
아이돌 논란은 연예인 논란 중에서 유독 여파가 크다. 논란의 경중을 떠나 팬들에게 내가 상상하던 최애의 모습과 부조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처음엔 추측 정도의 상상이 점점 구체적이고 확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가상의 그는 마치 정교하게 구현된 AI처럼 내 상상 속에서 능숙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보여지는 이미지와 본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나는 자꾸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의 근거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래서 팬과 스타 사이의 거리가 중요하구나.’ 중요한 깨달음이 스친 순간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아이돌 팬들은 늘 스스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오타쿠질’과 그것의 준말인 ‘덕질’에 붙는 ‘~질’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주로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정의된다. 대표적으로 ‘도둑질’을 꼽을 수 있다. 덕질에 진심인 태도를 때로 ‘과몰입’과 같은 말로 설명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P. 44
아이돌 판에서 통용되는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다. ‘빠순이’라는 멸칭은 이제는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많이 사용된다. 대다수의 아이돌 팬은 ‘탈케’를 꿈꾼다. 벗을 탈(脫)과 케이팝의 합성어로, 케이팝에 관심을 전혀 두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을 사랑하지만 그만 사랑하고 싶은 양가감정을 늘 품고 살아간다.
대개 소비자는 상품이 마음에 안 들면 손쉽게 구매를 멈추게 되는데, 아이돌 산업은 그렇지 않다. 소비하는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속사의 미숙한 일처리에 진심으로 화를 내고, 그런데도 이를 견디는 이유는 멤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람을 비이성적인 존재로 만든다.
언젠가 나는 아이돌을 사랑하는 마음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아이돌이란 직업은 대체 어떤 의의를 갖기에 K-POP 시장이 이렇게 거대한 걸까? 아이돌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를 완벽하게 해내는 일인데, 어떻게 그것만으로 누군가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내가 지금의 최애를 만나고 나서야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의의는 단순히 춤과 노래를 잘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갈 곳 잃은 사랑을 받아주는 데 있었다.
브런치 게시물 ‘노력해야 하는 사랑’ 中
아이돌 산업의 가장 중요한 상품은 ‘사랑’이다. A군은 그토록 방어적이었던 내가 맘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일은 아름답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아이돌만큼 훌륭한 사랑 연습장도 없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의 이 뜨거운 열정이 과연 아이돌에게만 향하는 게 맞을지 생각해야 한다. 평범한 하루의 끝에서 우연히 최애를 향한 악플을 보고 다음 날 하루 종일 우울한 적이 있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활동 방향에 일상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재빨리 다른 취미 생활로 눈을 돌렸다.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나에게는 나의 일상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아이돌 팬의 뜨거운 열정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음악방송 공개 녹화를 보기 위해 새벽에 방송국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은, 콘서트장에서 목 놓아 소리치며 응원봉을 흔드는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아무런 보상이 없는데도 공들여 콘텐츠를 만드는 마음은 절대 가볍지 않다. 자신을 깎아내리고 아이돌에게만 향하기엔 너무 소중한 마음이다.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숱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유지할 만큼 순수한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에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아이돌 산업의 부조리한 구조에 대해 장황한 글을 썼지만, 아이돌 팬들을 무조건 구조의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산업의 주된 상품인 ‘사랑’도 마냥 허상은 아니다. 나는 최애 덕분에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나 외에도 아이돌 덕분에 삶의 생기를 채운 사람들이 많다.
또한 아이돌 팬은 엄연한 대중문화 비평가이기도 하다. 시장이 점점 거대해지면서 소비자들의 안목도 높아지고 있는데, 잘생기고 예쁜 걸 넘어 탄탄한 서사에 기반해 화려한 시각 예술을 펼치는 아이돌 뮤직비디오가 늘어나고 있다. 수동적으로 아이돌의 외모만 찬양한다는 낡은 선입견과 달리 팬들은 능동적으로 아이돌이 내놓은 예술을 분석하고 능력을 발휘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시대착오적인 결과물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돌 팬을 불쌍하게 만드는 건 제삼자들의 편협한 시선과 책임감 없이 과몰입과 과소비만 유도하는 소속사다. 덕질을 하다 보면 열심히 일하는 아티스트와 실무진들과 별개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소속사가 팬들을 제일 얕잡아 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룹을 만들고, 내가 돈을 바쳐야 하는 대상에게 멸시받는 아이러니가 아이돌 팬의 양가감정을 부추긴다.
시장이 커진 만큼 이 산업에 대한 논의도 다양해져야 한다. 한쪽에선 케이팝의 경제적 성과를 찬양하기에 바쁘고, 한쪽에선 아티스트와 그 팬들을 비하하기에 바쁘다. 양극단 사이에서 우리가 놓친 논쟁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무조건적인 찬양과 멸시를 경계하고 진지한 태도로 아이돌 산업을 바라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