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월이 길다는 느낌에 대한 가벼운 통찰

윤년
글 입력 2024.04.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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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길다.

 

이상하다. 2월은 매해 가장 짧은 달인데. 이상하게 2월이 너무 길어 1월에 멈춰 있던 달력을 넘기고 나서야 아차, 했다.

 

하루가 더 있었다. 윤년이구나. 4년마다 돌아오는 2월의 숨겨진 날이었다. 2월 29일을 검색해 보니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은 아니었다. 심지어 컴퓨터도 2월 29일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날 뉴질랜드 전역의 셀프 주유소를 운영하는 컴퓨터가 2월 29일을 인식하지 못해서 운영이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입력되지 않은 날이 오는 바람에 멈춰버린 컴퓨터라니, 아포칼립스의 서막 같은 사고에 웃고 말았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는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애초에 입력되지 않은 데이터를 컴퓨터가 학습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윤년이 있는 2월 통계에는 유난히 사상 최대, 최저에 대한 기록이 많다고 한다. 하루가 더 늘어서 사망자가 많고, 자식에게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을 선사할 순 없다는 부모들의 의지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하루 차이가 뭐 그렇게 큰 영향을 줄까 싶다가도 개인의 세계에선 하루 차이로 역사가 바뀔 수 있으니 그렇구나 했다. 나도 되돌리고 싶은 하루가 많으니 하루를 저평가하진 말기로 한다.

 

4년 만에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의 목록을 보다가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누군가의 얼굴도 떠올렸다. 메신저의 알림함에 G의 생일은 늘 2월 28일로 적혀 있었다. G는 생일 설정에 28일까지밖에 없어 늘 모든 축하를 하루 전에 받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2년 후에는 제때 축하해 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지만 올해는 제때 생일 축하를 받았길 빈다.

 

내 2월도 길었다. 1년 간 있을 소동이 2월에 모여 복작복작하게 일을 터뜨린 기분이 들었다. 2월은 약간 보너스 달 같은 기분으로 사는 건데 보너스를 누리기에는 너무 바빴다. 여러모로 낯선 겨울이었다. 해보지 않은 것들을 잔뜩 해보고 멀리 있을 것 같던 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돌이켜 보니 웃음이 나온다.

 

바다 건너에 있는 연인과 만난 이래로 가장 오래 만나지 못했다. 갑자기 바뀐 부서 탓에 대혼란의 적응기를 다시 버텨야 했다. 10년을 같이 살던 동거녀도 집을 나가버리는 바람에(결혼했다) 같이 담타를 누릴 수 있는 저녁의 루틴도 잃어버렸다.

 

시승 운전을 하다가 시원하게 길을 벗어나기도 했다. 갈대밭으로 차가 들어가는 동안 주마등... 같은 것도 본 것 같다. 졸업한 지 4년 만에 졸업 사진을 찍었다. 체지방도 늘리고 근육량도 늘리는 동안 좀 덜 아프게 됐다. 애인의 친구와 절친(맞겠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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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란 게 이렇게 어렵다. 작년에도 나를 잘 아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잔병치레가 훨씬 줄어든 걸 보면 소통의 방식이 잘못됐다 싶다. 작년에 선물 받은 아이비는 이름도 없고 소통도 없는데도 잘 자라고 있다. 부럽다. 나는 자주 자주 들여다 보지 않으면 금방 아픈 예민한 녀석인데 너는 씩씩하게 잘 자라서.

 

2월인데도 종종 따뜻했다. 이럴 때만 틈을 내서 지구의 건강을 걱정하는 내 양심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기회들이었다. 반짝 따뜻했던 겨울 덕분인지 봄이 변덕이 심하다. 글을 쓰고 있는 4월 말의 저녁은 아직도 기모 후드티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

 

'2월이 길다'를 네이버에 치니까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슬쩍 훑어만 봤는데도 5년 전 게시물까지 2월이 길다를 외치고 있다. 각자 긴 이유는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지쳐서 2월도 긴 게 아닐까 싶다. 방학이 즐거운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것은 아주 오래된 역사 같은데 몸은 여전히 방학을 기억하고 있다.

 

2월에는 일기를 단 두 개 적었다. 길었던 달 치고는 너무 짧은 기록이다. 요즘은 지나치게 행복하거나 지나치게 슬픈 일이 없으면 일기를 잘 적지 않는다. 나의 2월은 너무 바빠서 일기장을 펼칠 시간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기억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걸까.

 

2월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아주 맹숭맹숭하고 따뜻한 일상이 가득한 3, 4월을 지냈게 된다는 것을. 시끄러운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조용하고 따뜻한 일상적인 하루들의 모음이 왜 중요한 지 알게 된다. 나의 2월은 아주 시끄러웠고, 그래서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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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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