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귀로 켜는 머릿속 영사기 – 쇼팽으로 만나는 지브리 앙상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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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관객과의 손은 놓은 채 같은 보폭으로 시간을 건너는 유일한 예술이 아닌가 싶다. 관객은 음악을 감상하며 시간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떠올리는 감상과 장면은 제각기니 말이다.
공연 <쇼팽으로 만나는 지브리 앙상블>은 쇼팽의 곡에서 지브리 OST를 찾는 1부와 지브리 음악 속에서 숨겨진 쇼팽의 음악을 발견하는 2부로 나뉜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 쇼팽과 21세기 지브리 음악은 장조 변화와 연주 기법의 변주로 이어진다. 피아니스트 송영민, 바이올리니스트 임홍균·박진수, 비올리스트 이신규, 첼리스트 박건우는 두 시대를 초월한 음악적 접점을 찾아 연주로 둘을 연결한다.
1부는 쇼팽의 왈츠 7번 올림 다단조, 작품번호 64-2와 <마녀배달부 키키> 중 ‘바다가 보이는 마을’로 시작한다. 왈츠 14번 마단조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그날의 강’, 녹턴 13번 다단조, 작품번호 48-1 곡은 <원령공주> 중 ‘원령공주’로 이어진다. 마냥 서정적일 것만 같던 쇼팽의 곡들은 여러 이야기가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애니메이션으로 변모하여 상상을 자극한다.
2부는 지브리 음악 속 숨어있는 쇼팽 곡을 찾는다. <벼랑 위의 포뇨> 중 ‘벼랑 위의 포뇨’와 <이웃집 토토로> 중 ‘이웃집 토토로’는 쇼팽의 왈츠 1번 내림 마장조, 작품번호 18번인 ‘화려한 대왈츠’로 이어진다.
‘이별의 곡’으로도 불리는 쇼팽 에튀드 3번 마장조, 작품번호 10-3 곡은 <천공의 성 라퓨타> 중 ‘너를 태우고’와 짝지어진다. 마지막 곡인 폴로네이즈 내림 가장조, 작품번호 53번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중 ‘인생의 회전목마’와 연결된다.
관객이 청각적 요소만 감상할 수 있던 클래식 음악은 본 공연에서 흥미롭게도 시각적 요소를 지닌 애니메이션 OST와 맺어진다.
음악은 관객과 같은 시간을 차근차근 밟아 가면서도 그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청각 외의 감각적 요소를 열어두지만, 애니메이션 OST는 이미 완성된 애니메이션 장면이 관객의 상상 속에서 시각 요소로 펼쳐진다. 이는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 장면을 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상에 따라 바꿔나갈 수 있는 확장성을 지니기도 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어린이 관객들도 많았는데, 아이들의 사부작대는 소리는 애니메이션 OST와 함께 나오는 캐릭터들의 움직임 및 대화 소리와도 유사했다. 시대를 건너 다른 장르를 연결한 낭만적 멜로디- 라는 수식어도 좋지만, 소리에 몰두할 때 머릿속에서 켜지는 영사기에 집중하는 공연으로 즐겨도 좋을 듯하다.
[정은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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