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다는 것 - 뮤지컬 피에타

글 입력 2024.03.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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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카톨릭도 아닌데 왜 마리아 목걸이를 하고 다녀?”


노랗게, 금과 비슷하지도 않은 색만 입힌 신주 목걸이였다. 장식, 참(charm)이 주렁주렁 달린 장신구가 유행이었던 때 아무 생각 없이 걸고 다녔던. 상경한 지 2년이 채 안 되어 외양으로라도 세련됨을 두르려고 안달이 났던 촌뜨기는 “어……, 그냥.”이라는 답이 못내 부끄러워서, 뭐라고 답하면 좋았을지, 그럴듯한 답을 생각해 내려고 잠을 다 설쳤다.


마리아는 가장 흔한 도상 중 하나이며, 또한 상징이다. 동정녀의 몸으로 메시아를 잉태하여 인류의 구원을 탄생시킨 성모 마리아의 형상은 성경에 등장하는 바로 그 마리아 성인을 지시하는 동시에, 긴 세월 문화적인 맥락에 녹아들어 규범적 가치의 체현이 되었다. 순결, 헌신, 현모, 무원죄, 그리고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의미의 다발이 실재한다. 그런데 말이다, ‘처녀잉태’라니. 우리는 ‘처녀’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가치와 위계가 우습기까지 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마리아라는 아이콘을 패스트 패션이 게걸스럽게 전유하고, 마리아의 심볼에 역류하고 싶은 내가 그걸 심장 가까이에 걸고 있는 세상이 어지럽고 또 익살스럽지 않은가?


‘- 그러니까, 재밌지 않아?’

 

그렇게 답했으면 좋았을걸, 이불을 차며 생각했던 기억이 오래전이다. 

 

혹시 이런 말들이 신성 모독일까? 그렇다면 사과하고 얘기를 마저 하고 싶다. 악의는 진짜 없는데, 미안한 마음이다. 오히려 나는 종교적인 신념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바를 선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지도를 따라가고자 구도하는 삶은 어떻게 느껴질까? 지금으로썬 평생 직접 체감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돼서 더 궁금하고, 때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다만, 한없이 세속적인 마음에는 마리아를 떠올릴 때, 억울하지 않았을까, 하는 옹졸한 생각부터 스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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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피에타>는 이렇게나 부적절한 관객까지도 끌어당기는 포용력을 가진 넘버로 시작한다. 온전히 품속에서 자라나는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명랑하게 노래하면서도 육아의 고충을 호소하기도 하는 마리아는, 영락없이 평범한 어린 엄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기에게 하나님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를 때 그녀의 옷자락은 희게 나부끼며 순진한 낙관을 드러낸다.


이윽고 수난을 목도하고 겪어내는 몸이 붉게 물들고, 푸른 머플러를 두르고 슬퍼하며, 묵묵히 기도하여 순백의 한 줄기 믿음을 다시 붙잡고, ……


그렇게나 신실한 믿음을 봉헌한 그녀에게 어떤 수난이 닥쳤던가. 상체를 뒤덮은 검은 숄이 내게는 그녀에게 드리운 의심의 장막으로 읽혔다. 책형에 처한 아들의 이름을 찢어져라 부르는 자신의 목소리조차 귀에 닿기 전에 파묻히는, 혼란으로 귀가 멀 듯한 현생의 지옥에서 “오직 당신만이 침묵합니다.”라는 절규가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이 마련한 운명에 대한 처절한 원망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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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는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끌어안고 슬퍼했다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으로 보면, 그녀가 자식의 시신을 그러안은 채로 못 박히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예수는 살아 돌아왔지만, 마리아의 비탄은 영원히 십자가에 매달린 채일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조각상으로 남은 피에타라는 도상은 결국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숙명적 고통의 형상화이다.

 

도저히 의심하고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처절한 비탄의 순간, 피에타의 형상을 하고 마리아는 다시 신에게 기도한다. 거기에서 믿음이 도약하는 찰나, 진정한 신념의 시작을 본다.

 

우리는 모든 것이 경험상의 사실로 설명돼야 하며, 합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실은 가장 비합리적인 믿음의 추동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건 물질만능주의일 수도, 혹은 예수의 재림이나, 어떤 경우엔 연대와 화합의 가능성이기도 할 것이다.

 

목소리가 닿지 않아 애꿎을 존재로 보였던 마리아를 통해 신념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도한 것이 또한 공교롭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그녀의 형상에 새로운 의미를 아로새기고 나에게 마리아는 그런 존재다, 답하는 어느 날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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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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