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모두 북극을 꿈꾼다 - 도서 '북극을 꿈꾸다'

전설만큼이나 먼 땅, 영원히 살아 숨쉬는 땅
글 입력 2024.03.2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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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모두 북극에 대한 저마다의 꿈이 있다.

북쪽의 가장 끝, 감히 가늠할 수 없는 하얗고 광활한 대지. 아직도 북극의 많은 부분은 베일에 쌓여 있다.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탐사를 통해 매일같이 새로운 발견들이 이뤄지는 중인 이 곳은 일반인에겐 감히 접근조차 쉽지 않은 낯선 지역이다.

때문에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북극이란 때론 낭만적인 환상 속의 별세계 쯤으로 느껴진다. 내게 ‘북극에 가 보고 싶다’란 ‘달나라에 가 보고 싶다’랑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만큼 낯설고 아는 것이 없기에 그 새하얗고 광활한 공백을 내가 바라보고 싶은 낭만으로 한껏 채워 상상하곤 한다. 하늘을 가득 수놓는 오로라, 하얀 눈밭을 가로지르는 북극곰과 북극여우, 무엇 하나 걸리는 것 없이 탁 트여있을 눈이 부시게 새하얀 풍경을. 역시 가보지 않고는 감히 체감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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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 배리 로페즈의 대표작이자 전미도서상 수상작인 [북극을 꿈꾸다]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북극의 진면모를 생생하게 펼쳐내며 생태학의 고전이 되었다.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북극의 낮과 밤, 하늘을 덮는 오로라와 땅을 덮는 빛과 얼음, 수천 년간 이 대지와 호흡해온 생명들과 서구에서 온 낯선 이방인들의 이야기까지 충실하게 담아낸다.
 
 
이렇듯 다른 시각들 덕분에 이 북방 대지에서 인간의 미래는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누구나 자기 희망의 투사물로서의 꿈을 만나는 곳이 되었다. 북극의 새를 보러 가는 즐거운 계획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면 좋겠다는 지극히 사소한 소망이든, 북극에서 쥐어짜낸 과학 지식으로 공동체에 이바지하겠다는, 개인으로서는 사뭇 원대한 소망이든, 각각의 꿈에는 자기 삶이 아무 의미 없이 소모되지 않기를 바라는 개인의 희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큰 꿈, 인간의 꿈 이야기를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간직해왔다. 
 
- <북극을 꿈꾸다> 중
 

'오늘날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 불리는 배리 로페즈는 온 인생을 걸고 자연과 인간의 잃어버린 유대를 복원하기 위한 이야기를 쓴 자연 작가이자 수필가로,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극을 포함해, 초원, 사막, 섬 등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저자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거부하고, 북극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 이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미지의 땅은 지금껏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9장의 이야기들엔 그저 환상 속에서 뭉뚱그려 존재했던 북극이 아닌, 생명과 삶의 흐름으로 가득찬 진짜 ‘북극’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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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소, 북극곰, 일각고래, 대이동하는 철새들, 북극의 얼음과 땅, 이 새하얀 땅에 새겨졌던 역사와 기록들까지. 새하얗고 광할한 미지의 땅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는 낭만적인 꿈을 위해, 현실적인 삶과 이익을 위해,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위해, 제각기 다른 꿈들을 가지고 그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척박한 길을 – 얼음을 뚫고 나아갔던 망망해를 – 나섰던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일상적인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북극의 시간의 흐름이었다. 북극은 바다처럼 광활하고 사람이 거의 없어서, 북극 공간의 상당 부분을 동물들이 정의하게 된다. 작가는 북극에 머무르며 동물들의 시간과 거리 기준이 대체로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채게 된다. 동물마다 대략적인 크기와 움직이는 방식, 늘 대하는 장애물의 성격, 헤쳐가야 할 매질의 특성, 수명 등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철새의 이동과 같은 연 단위 순환보다 좀 작은 규모로는 사향소의 이동처럼 한 계절 동안 이뤄지는 이동이 있고, 매일 저녁 사냥을 위해 굴을 떠나는 일부 늑대 무리의 습성처럼 동물의 하루 리듬에 맞춰진 규칙적인 형태의 국지적 이동이 있었다. 북극의 가장자리에 사는 북극곰의 삶 또한 북극의 시간에 맞게 흘러간다는 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북극에서 인간이 정한 아침과 밤이란, 하루란 얼마나 덧없는 기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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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북극의 해석 불가능한 코드, 일각고래의 내용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가 처음으로 본 일각고래들은 여기서 한참 먼 베링 해협에 살았다. 놈들을 보던 날 나는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자연물도 내게 그처럼 갑자기, 그렇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물 우화집에서 튀어나온 듯한, 기린만큼이나 이상한 생물이었다.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의 말처럼, 눈앞에서 봐도 뭔가 가당치 않은 얘기 같았다. 
 
- <북극을 꿈꾸다> 중


북반구의 어떤 대형 포유동물도 일각 고래처럼 존재 자체를 의심받은 적은 없다. 우리는 토성의 고리보다 일각 고래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고 한다. 일각 고래의 모호함은 과학으로도 쉽사리 전복되지 않는데, 이들은 물 밑에 살고 1년 내내 북극 해빙들 가운데에서 살기 때문에 접근하고 현장조사를 벌이기조차 어렵다. 기후 변화나 집단 개체수 변동에 따른 이동과 짝짓기, 출산과 같은 일각고래의 정상적인 생애주기를 인류는 전혀 모른다. 

말 그대로, 상상 속의 존재에 근접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일각고래는 상상속의 동물 유니콘의 전설과도 관련이 있는데, 중세시대 유니콘의 뿔이라며 거금에 거래되던 상아는 작게 자른 일각고래의 엄니였다고 한다. 여러모로 신비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5장 '대이동, 숨결이 길이 될 때'에선 알래스카 북해안을 따라 날아가는 흰기러기들의 생태를 알 수 있었다. 흰기러기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들은 매년 지구 끝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은 호수를 찾아오는 놀라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광활하고 탁 트인 하늘 위로 날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어쩐지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함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봤다고 해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통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들이 넘쳐난다. 명백한 정보라 해도 우주 안에 찍힌 점 하나에 불과하고, 이 점에 선을 그려 방향성을 부여하고픈 욕망에서 여러 해석이 생겨난다. 
 
- <북극을 꿈꾸다> 중
 
 
이 책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뭉뚱그려 지나치게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무언가로 인식되었던 북극이 아닌, ‘진짜 북극’의 생태와 환경, 삶을 담은 책이다. 북극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이 아닌 실제 삶과 생명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북극곰과 일각고래, 흰기러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시간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저자의 통찰력과 관찰력 아래 섬세하게 그려지는 북극이 매우 흥미로웠다.

알지 못했던 낯선 북극에 대해 알아갈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극에 대한 꿈이 더욱 선명해지고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알면 알수록 북극은 신비롭고 신선한 곳이었고, 그 안에서 또다른 낭만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북극은 전설만큼이나 먼 땅이겠지만, 이제 내게 북극이란 영원히 살아 숨쉬는 땅이 되었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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