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버블’, ‘프메’, ‘프롬’, ‘포돌’이 주는 환상 [문화 전반]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노동과 소비
글 입력 2024.03.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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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아이돌 ‘덕질’의 필수 애플리케이션은 돈을 내고 구독하는 스타와의 1대 다수 채팅 플랫폼이 되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미 서비스를 종료한 것까지 포함하자면 버블, 유니버스의 프라이빗 메시지, 프롬, 포켓돌스…. 같은 버블도 SM 아티스트들이 사용하는 Lysn, JYP 아티스트의 경우 bubble for JYPnation, 스타쉽의 경우 bubble for STARSHIP, 그 외 다른 아티스트들이 사용하는 bubble with stars 등의 애플리케이션으로 나뉜다. 스타 한 명 대 여러 명의 팬들이지만 각 팬들의 화면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마치 ‘카카오톡’처럼 1대 1로 채팅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마치 1대 1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달을 기준으로 구독권을 갱신하는 이 플랫폼은 팬과의 소통의 기능을 담당하며, 이곳에서 유통되는 ‘사적인’ 정보는 본질적으로 유료다. 그렇다면 팬을 대상으로 하는 채팅 플랫폼의 유행과 그 기저에 깔린 함의는 무엇일까?

 

 

 

플랫폼 자본주의와 정동노동


 

현재 유행하고 있는 1대 다수 채팅 서비스는 플랫폼의 일종이다. 플랫폼은 두 종류의 사용자 그룹을 연결하는 공간이며 그 공간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따라서 플랫폼 자본주의는 기존 초기 자본주의가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팬 대상 채팅 플랫폼에서 소비자는 팬들이고 공급자이자 ‘상품’은 아티스트다. 아티스트의 채팅이 자신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자 이를 통해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다는 점 때문에 ‘버블’은 일반 노동자의 노동과 같지 않으며 의무이자 소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노동은 노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아이돌 산업의 다른 양상을 주목함에 있어서도 늘 나오는 이야기다.

 

아이돌의 채팅 노동을 ‘정동 노동’이라는 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동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정동’은 정신과 신체, 이성과 감정 간에 위계를 설정한 근대적 이항대립의 틀을 넘어 언어화 되는 것이 어려운 잠재적이고 신체적인 측면까지 설명할 수 있게 했다. 이성-감정 패러다임이 정동으로 전환됨에 따라 정동 노동은 감정 노동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특징을 가진 특수한 노동을 확장된 개념 아래 포섭하며 외연을 확장했다. 연예인은 채팅 플랫폼을 통해 친밀감을 ‘파는’ 정동노동을 수행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를 자원으로 또 다른 정동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버블’을 통해 친밀하다는 느낌, 직업 수행에 있어서의 진정성이 소비자인 팬들에게 전달되며 이러한 ‘친밀감 노동’은 모든 경우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른바 ‘유사 연애’처럼 성애화 되기도 한다.

 

사적인 영역이자 내밀한 개인의 영역이었던 ‘감정’과 ‘정동’은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경제적 가치이자 수단적인 대상이 되었지만, 이는 정서적 상호작용의 매개가 되고 인적 교류의 자원이 되는 아이러니한 성격을 보여준다. 문제는 아이돌의 노동이 ‘소통’이라는 이름을 하고 하나의 직업적 도덕률이 되었듯이 ‘버블’로 촉발되는 상호작용 자체가 플랫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포섭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돌의 정동노동은 신자유주의를 배제하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소비자가 느끼는 정서적 친밀성은 차갑고 냉혹한 경제 체제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소비-주체로서 팬의 소통 욕망


 

팬과의 소통은 아티스트의 직업적 진정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여겨지는데, SNS나 팬 채팅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 팬 채팅 플랫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따라 아티스트는 자신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 이때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진정성이라는 소명은 공적인 겉모습과 사적인 내면이 분리된 근대의 자아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적인 내면마저 소비와 전시의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주조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가치다.

 

이와 유사한 방향의 논의는 아이돌의 사생활에 대한 통제라는 차원에서 같이 다루어져 왔는데, 소비자의 스타에게 더 가 닿고자 하는 욕망이 직접적인 언어와 수단을 통해 즉각적이고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전달될 수 있는 팬 대상 채팅 플랫폼이 등장했다는 것은 아이돌 산업과 그 시장이 점점 더 교묘하게 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격을 수단화, 대상화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을 정도로 신자유주의적으로 노골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팬 대상 채팅 플랫폼의 형식은 직접적으로 아이돌에게 응답과 메시지가 가는 구조로 금칙어 설정 같은 내재적인 규제가 있지만 (그것이 효과적인지는 뒤로 한다고 쳐도) 발화의 구도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이 여전히 문제적이다. 디지털화된 플랫폼 속에서 소비자가 스타의 인격에 즉각적으로 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물화’의 하나의 예시같이 느껴진다. 적어도 근대의 계약 관계에 있어서 단지 명목 상의 이유에 불과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실질적으로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등장했다. 문제는 지금 현재 아이돌 산업에서 그것을 더 이상 숨길 의지조차 없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티스트에 대한 피드백의 대부분이 소비주의의 언어로 말해지며 소비주의를 경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돈을 냈으니 돈을 받은 이가 제 몫을 해야 한다는 발화는 교환적 정의의 차원에서 잘못된 주장은 아니지만 강한 소비자 정체성에서 비롯된 권리의 요구다. 이러한 발화의 이면을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는 팬을 대상으로 하는 채팅에서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한 연예인을 비난하는 수사다. 팬들은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시민으로서 발언을 비판하고 의사소통 윤리의 차원에서 ‘예의 없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과정이고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공적 제도가 존재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돈을 내는 팬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돈 값’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만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분명히 문제적이다. 이는 사회적인 보상과 처벌의 메커니즘이 더 이상 공적 제도가 아니라 소비자가 즉각적으로 ‘구독 취소’ 같은 내부 기능을 사용해 제재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자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함의한다. 지금은 공공성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내세울 수 있는 소비주의 시대다. 아이돌의 노동권과 소비자인 팬들의 권리는 충돌하는 것이 아닌데, 산업의 구조가 그것을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버블’의 정치경제학


 

팬 플랫폼의 미래를 논함에 있어서 우려되는 점에 대해 말해보자면, 먼저 신자유주의와 플랫폼 자본주의는 근대의 초기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의 통치성을 가지고 있다.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경제학적 모형은 수요와 공급 모형이나 기업들의 상품 생산 모형과는 다르다. 네트워크 독점 시장의 모형에서는 소비자의 수가 임계 규모를 넘으면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물론 아이돌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대중의 일부에 불과하고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내수 시장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한 모형으로 전체적인 산업과 시대를 진단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아이돌 산업과 팬덤 시장에서 플랫폼의 독과점은 상품으로 팔리는 아티스트의 노동권과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할 만한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시장 지배력만을 강화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플랫폼이 점점 하나가 될 경우에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와는 반대로 소비자 입장에서 낙관주의적 전망을 제시해보자면, 한 플랫폼 안에서 쉽게 다른 아이돌도 구독할 수 있어서 편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유니버스’가 서비스를 종료한 이후 많은 아이돌이 star’s bubble 어플로 이동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격을 더더욱 쉽게 자의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독과점 구조로 진입한다면 경제적 이익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기업이 굳이 유무형의 소비자 잉여를 남겨줄 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온라인 팬 플랫폼의 ‘상품’이 되는 스타들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아이돌 가수뿐 아니라 트로트 가수, 배우, 예술가, 운동선수, 예능인 같은 여러 엔터테이너나 유명인들도 팬과의 소통을 위해 플랫폼에 소속되고 있다. 이는 아이돌 산업의 특수한 질서와 특수한 노동 윤리가 다른 영역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상상해보게 하는데, 이 경우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의 분리라는 근대적 인간의 기본 원리는 파괴되며 유명인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라 상품화된 주체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후기 근대의 사회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특징일수도 있다. 물론 이는 수요의 양적 규모와 장르별 수요의 차이를 생각하면 실제 효과는 아이돌의 소통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결국 ‘버블’의 최종적인 문제는 (후기) 근대성과 자본주의의 문제로 가 닿는다. 팬 플랫폼에서 ‘헛소리’를 하는 유명인이 나와서 팬들이 상처받고, 스타들이 필터링 되지 않은 욕설이나 비난의 메시지에 상처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왜 처음부터 이런 서비스가 시작된 것인지 의문과 환멸이 동시에 든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지 못하는 ‘플랫폼’의 자율 규제 제도는 여전히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동시에 채팅 플랫폼은 소비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스타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이든 아니면 팬덤 커뮤니티 내의 관성이든 정보의 유통 속도이든 여러 이유로 ‘덕질’을 더 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앞으로도 ‘버블’ 시장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팬 대상 채팅 플랫폼이 양적으로 확대되는 이 시점에서 질적인 제도의 발전이 이를 따라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앞으로 이 산업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 예상할 수 없다. ‘버블’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태로운 붕괴의 불안정함 혹은 무한한 양적 확장 중 어느 길로 가게 될지, 지금이 어느 국면인지, 그리고 앞으로 사회는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버블’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한 배를 탔고, 그 둘의 운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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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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