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의심은 의도되었다 - 유전 [영화]

글 입력 2024.03.1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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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들은 관객들의 의심을 통해 서사가 전개되기도 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이나 강우석 감독의 <이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와 같이 서스펜스를 활용하여 영화의 시작부터 끝을 잇고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영화들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일반적으로 영화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배치되는 작중인물들의 갈등 상황을 통해 전체적인 대립 구도를 파악하게 되며, 이를 기준으로 각 인물들이 지닌 복잡성과 입체성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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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 <유전>의 경우는 과연 이 영화가 누구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영화 후반부까지도 대단히 모호한 입장을 견지한다. 영화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모녀간의 대립을 한 축으로 놓은 채 애니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혹은 극 중 애니가 자신의 딸인 찰리의 사고에 대해서 '그 사고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이라고 말했듯이 가족을 제외한 제3의 시선이 관객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에 개입되어 있는 것일까?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유전>은 <셔터 아일랜드>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관객이 이해하는 네러티브와 실제 작중인물들의 내러티브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며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우선 <셔터 아일랜드>의 경우 영화를 처음 감상하는 관객의 경우, 감독이 설치해 놓은 수많은 복선들이 암시하는 사실들이 좀처럼 관객이 파악하고 있는 내러티브의 전개와 동반되지 않는다. 단지 관객들은 복선이 암시하는 바를 고민하고 자신들이 예상하는 그림 내에서 이런저런 방향으로 구획할 뿐이다. 이때 관객의 의심은 여러 작중인물들을 향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주인공인 테디를 주동인물로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시작한 관객 대부분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앤드루 레이디스, 존 콜리, 레이첼 솔란도 등 여러 인물들에게 의심을 던진다. 관객들은 영화 후반부에서 존 콜리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전까지 앤드루와 테디라는 두 인격 사이의 대립을 떠올리기보다 자신들이 의심스럽다고 느껴지는 여타의 인물들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객의 의심은 감독의 분명한 의도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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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 전개 방식 역시 관객으로 하여금 의심을 여러 갈래로 나누게끔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 방향성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첫째, 애니가 유족 모임에 참가하여 자신의 감정과 과거사를 토로할 때 관객들은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두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애니의 아버지는 우울증을 앓다가 아사했다는 점, 애니의 오빠는 조현병을 앓다가 자살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애니의 어머니인 앨런이 해리성 인격 장애와 치매를 앓았다는 정보 역시 결정적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애니의 시선에서 나열되고 진술되는데 이때 관객은 이를 스티브와 피터, 그리고 애니에게 대입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애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그녀가 지닌 몽유병의 한 부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관객이 따라가는 내러티브들이 작중인물의 망상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사실상 <셔터 아일랜드>의 그것과 동일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둘째, 조앤이라는 인물이 애니에게 자신의 아들과 손자 역시 익사로 사망했다는 말을 전하는 장면은 찰리와 피터 모두 목이 붓는 경험을 했다는 점과 맞닿아있다. 영화에서 애니는 조앤을 비롯한 다른 유족 모임의 회원들에게 찰리의 사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조앤이 마치 찰리의 사인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익사 얘기를 꺼내는 부분에서 관객의 의심은 다시 한번 다른 인물에게로 향한다. 영화 초반부부터 숨, 호흡, 목과 연관된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초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혼 발현의 조건'이라는 문구가 중반부의 영매로 이어진다고 생각할 여지도 충분하다.

 

한편 영화의 형식이 아닌 내용의 측면에서도 <유전>과 <셔터 아일랜드>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앤드루 레이디스의 아내가 평소 방치된 채로 정신병을 앓아왔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자식들을 익사시키고 결국 앤드루가 자신의 아내를 권총으로 사살하기까지의 과정은 가족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피해의 양상이다. 두 영화는 가족이 가장 핵심적인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맥락을 공유한다. 가족은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유전으로 인한 피해 역시 그러하다.

 

특히 가족이 한 단위의 주동인물이 되어 반동인물과 대립하게 되는 오컬트 영화의 전형적인 구도에서 벗어난 <유전>은 가족들이 서로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갖고 있고, 가족 사이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영화가 절정으로 치닫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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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에서 관객들은 이 모든 것이 파이몬의 대관식을 위한 의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됨과 동시에 그들의 의심은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점이 디오라마에서 집을 옮겨가는 장면 내지 시점이 전봇대에 머물러있는 장면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파이몬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후반부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의심을 분산시키게 만드는 것은 결국 파이몬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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