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매일 새벽 두 시마다 새로고침을 하는 이유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3.0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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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을 알립니다. 삐-‘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마우스를 클릭하기에 바쁘다. 이내 PC방 안은 환희와 탄식이 뒤섞인다. 불과 몇 주 전에 있었던 대학생의 수강 신청날의 모습이다. 대학교 근처 PC방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강 신청을 하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로 북적거린다. 개강을 앞두고 본인이 원하는 최고의 시간표 조합을 맞추기 위해 PC방으로 향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수강 신청을 위해 동네 PC방을 찾은 기억이 있다. 전공 수업의 대부분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위험 요소가 크기 때문에 차선책도 미리 준비를 해 놓아야만 어느 정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차선책으로 준비해 둔 시간표에도 넉넉한 점심 시간 확보는 필수이다. 특히 먼 지역에서 통학하는 학생의 경우 등하교 시간까지 고려해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학생들끼리 ’망한 시간표 공유하기‘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다. 망한 시간표눈 흔히 주말과 가까운 공강일과 우주 공강의 유무, 수업 간의 안정감 있는 배치 등의 기준을 통해 정해진다. 수업을 제외한 남는 시간을 얼만큼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갓생의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본인이 잡은 수업 시간표에 따라 학교생활 또한 좌지우지되기 마련이다.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떨릴 만한 일은 수강 신청 말고도 ‘티켓팅’이 있다. 평소에 공연 보는 걸 즐겨하는 나는 수시로 티켓 예매 사이트에 접속하곤 한다. 하나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 극장별 좌석 시야,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동선 등 따져봐야 할 점들이 넘쳐난다.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 즉 연뮤덕들 사이에서는 흔히 ‘테트리스 맞추기’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이는 좋아하는 배우의 스케줄과 자신의 일정을 균형 있게 잘 맞추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공연 예술의 특성상 같은 작품이 공연된다 할지라도 매 회차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공연은 현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배우가 같은 의상을 입고 같은 대사를 친다고 한들, 그 두 개의 공연은 엄연히 다른 작품인 것이다. 원캐스트(한 역할 당 한 배우만이 캐스팅된 경우)가 이상 대부분의 공연은 두 명 이상의 배우가 한 역할로서 무대 위에 오르게 된다. 때문에 공연의 회차마다 배우 캐스팅의 조합이 다르며, 관객은 자신이 원하는 배우 조합, 즉 ‘페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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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황금과도 같은 요즘 시대


 

개인이 하는 모든 선택은 곧 시간과 직결된다. 어떨 때는 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타이머를 켜둔 채 광클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티켓 비용을 냈음에도 단지 티켓팅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야가 좋지 않은 자리에 착석하는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국 피 튀기는 티켓팅에 실패한 이들은 ‘취소표’를 노린다. 취소표란, 예매를 이미 성공한 사람들 중 티켓 비용 입금을 히지 않은 이들의 표가 일정 시간에 맞춰 풀리는데, 이를 잡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나라 온라인 공연 예매처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인터파크 티켓의 취소표가 풀리는 시간은 보통 새벽 2시부터 2시 10분이다.(예매처마다 취소표가 풀리는 시간은 다 다른데, 대부분 새벽에 풀린다) 좌석 예매 페이지에서 여러 번 새로고침을 하다가 풀리는 좌석이 있다면 바로 눌러야만 성공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남들이 포기한 시간 안에 들기 위해 또다시 치열한 시간을 견뎌내야만 소수의 인원이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배우 조합을 쟁취할 수 있다. 하지만 표를 잡았다고 해서 완전히 끝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애정하는 작품 혹은 배우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전진’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티켓의 자리에서 더 앞열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요즘은 뮤지컬이나 콘서트 같은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영화 이벤트 상영일이나 팝업스토어 예약처럼 다른 오프라인 행사에서도 자리 경쟁이 요구된다. 유명한 팝업스토어의 경우,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혹은 원하는 MD를 얻기 위해 오픈 시간에 맞춰 예약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제는 덕질에도 민첩함과 약간의 손가락 기술이 필수이다.

 

가끔은 인생의 매 순간이 티켓팅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원하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며, 그 안에 들지 못하면 뒤로 밀려나거나 아예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 티켓팅은 기본적으로 운이 크게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늘 티켓팅을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의 여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점들은 우리의 삶과도 많이 닮아있다. 한정된 인원수 안에 포함되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광클하며 살아간다. 전진을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타인의 자리와 내 자리를 비교해야 한다. 티켓팅을 마치고 나면 가끔 현타가 오기도 한다. 나의 현생 시간표 사이에 어떻게든 공연 일정을 욱여넣은 것,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도 경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진득한 현타를 맛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티켓팅을 하는 이유는 불확실성에 도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때의 아쉬움보다 티켓팅에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너무나도 크니까. 불확실의 연속인 순간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언제나 짜릿하기에 나는 오늘도 새로고침을 할 예정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들 모두 티켓팅 전부 성공하시길!

 

 

[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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