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스물일곱,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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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나는 그리 계획적인 편은 아니다. 허나 지난 25년간 다소 비계획적인 이 삶을 영위해오면서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바는 모순적이게도 누구보다 계획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다.
외압이나 타율적인 규제 없이 온전히 내 스스로 꾸려야 하는 날들이 꽤 오래 지속되면서, 융통성이라 포장해왔던 무질서한 내 성정이 어쩌면 나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했다.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 하나 없이 수많은 핑계들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하루를 보내고 침대 누워, 찬기로 채워진 이불 안이 데워지기를 기다리는 짧고도 긴 시간이 찾아오면, 외면해왔던 내 양심은 자괴감과 합리화 사이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도달할 때까지 무엇 하나 그럴싸한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차가운 현실이 나를 옥죄여오는 시간이다.
공허함만이 가득한 내 마음은 포근한 이불 안에서도 여전히 시리기만 하다.
지난 2년간의 유예기간이 끝이 나고 며칠 전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자유롭고 싶다 말하면서도 그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내 존재가 불안했기에, 졸업생이 아닌 ‘수료생’이라는 이름 아래 다소 구차하고 억지스러운 소속을 붙들어왔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길 없는 완벽한 백수 신세가 달갑지 않은 마음을 애써 감추고는, 시원섭섭한 졸업을 자축하며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재정비해 본다.
여덟 살부터 스물일곱까지, 거의 20년의 세월 동안 소속되어왔던 ‘학교’라는 틀에서 독립하면서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귀찮게만 생각했던 규율의 덕을 누구보다 많이 보고 살아온 것만 같다.
이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데, 한심함을 넘어서 미래를 향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문득 떠오를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는 요즘, 이토록 게으르고 무질서한 내가 정상의 궤도로부터 크게 이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규칙과 제도 덕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 불안한 자유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모험을 동경하면서도 안전을 도모하는 이중적인 나는, 어차피 주어진 이 자유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중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것이 졸업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회피하고 싶었던 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나이를 채운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게 어른으로서의 덕목일 테다.
다 알면서도 제도가 주는 안락함에 숨고 싶었던 건 나 자신조차 책임질 용기가 없던 비겁함 때문이었다. 전력을 다해보기도 전에 핑계를 먼저 찾곤 했던 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미리 숨어 버리기를 택한 겁쟁이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책임지는, 일 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타율적인 규율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대신, 자율적으로 정한 내 삶의 약속과 신념에 따라 스스로를 이끌어가야 한다.
나의 선택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과 때로는 노력이 결과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실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믿음. 어른이라는 이름에 담긴 무게를 감당해야만 한다.
학위복을 벗으며 붙들어 놓은 미련을 함께 반납했다. 익숙한 듯 낯설어져 버린 교정을 빠져나오며 끝과 동시에 시작된 새로운 출발을 위한 다짐을 했다.
품에 안은 졸업장이 괜스레 무거웠던 건 그 안에 응축된 지난 세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비로소 주저하던 발걸음을 떼고 어른을 향해 나아가기로 용기를 낸 이에게 주어진, 불안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희망이기도 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된 스물일곱의 내게, 아무쪼록 행운을 빈다!
앞으로 총 몇 번의 몇 번의 희망과
그리고 또 몇 번의 몇 번의 절망과
차가운 웃음 혹은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 줘
내 앞길에 행복을 빌어 줘
계절이 흘러 되돌아오면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 테니
기대해 줘
행운을 빌어 줘- 원필(DAY6) 中
[김소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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