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타자 기능이 사라졌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2.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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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인물보다는 주로 동식물과 음식, 풍경을 찍는다. 최근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살을 찌운 건지 털이 찐 건지 모를 까치들과 용두해수욕장의 노을, 소라게인 양 소라 안에서 몸을 키우는 이오난사 같은 것들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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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영화 한 장면이 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 속 결말 부분이다. 위 스틸컷을 설명하자면 영화감독을 꿈꾸는 새미가 거장 감독의 사무실로 찾아간 상황이다. 감독은 그런 새미에게 사무실의 그림을 설명해 보라고 한다. 새미는 인물에 집중해 설명한다. 어떤 외향의 인물이 있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그러자 감독은 새미의 말을 끊어버리고 지평선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리곤 새미에게 말한다.


“지평선이 바닥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꼭대기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가운데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어.”


이 영화를 보며 참 많이 울었더랬다. 그때의 나는 프레임 안에 세계를 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울었던 것 같다. 특히 감독의 사무실을 벗어난 새미가 벅차오르는 표정과 함께 되돌아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새미가 걸어가고 있는 길, 즉 가운데에 있던 더럽게 재미없는 지평선이 이내 틸트 업 되며 바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새미의 세상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는 전환점과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를 지평선의 변화로 표현하는 연출에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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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를 통해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배웠다. 무언가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인물에 집중하곤 했던 나는 <파벨만스>와 당시 수강했던 영화 수업을 통해 인물 외의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인물 제외 공간의 여백과 비스듬한 가로선, 배치 등이 주는 효과와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나는 수많은 지평선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게 되었다. 하나를 찍더라도 구도에 변화를 주어 보고, 초점을 달리해 보고, 지평선과 수평선의 위치를 옮겨 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요즘은 가로등을 기준선 삼기도 하고, 나무를 가운데에 두어 프레임을 나누어 보기도 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렇게 세상을 보고 내가 보는 세상을 프레임 안에 담는 시간은 여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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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무 글도 쓰지 못하는 어플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감정과 일상, 시각을 공유하는 일에 각진 텍스트와 설명이 빠진다면 어떨까? 오로지 사진만 올릴 수 있는 소셜 미디어인 셈이다. 자판이 사라진 인스타그램 같은 것들.


댓글도 무조건 사진으로 달기. 잠시 상상해 보자면 엄지를 척 올린 사진이 올라오거나 게시물과 상응하는 촬영물이 올라오거나 할 것이다. 그러다 입이 너무 근질근질한 이가 참지 못하고 종이에 글을 적어 촬영한 뒤 올릴 테다. 그 자체로도 재밌을 것이다. 포스트잇에 적었을지 공책에 적었을지, 글씨체는 둥글지 날카로울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테니. 카카오톡 오픈채팅 중 ‘고독한 방’의 특성을 반영한 소셜 미디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쉽게 작성되는 텍스트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SNS를 구경하다 보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악의를 표출한다. ‘설레는 댓글창 열기’. 어느새 밈으로 자리 잡은 이 말은, 자신과 동일 감정을 느낀 사람들을 예상하며 그들이 남겼을 댓글을 기대하고 창을 열어본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 이런 글 대부분은 조롱과 힐난의 목적이 있기에 그렇다.


난발(亂發)의 사회다. 겨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쏟아낸다. 일단 표출에 중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는 듯 타인의 게시물에 흔적을 남긴다. 훈수와 해명, 비방과 멍울의 반복. 악의 없는 말도 상처가 되는데, 우리는 어찌 악의 가득한 말들을 하는 걸까.


그렇기에 한 번 거치는 과정이 있었으면 한다. 위의 기능으로 이루어진 SNS가 있다면 아마 우리는 텍스트를 쓰고 싶을 때마다 한 번의 거름망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겨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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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댓글창 열기’가 정말 말 그대로 설레서였으면 한다. '이 게시물에 사람들은 어떤 사진으로 반응하였을까.' 하며 말이다. 한 사람의 단점을 파헤치는 일 말고, 사람들이 지평선을 어디에 두고 찍는지, 무엇에 초점을 두는지, 그리고 주로 무엇을 찍는지를 생각하고 싶다. 피상적인 판단으로 남을 싫어하는 일보다, 그 인물의 세계를 보고 자신의 세계도 함께 공유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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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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